월간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1442

사람답게 살기 실험하는 변산공동체

어디로 갈까? 하면 순간 뭔가 확 떠오르는 게 있다. 술 마시다가 누구를 부를까 하면 금방 떠오르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작년 여름 변산에 간 건 순전히 그런 식이었다. 대안교육, 생태마을, 마을공동체 이런 것들은 항상 내 가슴 속에서 부러움으로만 남아 있었다.

처음 간 곳이 공동식당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부엌이 있고 몇 개의 거적 위에는 식사를 하는 큰 상 네 개가 항상 펴져 있다. 거적의 틈새마다 앉은 흙가루와 점점이 그리 달갑지 않은 무늬를 놓은 오리똥이 미리 발 디딜 곳과 앉을 곳을 살피게 하는 식당이었다.

이 곳에서 먹는 밥은 정말 소화시키기가 힘들었다. 보리, 밀, 찹쌀 등을 섞어서 항상 너덧 가지의 잡곡으로 밥을 해먹는데, 씹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특히 통밀은 아무리 씹어대도 화장실에 가면 그냥 그대로 확인될 정도로 소화가 안 되었다. 반찬은 항상 식구들이 재배한 나물 종류와 국이었고 외부에서 사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들 가족은(아직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규모나 성원 등 여러 가지로 부족한 부분들이 있기에 가족이라고 하겠다. 어른이 총 12명이다) 가급적이면 돈을 쓰지 않고 -소비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내가 1주일을 머물면서도 무언가를 외부에서 사는 모습은 막걸리 말고는 보지 못했다. 일복은 도시에서 헌옷을 가져다 입고 먹거리는 재배하는 것으로 모두 충당하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소비하지 않으면 생활을 영위할 수 없고, 돈이 주머니에 없으면 왠지 불안하고 자신이 없어지는 도시의 생활과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내가 1주일을 거기서 묵으면서도 지갑을 연 적도 무언가 돈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으니 말이다.

성인 가족들은 논과 밭을 나누어 관리함으로서 변산공동체의 기본인 농업에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공동체의 중요 덕목인 농두레는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공동체 마을에서 자급자족을 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분야도 모두 한가지씩 나누어서 공부와 연구를 하고 있었다. 술을 빚는 사람, 감식초와 효소를 만드는 사람, 염색하는 사람, 목공하는 사람 그리고 뒤뜰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쌓여 있는 장독에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들 사람까지. 술과 효소 등은 현재 만들어서 도시에 팔고 있는 중이었고 염색이나 목공은 좀더 수련을 쌓는 과정이었으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장독을 위해서는 전통의 손맛을 가지고 있는 이를 찾고 있는 중이라 했다. 엉겅퀴술과 고구마효소를 먹어 보고 맛이 좋아 자꾸만 더 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새롭다.

하루는 우렁이를 넣은 논에 피가 많이 자라서 하루종일 논에 들어가 피를 뽑는데 변산에서 처음으로 기름기가 있는 음식이 나왔다. 그렇다고 고기는 아니고 야채, 감자 튀김 등을 참으로 먹었는데 그 맛은 너무나 좋아서 고기를 먹는 것보다 더 훌륭했다. 뿐만 아니라 땀 흘리며 일을 하다가 중간에 하는 해수욕은 그 또한 일품이었다. 변산은 앞이 바다고 논과 밭, 산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자연의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얘기하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지면은 얄밉게도 짧기만 하다. 오리가 논의 피를 싸그리 먹어치운다든지, 밭에 농약을 치지 않아 잡풀 때문에 감자싹 찾기가 보물찾기라든지, 변산공동체의 엄격한 규칙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과의 다양한 술자리, 그리고 처음으로 중등교육 과정의 다섯 명의 아이를 가르치는 모습과 여름방학식 등등 그 곳에 며칠 있으면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변산에 오기 전까지 자신은 룸펜이었다고 하는 여자 분에게 변산공동체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관계’라고 하면서 전체적인 가치관은 비슷하더라도 세부적인 사항을 결정할 때는 의견이 충돌할 때가 많고 성격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윤구병 선생님은 어떠냐고 했더니 ‘밴댕이 속’이라고 하면서 웃었다. 언제, 어느 곳을 가나 인간관계는 가장 풀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부 사람에게도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문제를 얘기하는 모습이 이미 문제를 뛰어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오감이 편안하고 팔과 다리에는 적당한 긴장감이 생기는 곳, 자연의 품과 공동체의 넉넉함이 하루하루의 노동을 즐겁게 했다.

신성호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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