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0월 1998-10-01   2733

공무원 조직 및 인력감축의 허와 실

내 밥그릇은 절대 안돼!

행정자치부가 내놓은 ‘공무원 조직 및 인력감축 지침’에 따라 공무원 사회에도 ‘감원·퇴출’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행정자치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안에 전국적으로 3만여 명의 지방공무원을 감원한다. 더 나아가 2002년까지 정원의 30%인 8만 7,300여 명을 연차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공무원이야말로 안정적인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이 여지없이 깨져버린 셈이다.

때아닌(?) 구조조정 한파에 공무원들은 지금 몸을 사리고 있다. 자칫 업무태만으로 비추일까 휴가를 포기한 것은 물론 일부 기초단체에서는 타지역에 살던 공무원들이 근무지로 이사하거나 주소지를 옮기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근무지에 주소를 두지 않은 공무원들이 1차 감원대상이 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줄서기나 인사청탁, 소속 부서 유지를 위한 로비가 물 밑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굳이 IMF 관리체제라는 경제위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공룡처럼 비대해진 ‘기득권 조직’ 공무원 사회에 대한 대규모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국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럼 이번 조직개편으로 공무원 사회는 국민이 원하는 것처럼 진정한 국민의 봉사조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현재 진행상황으로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우선 퇴출 공무원 선정 기준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함에도 현재 진행중인 각 시도의 선정 기준을 살펴보면 대부분 과거 경고를 받는 등의 전력자, 나이순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분류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은 아닌지…. 정작 잘려야 할 고위직은 자꾸 보직을 만들고 박봉에 시달리며 격무로 고생하는 말단 공무원들은 감원 대상이 되고 있다. 잘라야 할 사람은 못 자르고 잘라서는 안 될 사람을 자른다면 나라가 바로 서겠습니까?(CONTAX)"라는 네티즌의 비판처럼 주민 서비스 강화와 각 업무의 특수성을 살린다는 지방조직 개편방향을 무시한 채 일률적인 산술계산으로 숫자 맞추기에 급급하고 있다.

남는 행정직 대신 부족한 기술직 잘러?

실제 일부 지자체에서는 정원축소에 사회복지사, 도서·산간 오지 지역의 보건소, 우체국 등 주로 현장에서 대민 복지 서비스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을 포함시켰다. 이들은 별정직 공무원들이다. 이런 감축은 “사회복지 관련 업무영역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별정직 정원은 가급적 현행체제를 유지하도록 해 달라"는 행자부의 지침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지난 수해 때 맹활약했던 119 구조대원 역시 감축에서 예외는 아니다. 서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주는 소방공무원은 지금도 정원의 70%에 불과한 실정인데 여기서 더 줄어들게 된다. 소방본부의 한 관계자는 “119구조대 이용빈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충원은 고사하고 인원을 감축하려는 것은 국민안전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대형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처에 큰 차질이 우려된다"며 일률적 감축에 반발했다.

이런 일률적인 감원은 공무원조직의 주류인 일반행정직 공무원들의 반발에 따라 감축 부담을 별정직이나 기술직, 기능직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국가의 주인인 영세민이나 오지의 주민, 국민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양현수 충남대 교수도 “주민복지향상과 IMF 관리체제에 부응하는 자치행정 수요를 외면하는 몰지각한 짜맞추기식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일률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필요한 부서는 오히려 늘리는, 효율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여자라는 이유로 감원대상에 포함되는 불이익을 받는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구조조정을 마친 서울시의 경우 남성과 여성 공무원의 비율은 85.8% 대 14.2%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대기발령된 남녀 비율을 보면 74.2% 대 25.8%로 여성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공무원들은 남성들과 경쟁할 수 있는 ‘인력 풀’이 형성돼 있지 못해 하위직, 단순직에 머무르다 보니 감원대상 역시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 공무원들은 얼마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일까? 뜻밖에 당사자인 서울시 공무원들의 표정은 감원 바람에도 생각보다 어둡지는 않았다. “한 2년 승진이 늦어진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하는 느긋한 반응들이다.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퇴출대상으로 정해지더라도 바로 직장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축대상 공무원 3만여 명은 2000년 말까지 무보직상태로 신분을 유지시킨다는 행자부의 방침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2000년 말까지 최소한 앞으로 2년여 동안은 기본급을 보장받게 되는데, 그 액수는 모두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시의 이상한 구조조정

이처럼 공무원은 곧장 쫓겨나는 일반 직장인과는 크게 다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정부가 은행이나 민간기업의 퇴출을 유도하고, 수만 명의 정리해고 실직자가 쏟아지는 마당에 공무원에게 ‘무노동 유임금’을 보장하는 것은 지나친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무원의 신분이 법으로 보장된 것이라고는 해도 시대에 맞지 않는 특혜라는 비판이다.

물론 정부는 퇴출대상자를 그때까지 정보화사업, 시설물 안전점검팀 등의 ‘테스크 포스’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에서 활용하는 인력은 총 대상자 972명 중 350여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구청은 활용계획조차 세워놓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 2월 정부중앙부처 구조조정 후 잉여인력을 6개월 이상 특별한 업무도 없이 놀리면서 국민세금만 축냈던 경험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서울시는 명예퇴직을 유도하기 위해 분기마다 실시하던 명예퇴직 접수를 매달 받고 있다. 올해 안에 퇴직하는 공무원은 법에 따라 퇴직금과 함께 최대 45개월분의 기본급을 명예퇴직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년을 앞둔 사람 등을 제외하곤 그렇게 밀려날 사람은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실제 서울시는 올해 감축인원을 2,100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결원이 된 800여 명을 빼면 1,200여 명, 그나마 현재 정년연장이 되어 있는 공무원 250명과 2000년까지의 정년퇴직 예상자 150여 명 등 자연감소 인력 400여 명과 소방공무원 400여 명을 빼고 나면 순수 감원인원은 400여 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하고도 남는 인원은 정년을 1, 2년 앞둔 나이든 직원들을 퇴출대상으로 선정해 해결할 계획이다. 아무리 무능하고 나태한 직원이라도 생으로 자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여기에는 신규채용을 최소화한다는 전제가 당연히 따른다. 결국 신입 공무원 선발이 무한정 미뤄지는 것도, 정부가 1만여 명의 대졸자 인턴 공무원제를 도입하려 하자 공무원들이 반발했던 것도 자기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기존 공무원들의 이기심의 투영이다.

지금의 구조조정은 국민에 봉사하는 효율적인 조직으로의 공무원 기구개편이 아닌 상부의 지시에 억지로 꿰맞추려는 또 하나의 복지부동에 다름 아니다. 너도나도 실직의 아픔을 견디며 고통을 분담하자는 마당에 아직도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기 밥그릇만 움켜쥐고 있는 공무원의 모습에 국민은 씁쓸할 뿐이다.

최호열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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