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7년 01-02월 1997-01-01   1477

시사한마당-재미동포 배신한 김창준 의원

반이민법 앞장서 백인 입장만 옹호, 한인사회 분노 폭발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온 대부분의 동포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지난 65년 이민법 개정 이후 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밀려들기 시작한 한인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주로 물질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4·29 LA 흑인폭동 사태를 겪으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졌다. 미 주류사회로의 진출이 동포사회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한인들의 미 정계로의 진입 시도가 활발해졌던 것도 바로 그즈음이다.

지난 92년 말 김창준 씨의 미연방 하원의원 당선은 동포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미국 의회에서 동포사회를 대변해줄 수 있는 한인이 있다는 것은 분명 위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동포사회의 기대와 달리 김창준 씨는 여러 이슈에 있어 한인 동포들의 이해와 배치된 입장을 취하여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재미 동포사회에서는 지난 94년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반이민 물결에 휩싸이면서 ‘한인 정치력 신장’이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동안 정치력 신장의 대명사로 불리던 한인 미연방 하원의원 1호 김창준 씨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반이민 법안들과 김창준의 두 얼굴

지난 94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불법체류자 문제를 다루는 ‘주민발의안 187’이 한창 논란이 됐을 때, 동포사회에서는 ‘주민발의안 187’은 반이민 물결의 서곡에 불과하며 앞으로 합법이민자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또다른 반이민 법안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이에 반대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주민발의안 187’은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의료혜택은 물론 교육 기회까지 박탈하는 등 사회보장 혜택을 전면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학교나 병원에서 ‘불법체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이민국에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영주권자이든 시민권자든지간에 유색인종이란 생김새만으로 불법체류자로 의심받아 차별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발의안 187’은 인종차별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미국에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불경기의 책임을 이민자들에게 전가시키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미국 경제의 침체와 더불어 이민자들에게 돌려질 화살은 ‘주민발의안 187’에서 그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반이민 물결의 전주곡에 불과한 ‘주민발의안 187’의 저지를 위해 동포사회가 다른 소수민족들과 연대해 시위를 벌이는 등 앞으로 닥칠 재앙에 대처해나가고 있을 때, 김창준 씨는 ‘주민발의안 187’은 늘어나는 라티노 불법체류자를 겨냥한 것으로서 한인사회와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지난 94년 연방하원 재선이 확실시된 선거일 자정께 한인 라디오 방송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뭘 모르는 일부 한인들이 주민발의안 187을 반대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미국사회를 모르는가 해서 깜짝 놀랐다”라며, 반대운동을 펼치는 동포들을 미 주류사회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로 치부했고, 미 주류사회로의 동화를 재차 강조했다.

‘주민발의안 187’에 대한 동포사회와 김창준 씨의 의견 차이는 합법이민자의 사회보장 혜택을 실질적으로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웰페어 개정안’이 연방의회에 상정됨으로써 좀더 분명해졌다.

‘웰페어 개정안’ 시행으로 인한 연방재정 절감 예상액 중 40% 가량이 영주권자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 거부로 충당되며, 이민자가 전체 사회보장 수혜인구의 5% 정도밖에 되지 않음(따라서 이민자는 10배의 고통분담)을 감안할 때 이 법안은 명백히 ‘이민자 희생법안’이다. ‘웰페어 개정안’ 초안에는 시민권자라 하더라도 이민자는 10년 동안 세금 보고를 해야만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현 영주권자의 사회보장 혜택 박탈과 더불어 신규 이민자들에게는 거의 모든 정부 혜택을 거부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 실제로 합법이민자들은 열심히 세금을 내고 혜택은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법안이다.

‘웰페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웰페어 의존도가 높은 한인 노인들뿐 아니라 동포사회 더 나아가 소수민족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전국의 동포사회가 하나가 되어 ‘미주봉사교육단체협의회’라는 전국단체를 결성, 다른 소수민족들과 연대해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벌여나갔다. 『워싱턴포스트』지에 소수민족의 반대의견을 담은 전면광고를 2회나 게재했으며, 각 주의 상하원 사무실을 비롯해 워싱턴 소재 국회의사당에 대표를 파견해 반대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이 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해 대통령 서명만을 남겨놓고 있는 시점에서는 마지막 수단으로 대통령 거부권에 호소하는 단식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듯 미국 내 전 소수민족들이 차별에 반대하고 이민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김창준 씨는 오히려 자신의 소속정당인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는 ‘웰페어 개정안’의 필요성을 동포사회에 선전했다. 그는 소수민족 차별, 더 나아가 인종차별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는 ‘웰페어 개정안’이 보다 나은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며, 공화당에 표를 몰아주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생계가 걸린 ‘웰페어 개정안’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동포들은 김창준 씨의 그런 태도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미국에서 성공한 이민 1세, 한인 최초의 미연방 하원의원인 김창준 씨에게 희망을 걸고 그를 후원했던 동포사회였기에 그 배신감은 더욱 컸다. 비록 그가 출마하는 선거구는 아니었지만 한인타운에서는 선거 때면 갖가지 후원의 밤을 열어 정치자금을 마련해 주었고, 각 한인 언론들도 그의 당선에 여러 가지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에 대한 한인사회의 지원은 너무 지나쳐 국내 기업의 지사와 상사들이 불법선거자금 전달로 적발돼 모 항공사 지사에 근무하는 직원이 기소되기까지 할 정도였다.

환상은 깨졌다, 한인사회 새로운 모색

미 주류사회로의 철저한 동화를 그렇게도 외치는 그가 어째서 선거자금 만큼은 미 주류사회에서 마련하지 못하고 국내 기업과 동포들에게 의존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방하원의원 3선을 위한 선거를 눈앞에 둔 지난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후원회 모임에 참석한 그는 동포들이 재정지원은 해주지 않으면서 깎아내리려 하는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며 오히려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겉은 노란 동양인이지만 속은 하얀 백인의 모습, 흔히 미국에서 말하듯이 ‘바나나’의 전형이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소수민족 이민자로서도, 같은 조국, 같은 역사를 가진 한 민족으로서도, 그 어느 구석에서도 그와 동포사회의 공통분모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단지 자신의 소속정당인 공화당에 충실한 한 사람의 정치인일 뿐이었다.

96년 선거에서 김창준 씨는 결국 3선 고지를 무사히 쟁취했다. 이번 미국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소수민족들에게 중요한 선거였다. 2년 여의 공방 끝에 결국 의회에서 통과된 ‘웰페어 개정안’의 전면시행이냐 아니면 이민자들의 반대의견을 수렴한 수정시행이냐의 문제를 비롯해 시민권 취득절차, 소수계 보호법 등 이민자들의 권익에 관련된 각종 반이민 법안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합법이민자들의 권익 제한문제로 찬성입장의 공화당과 반대입장의 민주당이 격돌했던 이번 미국선거에서 공화당 소속 김창준 씨의 당선은 어떤 의미인가?

김창준 씨는 지난 10월, 선거를 앞두고 아시아 태평양계 커뮤니티 단체들이 5개 반이민 법안에 대한 의회표결 기록을 정리해 성적표를 매긴 결과 반이민 법안에 가장 많은 찬성을 던진 의원에게 주는 낙제점인 F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백인지역에서 출마해 백인들을 위한 정치를 충실히 수행한 결과일 것이다. 이제 동포사회에서는 그에 대한 환상이 깨져가고 있다. 그는 동포사회의 모든 기대를 무참히 깨뜨려 버렸다. 3선 의원으로 당선된 후 재빨리 조국을 방문한 그를 두고 동포들은 미 주류사회로의 철저한 동화를 외치던 그가 왜 조국행을 택했는지에 대해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공한 한인 1세, 최초의 한인 연방하원 의원 김창준. 그는 재미 동포사회에 진정한 정치력 신장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남겼다. 지난 11월 5일 미국 선거에서 한인들은 유례없이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한 사람의 정치인을 통해 동포사회 전체의 정치력 신장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만큼 무모한 것인지를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동포사회의 권익옹호를 위해서는 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실질적인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동포들로 하여금 까다롭고 복잡한 미국 선거에 참여하게 했다. 재미 동포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위한 노력은 김창준 씨가 남긴 뼈아픈 교훈을 새기며 이제서야 비로소 제 방향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윤희주 재미 한인, LA거주, ‘라디오 코리아’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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