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6월 1999-06-01   1156

서울지하철파업 그후

언론은 왜곡보도 시민단체는 갈팡질팡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석치순 위원장은 언론연합군의 집중포화 속에 8일간의 파업을 접은 뒤 한국방송공사노조와의 회견에서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언론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그리고 짤막하게 덧붙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심했다.” 석 위원장이 언론에 요구한 것은 모든 언론들이 사시로 내세우는 ‘공정보도’가 아니었다. 다만 ‘최소한의 균형감’이었다.

그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4월 21일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이던 서울지하철노조 임성규 사무국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래도 조정기간 15일은 지키지 그랬어요. 그 때문에 언론이 더욱 불법이라고 몰아붙이는 것 같은데.” 이에 임 사무국장은 “어차피 직권중재가 들어옵니다. 그때 파업해도 언론은 불법이라고 몰아붙였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난해 7, 8월 현대자동차 파업 때도 그랬다. 노무현 부총재가 이끄는 국민회의 노사정위원회 지원특별위원회가 정리해고를 둘러싼 현대자동차 노사분규에 개입해 중재를 성공시켰다. 경찰력이 투입되면 여러 명 죽어나자빠지게되는 현장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론들은 “정치권이 개입해 정리해고가 270여 명 수준에 머물러 노동시장 유연성을 방해했다”며 개거품을 물었다. 그때 노무현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아마 언론은 안했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지하철파업을 앞두고 『조선』 『중앙』 등은 ‘정치권이 수수방관하며 놀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어댔다. 자신들이 한 짓을 1년도 못돼 ‘까먹은’ 것이다. 정말 ‘뻔뻔스런’ 돌대가리들이다. 그리고 파업에 들어가자 일제히 경찰력 투입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자, 『중앙일보』를 보자. 『중앙』은 20일치 사설에서 이번 파업을 “명분 약한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 노동법에 정해진 “냉각기간 15일과 직권중재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서울지하철공사가 7월에 만료되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불법 아닌가. 단체협약을 무시한 무리한 기획예산위원회의 예산지침 강행 역시 명백히 ‘불법’에 해당한다.하지만 『중앙』은 근엄하게 선언한다. “앞으로는 불법파업을 일절 용납하지 않고 어떠한 경우에도 법과 원칙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노사 준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중앙』 24일치 사설) 모든 언론은, 지하철 등 공익사업장의 경우 노동법상의 직권중재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하나인 파업 등 단체행동권 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은 없었다. 당연하다. 파업을 깨부수는 데 눈깔이 뒤집혀 없는 ‘팩트’(facts)도 만들어내는 판에, 있는 팩트가 보이겠는가(『조선일보』는 서울지하철노조가 4월 26일 파업을 접은 뒤 연 민주노총 회의에서 ‘지도부 인책론’이 나왔다는 보도를 썼다가 결국 지난 5월 13일 사회면에 1단 기사로 조그맣게 정정보도했다). 직권중재에 따른 단체행동권 봉쇄는 97년 총파업 때 『중앙』에서도 꽤 진중하게 다룬 주제였다. 물론 1년전 일도 까맣게 잊는데, 2년이 훨씬 지난 일을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불법파업으로 여론몰이한 언론은 유죄?

서울지하철의 적자는 왜 쌓일까? 지나가는 서울시민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그러면 열에 아홉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4조 3교대 때문이죠. 체력단련비 등 노동자들이 임금을 너무 많이 받아서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 『조선일보』가 그렇게 집중적으로 떠들었기 때문이다.

16일치 『조선』은 서울지하철공사에 “하루 10억 원꼴로 빚이 쌓인다”며 이것은 “무능한 경영진과 ‘시민의 발’을 무기로 강성노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썼다.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유일하다”는 4조 3교대제 때문에 서울지하철의 1km당 운영인력 85명이 2기 지하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55명),런던지하철(46명),도쿄지하철(66명)보다 많다는 점을 든다. 24일치 사설에서는 노조측 요구를 “하루 10억 원씩 적자나는 기업의 노조가 봉급은 단돈 1원도 내릴 수 없고,인원도 단 한명도 줄일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했다. 이것도 거짓말이다. 지하철노조는 “고용안정을 위해 단체협약상에 규정된 체력단련비의 일부 삭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왔다.인원감축 문제에 대해서는 서울지하철공사(1기 지하철)와 도시철도공사(2기 지하철)의 선통합과 이에 따른 합리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했다.그러면서 인원감축보다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자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조선』은 뻔뻔스럽게도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노조측 요구와 주장이 무엇인지는 그동안의 파업과 집회 등을 통해 정부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충분히 전달됐다.그런데 노조측 주장이 시민의 공감대를 사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마치 한국사회는 우리가 장악하고 있다는 엄포다.

하지만 동네사람들 들어보시라! 도시철도공사의 업무자동화율은 100%인데 비해 서울지하철은 35%에 불과하다. 서울지하철의 1인당 여객 수송인원이 도시철도공사의 6배에 이른다. 적자도 상대적으로 도시철도공사보다 덜 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지하철 요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 싸다. 왜? 그동안 정부가 소비자물가 억제 차원에서 지하철 요금을 묶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서울지하철 운영비의 극히 일부(25%)만을 지원해 왔다(프랑스정부는 운영적자의 75%를 보전해주고 있다). 그것이 서울지하철의 연간 운영적자가 3,450억 원,부채가 3조 4,923억 원(이중 2조 원 가까이가 애초 지하철 설비공사비다)에 이르는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 지적은 하나도 없었다. 왜? 노조에 물어보지도 않았으니까.

결국 언론은 구조적으로 적자가 불가피한 ‘공기업’ 지하철과 정부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었다. 헛다리를 짚기는 했지만, 『중앙』만이 유일하게 20일치 음성직 전문위원의 ‘전문기자 칼럼’에서 “승객들을 볼모로 지하철파업을 벌이는 서울의 봄이 싫다”며 아예 지하철을 민영화시키라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시민단체, 실정파악 제대로 하고 개입했어야

서울지하철 파업보도에 흐르는 대다수 언론보도의 논리는 초등학생들도 알만큼 대단히 단순하다. “다 깎는데 너는 통뼈냐. 하루 적자가 10억 원씩이나 쌓이는 주제에.” 이런 속내를 『문화』는 27일 사설에서 ‘순진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사기업도 이미 구조조정의 아픔을 감내, 새롭게 출발하고 있는데도, 유독 공공기관인 지하철은 구조조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더욱이 만성적자인 채 구조조정을 반대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서울지하철 파업보도를 보며 내린 개인적인 결론은 이렇다.

하나, 정작 시민을 볼모로 잡은 건 서울지하철공사쪽이다. 파업을 하면 노조에 비난이 쏟아질 것을 알고 게임에 임했다. 이게 IMF가 귀가 닳도록 얘기하는 바로 그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둘, 노동부는 시간끌지 말고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정을 내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92조를 즉각 개정해야 한다. 노동자가 법 안지키면 벌주는 것처럼 사용자도 벌줘야 한다. 그래서 단체협약을 어긴 서울지하철공사 경영진과 이를 부추긴 기획예산위 관료들을 벌줘야 한다. 이 때문에 비롯한 파업의 피해가 큰 만큼 아주 많이 줘야 한다.

셋, 정부는 구조조정에 앞서 경영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그래서 지하철 요금을 올리든가, 아니면 정부 보전을 늘리든가, 아니면 둘로 나뉘어져 있어 이중삼중의 관리비가 들어가는 지금 체제를 바꿔 제1기와 제2기 지하철을 먼저 통합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

넷, 서울의 일부 시민단체들은 ‘시민’이라는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시민은 노사로부터 자유로운 그 누구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시민은 일종의 ‘공정한 언론’이어야 한다. 시민을 볼모로 하는 자가 과연 누구인지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개입하려면 실정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개입해야 한다. 파업때문에 불편하다는 식의, 그래서 빨리 끝나야 한다는 식의 어린애 장난 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파업은 불편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조합에게 왜 파업이 최후의 무기일 수 있겠는가. 지난해 4월 부산시민중재단이 부산지하철 노사갈등에 대해 보였던 태도는 시민개입의 모범을 보여준 사례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 잠자코 있는 게 좋다.

조준상 『한겨레신문』여론매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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