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0월 1999-10-01   1186

서면요정없는 특진은 부당 관행적 특진비 청구에 제동

삼성제일병원 특진비 반환사건의 전말

임신 8개월이 되자 주치의의 권유에 따라 ‘혈당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결과 혈당수치가 좀 높다며 검사를 실시한 임상병리사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안내장을 주면서 재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안내문에는 다시 와야할 날짜와 시간, 주의사항 등과 함께 수납시 최모 씨를 찾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검사 당일 안내장에 적혀 있는 수납창구에 가서 진료비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확인하니 특진환자로 분류되어 특진비 1,600원이 청구되어 있었다. 진료비 계산서상 ‘보통’ 환자로 분류되어 있던 나는 ‘특진환자’에 비해 좀 초라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닌지, 특진비 몇푼 아끼려고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아기를 ‘보통라인’에 세우는 나쁜(?) 예비엄마는 아닌지, 뭐 이런 쓸데없는 신경을 쓰기도 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자동으로 보통에서 특진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뭐 이런 기쁨(?)도 잠시 특진제도(지정진료제도)에 관한 해박한 나의 지식을 조롱하는 병원측과의 한바탕 교전을 벌일 준비태세를 갖추고 나는 정중히 수납담당 직원에게 물었다.

“저는 특진을 신청한 적이 없는데…, 계산이 잘못된 거 아닌가요?”직원은 잠시 계산서와 내가 들고온 예의 그 안내장을 보더니.“담당의사가 특진의라서 특진비를 내셔야 합니다.” 너무나 명료한 답변을 해온다.

“특진비는 특진을 신청한 환자에게 받는 거고, 특진신청은 서면에 의해 하게 돼 있는데 저는 그런 것 한 적이 없는데요.”

나의 반격에 담당직원은 불쾌한 표정이 역력하다. 상급자로 보이는 직원이 무슨 일이냐며 끼어들고, 수납을 위해 늘어서 있던 임신부들의 눈이 일시에 내게 쏠리는 것을 느낀다. 상급자로 보이는 직원은 이 병원에서 임신성 당뇨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의사는 최모 의사인데 그 분이 바로 특진의이므로 특진비를 내야 하고 당신이 들고 온 안내문에도 최모 의사에게 가라고 써 있지 않느냐며 당연한 것을 가지고 시끄럽게 군다는 눈치이다. 그래도 특진비 1,600원이 아까우면 일반의사가 진료하도록 바꿔주겠다며 오히려 당당하다.

임상병리사가 일괄적으로 나누어 주는 안내장이 특진신청 용지대용이고 최모 씨가 다름아닌 특진의였던 모양이다. 나는 목소리가 좀 커진다. 특진을 신청한 적도 없고, 담당의사에 대해 설명들은 바도 없다. 또한 이 병원에 임신성 당뇨진단을 정확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가 최모 의사라면 더더욱 특진비 요구는 부당하다. 최모 의사가 유일한 의사라면 어찌되었건 보통 환자인 나도 최모 의사에게 자동적으로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 그날의 소동은 참여연대와 서울YMCA에서 진상파악에 나서고, 원무과 담당자의 사과와 300여 명 임신부들에게 받은 부당한 특진비를 반환하는 것으로 일단락짓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은 여전히 억울하다는 태도이다. 자신들의 병원에서만 이뤄지는 일도 아닌데, 이른바 관행인데 특별히 문제삼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날의 ‘특진비 청구사건’은 잘못된 병원행정의 한 단면을 경험한 작은 사건으로 특진제도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적게는 몇천 원에서 많게는 수십, 수백만 원 이상 추가부담을 각오하고 환자들이 특진을 신청하는 이유는 보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많은 병원에서 특진제도를 편법으로 운영, 자기 병원의 대부분 의사를 특진의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에 특진과 일반진료에 큰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특진남발 외에 신청하지도 않은 특진비를 받기도 하고 아예 특진비만 챙기고 특진을 하지 않는 경우, 특진신청을 하지 않으면 수술이나 진료 일을 많이 기다려야 한다며 특진을 강요하는 경우까지 있으니 환자의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려는 특진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할 따름이다.

최은숙 서울 YMCA 시민중계실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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