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재판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사법감시

투명한 재판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사법감시

지난 겨울 미국의 미식 축구 영웅 O.J. 심슨의 재판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우리의 관심을 법정으로 끌어들인 사건이 있었다. 부산 만덕국민학교 어린이 유괴 살인 사건. 이 사건은 사촌언니에 의한 유괴였다는 점과 20대 초반 젊은이 4명이 용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자존파의 범행을 모델로 ‘장난 삼아 범행을 하였다’는 점에서 사건 초기부터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의 외형보다도 더 일반인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담당 재판부가 통상 법원에서 심리를 하지 않는 월요일 오후 2시를 특별 기일로 정하고 300-4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법정에서 공개 하에 매주 재판을 진행시켰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재판의 과정이 이렇게 매 기일마다 관심 있게 보도되고 공개된 적이 있었던가.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1심 공판

유괴의 피해자의 사체가 범인인 사촌 언니의 집에서 발견되고 구속된 공범들이 범행을 순순히 털어 놓아 이 사건은 소위 신세대의 충동적 범죄 심리와 인명경시 풍조에 경각심을 올린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에 반전이 일어난 것은 정작 공개 법정에서 진행된 제1심 공판이 열리고부터 였다. 피고인 4명 중 사체가 집에서 발견되어 범행을 부인할 수 없었던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의 피고인이 모두 범행을 부인하며, 더욱이 경찰 수사 단계에서 자백한 것은 가혹 행위에 의해서 였다고 주장하고 재판부가 신체 검증을 통하여 그 가능성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 이 사건이 전국적인 관심으로 증폭되는 데에는 부산매일신문이라는 이 지역의 지방지가 이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공이 컸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나 나타날 때 이를 대서 특필함은 물론 공판이 열린 다음날인 매주 화요일 조간의 사회면 머리기사로 본 유괴살인 사건의 재판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재판의 진행과 여론의 동향이 피고인들에게 유리하게 들어가자, 검찰측은 언론이 법원에 앞서 여론 재판을 한다는 푸념을 털어놓기 시작하였고, 재판 진행 중에 일간신문과 인터뷰를 한 담당 재판장에 대하여 은근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매 기일마다 방청객과 취재진들로 대법정이 꽉차고 연일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했던 유괴살인사건 재판은 유전자 감식 결과를 증거로 제출한 검찰의 선고연기 신청에 의해 종결되었던 별론을 재개하면서 까지 공방을 벌인 끝에 결국 자백했던 피고인에게는 검찰 구형보다도 중한 사형이, 그러고 나머지 3명의 피고인에게는 무죄의 선고가 내려졌다.

이리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몇 달간 구금 생활을 했던 선량한 시민 3명은 풀려났다. 하지만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도 1심 재판부의 판결로 확정된 것인가. 재판부의 고뇌는 70여 페이지가 넘는 판결문과 이례적으로 공개한 합의 과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불확실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 상의 근본원리에 충실한 재판이라는 평가만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지는 결과라고 할까?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피고인들이 비록 정말 파렴치한 살인범들이었을지라도 그들의 범행을 입증할 만한 소송법 상의 증거가 명백하지 않다면, 그들은 무죄의 선고를 받아야 만할 것이라는 원칙, “99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이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딜레마, 하지만 이는 다른 사건에서 다른 피고인들이 강압적인 억지 수사와 어수룩한 증거에 의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명백히 확립되어야 할 원칙인 것이다.

투명한 재판을 위하여

재판 모니터 팀을 만들어 재판 과정을 감시(이 표현은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바탕에 깔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하는 것은 재판 과정이 무죄 추정을 받는 피고인들에게 모욕적이지는 않는지, 피고인들에게 충분한 변명의 기회를 주는지, 재판부가 대강의 심리에 의해 편협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닌지 등 법원이 적정한 절차를 거쳐 공정한 판단을 하는지를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공개되어 그 과정이 투명하게 보이는 재판은 충실해 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조직화된 참여와 또는 계속적인 감시는 법원 내부의 그 어떤 제도적인 견제보다도 재판부에 대한 강력한 견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재판의 공정한 감시를 위해서는 감시하는 사람 자체의 객관성이 담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건에 있어서는 오히려 언론이 선입관을 가지고 법원의 판단을 유도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이는 필자가 검찰 측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보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일종의 여론 재판식으로 대중매체 시대에 있어서 공개된 재판이란 그 재판 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보도가 생명이라고 할 것이고, 또한 피고인의 인격뿐만 아니라 무고한 피해자의 인권도 동시에 보장되어야 만 한다는 점에서 국가 형벌권의 집행자인 검찰측의 의견이나 주장도 피고인의 주장만큼이나 충실하게 보도되어야만 하는데도 오히려 검찰측의 주장이 생략되므로 인해서 마치도 검찰쪽은 최소한의 양심도 이성도 없는 조직으로 낙인찍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검찰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은 재판부의 판결을 통해서도 충분하게 알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검찰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지 않았고, 또 명백한 입증의 불비(不備)로 결과적으로도 재판부에서도 채택하지 않았지만.

정기적인 매체가 필요하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법원에 대한 감시는 양 당사자의 싸움에서 법에서 정한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는 지를 감시할 뿐 약자인 당사자(형사사건에서는 피고인)를 제대로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형사사건에서 변호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권위적인 법정에서 자기 변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법적인 측면을 고려한 변명에서는 더욱, 이번 사건에서 사선 변호인을 선임한 3명은 무죄를 받은 반면, 국선변호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피고인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주범으로 몰렸던 피고인은 또 시의회 부의장의 아들로서 억대의 선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선임하였다는 풍문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돈이 많아) 언론도 동원하고 변호사의 성의 있는 도움을 받아 석방된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진정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언론에 영향을 미칠 만한 힘이 없는 민초들이 피고인이 되었을 때도 이번 사건에서 행해진 것과 같은 국민의 계속적인 감시로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모니터 팀과 또 이러한 모니터 성과를 다른 외부 시민에게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소식지 등의 정기적인 매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구라도 최대의 사선 변호인에 못지 않는 충실한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국선 변호 제도의 보완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여론으로부터의 법관의 독립

미국의 심슨재판은 CNN과 Court TV에서 매일 공판을 생중계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도 앞으로 재판 방영을 전문으로 하는 유선방송 프로그램이 나올 날이 멀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선정주의에 빠지지 않고 피고인에게는 공정한 판결을 위한 보호 장치가 되고 일반 국민에게는 형사 절차에 대한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이고 성의 있는 감시 요원의 모집 교육, 적절한 취재 대상의 선정과 보도의 객관성을 통한 공신력의 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 시절 “법원의 독립” 하면 정치적인 압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우선 연상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공판 과정이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바꾸고 재판 과정이 보다 투명해지면 반대로 “법관의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성급한 우려인가. 지존파의 재판이 국민 여론이 채 가라 않기도 전에 사형이 구형되고 또 재판부에 의해 신속히 선고된 예는 국민의 격양된 여론을 담보로 봉건시대의 일벌백계적인 효과를 거두려고 하는 비민주적인 처사가 아니었나 생각해 볼 일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법감시로 우리의 권위적이면서도 가벼운 법문화를 바꾸어 나가기를 바란다.

부산에서 재판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시민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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