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5년 07-08월 1995-07-01   2328

천민자본주의와 천민적 시민사회

천민자본주의와 천민적 시민사회

기형적 경제성장과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한국의 천민자본주의는 천민적 시민사회를 형성했다. 이로 인해 파생되고 있는 여러 폐단을 진단하고, 시민적 시민사회 정착을 향한 대안을 제시한다.

시민사회의 기본적인 속성은 개명된 사회로서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국가의 개입 없이도 신뢰와 연대를 만들어 내며 또한 여론의 형성을 통해 국가를 견제하는 것이다. 시민성(Civility)은 근대적인 시민사회의 큰 특징이며, 국가가 이러한 시민성을 갖지 못할 때, 시민사회는 국가에 저항하고 도전해왔다. 시민성을 짓밟은 군사주의(Militarism)는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군사독재 기간에 형성된 한국사회의 속성은 쉽게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다.

천민자본주의가 천민적 시민사회 낳아

한국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속성은 천민자본주의다. 천민자본주의의 의미는 매우 수사적인 표현이지만, 한국국사회의 많은 속성들을 함축하고 있다. 먼저 오로지 ‘돈’을 모으는 데 많은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이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자기만 돈을 벌면 된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업들의 활동도 권력과 유착하여, 향응과 뇌물을 무기로 하여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윤리는 돈 앞에 무릎을 끓었고, 돈이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를 차지하는 새로운 신이 되었다.

둘째로 천민자본주의는 경제 이외의 영역에서도 시민의식과 도덕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을 뜻한다. 이제 거리의 자동차들은 홉스가 주장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연상시킬 정도로 무질서를 연출하고 있다. 양보와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자동차를 만든 원래의 목적인 빨리 움직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실현이나 하려는 듯, 길거리는 무법천지다.

셋째로 천민자본주의는 근대적인 모든 조직 속에서도 이러한 속성들이 반영된다는 점이다. 정부조직이나 교육기관에서도 천민적인 사고방식이 판을 치고, 오로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기만하고 이용하는 행위들이 넘쳐 흐르고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사는 사람은 사회생활에 실패한다는 보통사람들의 상식이 이러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군사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과 저항이 한국 시민사회 성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군사독재가 사라지고 정치적 권위주의가 약화됨에 따라 국가를 상대로 한 시민사회의 투쟁과 저항의 성격도 점차 바뀌어갔다. 이러한 와중에서 드러난 자율성과 시민성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도래가 용이하지 않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천민자본주의에 의해 물들여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상호이해와 존중,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부문이 발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판치는 연고주의와 혈연주의

독재정권과 천민자본주의가 발전한 과정을 해부해보면, 한국에서 시민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해치고 있는 암세포들이 많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고주의와 혈연주의가 그것이다.

정당성이 없었던 독재정권은 정권의 안보를 위하여 특정한 지역출신들을 정부 요직에 임명하였다. 특정지역 출신의 우대와 이들이 보인 독재정권에 대한 충성은 한국사회의 특징적인 인간관계의 하나로 논의되는 연고주의를 발달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연고주의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연고주의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하에서 심화되었다. 연고주의는 대체로 출신지역에 기초한 지역과 출신학교에 기초한 학연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급격히 성장하여 문맹률이 매우 낮고, 고등교육 이수자 비율이 세계에서도 높은 나라에 속하는 한국사회에서 각급 학교의 동창회가 시민사회 조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것이 정치적 이념이나 개인적인 이해보다 더 중시되는 우리의 독특한 현상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연고주의를 이용한 장기집권의 결과물이었다.

이 연고주의는 정치에만 한정되지는 않았다. 학교나 기업의 채용과정에서 연고주의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채용기준으로 작용했다. 특정 지역 출신이나 특정 학교 출신만을 채용한다던가 혹은 배제하는 현상들이 존재하고 있다. 연고주의는 한국사회를 조직하고 있는 핏줄이 되었다.

혈연주의는 한국사회의 또다른 조직원리다.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과거 1차집단이었던 혈연집단은 그 의미를 상실해가는 것이 서구의 역사였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사회의 경우 혈연집단은 종친회의 형식으로 강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의 의의가 주기적인 선거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재확인되고 있다. 특히 지방의 경우 종친회의 위력은 대단히 크다. 유권자들의 정체성이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귀속적인 지위인 혈연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근대적인 시민사회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집단이기주의에 춤추는 시민사회

연고주의나 혈연주의는 집단이기주의의 한 형태다. 연고주의는 특정 지역을 단위로 집단적인 조직과 이익추구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혈연주의는 가문을 중심으로 조직이 이루어지고 이익을 추구해나가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시민사회를 움직이는 두 가지 집단이기주의가 개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조직참여와 이익추구와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이기주의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집단을 구성하는 단위가 더 작은 경우로 지역이기주의와 가족이기주의가 있다. 쓰레기 매립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위주의적 행정기관과 지역주민 간의 대립은 뒤틀린 이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행정기관의 이기주의는 비민주성에 기초한다. 지역주민들의 요구나 관심을 무시하고 행정기관의 일괄적인 결정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 지역에는 안 된다라는 지역주민들의 이기주의도 문제다. 이것은 자신의 차 안은 깨끗해야 되기 때문에 쓰레기를 도로에 버리는 수많은 운전자들의 태도와 똑같은 이기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교육경쟁의 열풍이 불면서 생긴 새로운 소집단이기주의는 가족주의다.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라는 가족주의는 촌지와 과외로 나타난다. 규칙을 지키면 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학부모들은 자신들만의 자녀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더구나 핵가족화하면서 자녀의 수가 적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과 정성은 더욱 집요해졌다.

굴절된 시민사회와 건전한 시민사회운동

한국의 시민사회는 한마디로 굴절되어 있다. 삐뚤어진 자본주의와 독재정치를 통하여 형성된 시민들의 의식은 굴절되어 있고, 동창회나 종친회와 같은 오래된 자발적인 시민조직들도 집단이기주의로 가득찬 조직들이다. 그리고 정부주도 하에 만들어진 수많은 관변단체와 조직들이 우리 사회를 그물처럼 꿰고 있다. 이러한 굴절된 시민사회를 치료하는 것이 우리의 제1의 과제다.

우리 사회는 일차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시민의식의 회복이 필요하다. 진정한 시민의식이란 일차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전 사회적인 수준에서 연고주의와 혈연주의 그리고 각종 권력을 이용하여 이득을 추구하려는 집단이기주의를 척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도 한국의 정치권력은 특정한 지역출신들로 독점되어 있다. 이러한 속성은 정권이 취약하기 때문에 정권안보를 위하여 내부자로 인식되는 고향이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치 엘리트 충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시민사회가 바뀌기 위해서는 정치부문도 바뀌어야 한다. 정치차원에서 연고주의가 만연해 있는 경우 이를 이용하기 위하여 기업도 연고주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시민사회는 시민성의 확보, 연대주의의 회복, 사회적 참여의 증진 등을 통하여 발전할 수 있다. 시민성이 결여된 수많은 이기적 개인들은 시민사회의 핵이다. 이들은 담배꽁초나 온갖 쓰레기를 도로에 버리는 운전자의 모습으로, 교통법규나 신호등을 지키지 않는 보행자로, 학교 교사들에게 촌지를 주는 학부모로, 선거에서 금품을 요구하는 유권자로, 부동산투기꾼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불건전한 이기주의자들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이제 시민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천민적 시민사회에서 시민적 시민사회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는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나마 발전했다. 때로는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 때로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때로는 우리 사회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자발적 결사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한국사회의 미래를 밝게 하는 희망의 등불이다. 비록 사회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실천적인 움직임들이 개인들의 헌실적인 노력으로 또는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미래를 밝게 하는 요소들이다.

이기심과 욕심으로 가득찬 천민자본주의 시민사회를 극복하고 인간이 대접받고 또 대접을 하는 발전된 시민사회를 만드는 작업은 앞으로의 과제다. 이러한 과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를 위하여 열심히 뛰는 사람들과 조직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미래는 밝다.

시민사회의 또 하나의 속성은 폭력과 범죄다. 폭력과 범죄로 인하여 사회성원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할 때, 그 사회는 그야말로 해체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시민사회의 본질에 대해서 추상적인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천민자본주의에서 형성된 천민적 시민사회를 지양하여, 시민적 시민사회를 발전시켜 나아가자.

신광영(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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