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2월 2010-12-01   5410

김용민이 만난 사람-조국(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중은 유능한 정부를 원하고,
     진보는 무능하지 않다”

        조국(曺國)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은진 작가

 

2010년 마지막 인터뷰이로 조국曺國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선정됐다. 그러나 2011년 첫 인터뷰이로도 손색이 없다. 그의 언어는 희망으로 빼곡했기에 그렇다. 11월 18일 오후, 서울대 법과대학과 교수동. 이름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로부터 이야기를 풀었다.

   “성함이 강렬한 두 분이 있습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그리고 조국 교수입니다.” 답은 이랬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학기 초 발표는 모두 저의 몫이었지요. 선생님이 제 이름을 우선 인지하셨거든요. 그때 터득했지요. 나는 운명적으로 가장 먼저 호출 받게 돼 있다고. 심리적 강박 비슷했지요. (웃음)”

   이때 나는 ‘조국祖國이 호출하면 어떻게 하겠나’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조국 교수는 “그걸 그렇게 해석하다니…”하는 웃음을 뿜어냈다. 이 내용을 우선 트위터에 올렸다. 그랬더니 ‘조국 시리즈’가 줄지어 탄생했다. 이런 것이다. △ 조국 교수와 서먹서먹해지면 : 조국과 등진 사람 △ 조국 교수에게 뒤통수를 치면 : 조국을 배반한 사람 △ 조국 교수의 전담 펀드매니저 : 조국의 번영을 위해 애쓴 사람, 이런 식이었다.

   조국 교수가 새롭게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은 진보가 정권을 다시 가져오는 날, 그 날 이후에 나라의 청사진을 제시했기에 그렇다. (물론 집권을 위한 전략도 포함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의 ‘기막힌 현실’을 탄식하면서 모두가 원성해마지 않을 때 ‘집권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가 이끄는 나라, 그 미래를 구체적으로 짚어봤다.


냉전의 남북관계, 공동운명체로 풀자

우선 현안으로 떠오른 대북관계. 그가 연평도 사건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북한은 사과하지 않는다. 남한은 북한 규탄에 몰입한다. 미국은 중국에게 대북 압력을 넣으라고 말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양비론’과 자제를 강조한다. 똑같은 시나리오. 군사적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북한을 견인하고 변화시킬 남측의 ‘지렛대’가 사라진 것이 안타깝다. 남북한 비상대화채널 마저 끊어진 상황이다. 대북 보복, 개성공단 철수, 북한 자체붕괴 대기와 흡수통일 등이 대북정책이 될 수 있을까?”

  이보다 앞서 인터뷰한 내용에는 이번 사건에도 빠짐없이 관통할 논리를 설파했다.

 “북한에도 맹동주의와 모험주의로 움직이는 강경 호전세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대응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남북관계를 완전히 냉전시기로 돌리려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명박 정권도 결국은 천안함 사건으로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를 녹이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대북 강경정책은 실은 대북용이 아니라 대남용이다. 얄팍한 지지층의 MB가 기댈 거의 유일한 지지대는 보수층인데, 이들마저 이반한다면 고립무원 상태가 된다. 그래서 남북관계가 어떻게 망가지건 간에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비책은 ‘멸공 레토릭’이다.

   이래놓고는 북한이 도발할 상황을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 ‘설마 저들이 준동蠢動하랴’하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MB도 햇볕정책의 열매인 ‘상식이 된 평화’가 내면화된 경우이다. 그렇다. 그게 답이다. 그러나 그 답을 의지적으로 회피하는 MB는 현재 길을 잃은 상태이다.

   “6·15, 10·4 선언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 답이 없습니다. 전쟁 위기를 막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가동 등 남과 북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구조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금강산 관광 공간이 하나 둘 생기면 북한군의 퇴각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고받는 게 많으면 남북은 공동운명체가 됩니다. 이러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까요?”


경쟁중독 사회, ‘최소한’의 원리는 있어야

‘상생’이 답이라는 이야기다. 2004년 탄핵이 불발로 그치고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 확보, 노무현 대통령의 현업 복구가 이어지자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한 목소리로 “이제는 상생이다”고 한 목소리를 내걸었다. 이때 보편 언어가 돼 버린 상생. 그러나 이 상생은 보수정당이 집권하자마자 산산조각 났다. 경쟁이라는 예기銳器로 말이다. 상생과 경쟁은 종성終聲에 모두 ㅇ이 들어가는 것 말고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경쟁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는 않지요. 한국 사회의 경쟁에서 문제는 사람을 잡는다는 데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경쟁이 공정한 원칙 속에서 이뤄지는 게 아닌 것이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의 연속이라는 점이지요. 경쟁중독을 막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필요합니다. ‘최소한’의 원리가 있어야 하지요. 이는 경쟁에서 도태된 이들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최소한’을 말합니다. 구직, 실직, 노동력 상실, 불안한 고용 상황에서도 사회구성원을 지지해줄 안전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정도면 탈경쟁 본위 사회를 향한 대안 중 ‘보완책’에 불과하다. 민중은 다람쥐 쳇바퀴에서 헤어 나오게 해 줄 모세의 지도력을 찾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아이건 어른이건 ‘노는 권리’가 필요합니다.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OECD 소속 국가 중 노동시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죽어라 일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돼 있잖아요.”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노동 시간 단축에 있었다”며 “우리나라의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관련 기사에 이런 트위터 댓글을 달았다. “만수 씨, 일자리부터 만드세요”라고.

재벌 세습경영, 노조 인정과 경영의 투명화로

‘죽어라 일하라’ 구호가 학교에서는 ‘죽어라 공부하라’로 치환될 수 있다. 교육 당국자들은 그 덕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 단위로 치르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최근 우리가 2위에 오를 수 있다고 입 모아 말한다. 그러나 학업 스트레스가 전무하다시피 한 나라, 핀란드가 세 번 연속 1위를 차지했다면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의 2등에 잿빛이 드리워진다. 사실 국가가 나서서 경쟁을 없앨 수 없지만 낙오자를 끌어안아주는 역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MB정부는 도저히 실적을 계량화할 수 없는 교육 분야에까지 경쟁의 원리를 억지로 도입했다. ‘성적 얼마 올리지 않을 경우 무능 교사가 되는 구조’가 그렇다. 물론 그들이 사전적 의미의 경쟁을 도입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특권층 자녀의 특혜 취업이 상징적이다. 잣대도 이중적이다. 국가 특히 군사적 권력의 이양을 상징하는 북한의 3대 세습은 희대의 코미디라고 비난하면서도 삼성의 3대 세습에는 ‘희망’을 덧칠한다. (이재용을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는 언론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보도를 하는 보수언론의 삼대 거두는 최대 4대 완성, 최소 3대 세습 시도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조국 교수는 ‘경영’ 문제에 관한 ‘세습 비판’에 대해 이견을 갖고 있다.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전에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도 “국가권력의 세습과 기업의 상속은 좀 다릅니다. 기업은 사적 권력입니다”라고 했다.

  “가족기업 자체는 인정할 수 있어요. 과거에 진보 개혁 진영에서는 ‘재벌 해체’를 주장했었죠. 그러나 해체된 기업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이를테면 국영기업으로 만든다던지, 노동자가 인수해 운영한다던지 그렇다면 그 재원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만들지 못했어요.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을 보죠. 6대째 약 150년 동안 세습 경영을 했지요. 하지만 이 기업은 불법경영이나 불법상속이 없어요. 대기업과 노조가 ‘노동조합 인정 및 경영 참여’라는 카드로 빅딜을 한 거지요. 노조의 경영 참여는 ‘산업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현재 재벌의 경우, 총수와 그 가족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투명한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결정의 결과에 총수가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예요. 권한만 있고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경영의 투명화가 필요합니다.”

진보의 욕망, 이념 아닌 ‘삶의 문제’로 새롭게 설정하라

‘재벌은 나쁘다’ 진보 개혁 진영의 시각은 선명하다. 그래서 단순하다. 그러나 재벌 체제는 온존한다. 선험적 지식으로 재벌 체제의 문제점을 터득했을 젊은이들은 여전히 꾸역꾸역 대기업 공채에 몰려든다. 이념과 욕망이 멀어질 때 진보 개혁 진영은 위기를 만났다. 조국 교수는 “진보의 욕망을 디자인하라”고 언급한다.

 “욕망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공정, 평등, 연대 등의 진보적 가치에 따라 욕망의 내용과 방향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어려운 말이다. 제주대 이상이 교수의 표현을 빌렸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복지국가’ 전략이 아닌 ‘복지 확대’ 전략을 취했습니다. 복지를 여전히 ‘시혜적 복지’, ‘잔여적 복지’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회적 기본소득, 모든 아동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아동수당, 실업과 육아 등으로 인한 소득손실을 보전해주는 고용보험과 실업수당, 질병을 인한 소득손실을 보전해주는 상병급여, 노후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국민연금 등은 혜택이 제한적이거나 실현되지 못했다. 이런 정책, 완전 실현도 못했다. 진보 진영 안에서 이명박 정부의 시혜 본위 복지 정책을 비판하지만 실은 그 원조가 지난 10년 민주 정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전략의 부재도 문제였다. 무엇을 우선에 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든 되돌릴 수 없도록 ‘말뚝’을 박을 것인지 효율성 및 지속성에 대한 사려도 얕았다.

  “대중은 언제나 유능한 정부를 원합니다. 진보는 무능하지 않고요. 교육이건 일자리건 의료건, 내가 세금을 내면 반드시 나와 내 자녀에게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의 맛, 평화 공존의 맛을 보고 나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그 수준이 떨어지자 당장 짜증이 나잖아요. 진보가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의 진한 맛을 비전으로 보여주고 실현에 옮기면 집권 기간도 길어질뿐더러 사회 구조적 혁신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한 맛’은 무엇일까. 조국 교수는 ‘무상급식’을 예로 들었다.

  ‘무상급식’ 공약이 나왔을 때에 기존 진보 개혁 진영에서조차 반대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비판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어요. 대중의 요구는 복합적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박해당하는 현실을 직시합니다. 그러나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지요. 그걸 김상곤에게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보수언론은 그 휘발력을 알고 ‘김상곤 짓밟기’에 가세했습니다. 그때까지도 민주당은 논쟁에 끼어들지 않았어요. 기존 진보 개혁 진영이 교육감 한 사람의 상상력에도 못 미쳤다는 이야기입니다.”

   답답한 현실이다. 지난 총선, 여당의 뉴타운 공약 같은 ‘몸에 안 좋은 진한 맛’ 때문에 고배를 마신 진보 개혁 진영 아닌가. 조국 교수는 무상급식이 사람 이익에 초점에 맞춰진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물었다. ‘무상급식 시즌 2’는 무엇이 될까 하고.

  “보육, 교육, 취업, 주택, 노후 이게 인간의 욕망체계와 깊은 연관성이 있어요. 아주 선명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질병을 치유받을 수 있다’는 대안이 좋은 예겠지요. 정당에 있는 친구들에게 2012년 총선 전 시점에 대 여섯 개 정도 패키지 비전, 즉 ‘진보의 종합선물세트’를 보여줘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까지 민주개혁진영은 밥보다 민주주의가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건 군사정권 시절에서는 통하는 말. 민주주의 정착 시기에는 민주주의가 밥이 된다는 설명이다.

인권은 보수 진보가 정치색 없이 만나는 공공 영역

진보의 특산품은 ‘인권’이다. 최근 조국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표류를 걱정하며 위원직을 내놓았다. 현 정부의 인권 정책, 아니 인권 무정책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언론지상에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도 토로했다.

  “현병철 현 위원장은 인권 전문가가 아닙니다. 취임 첫 날에 ‘자신은 인권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어요. 이 말을 배우며 일하겠다는 선의로 해석할 수 있지요. 하지만 위원장 권한을 극대화하려는 태도를 보이더라고요. 이는 기존 위원의 사퇴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물었어요. ‘지금 상임위원 임기가 곧 만료되는데 그것도 못 기다립니까? 정권 입맛에 맞는 위원 들이고 그때엔 다시 권한을 나눠줄 요량입니까’라고요. 아무 말을 못하더군요.”

   인권도 MB 손을 통하면 전혀 새로운 의미가 된다. 친정부 성향의 한 비상임위원이 회의 중 “취업자 연령 제한, 이대로 둬야 합니다. 청년들이 직장을 못 구해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어요”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조국 교수는 인권위의 ‘탈 당파’를 강조한다.
 
  “인권위원회는 중간지대, 공유지여야 합니다. 진보나 보수의 독점적 영역이 돼서는 안 됩니다. 수시로 주인이 바뀌는 권력과는 달리 인권의 가치는 불변 영구적이어야 하거든요. 인권은 보수 진보가 정치색채 배제하고 대화할 수 있는 공공 영역이 돼야 합니다. 이마저도 정치 논리에 오염돼서는 안 됩니다.”

   시민단체의 앞날에 대해서도 물었다. ‘진보의 성찰’, 만약 이것이 책으로 엮일 경우 시민단체편이 가장 많은 지면을 점하리라.

  “참여연대는 순수 회원 중심 구조라 자생력이 있으니 논외로 하지요. 그러나 MB정부 들어 시민사회단체에 선별적,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공익사업 보조금 지원을 중지시켜 일부 시민단체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실 정치권력과 시민단체의 관계설정이 간단치 않습니다. 야합하지 않고 등지지도 않는 건강한 파트너 또한 견제자가 돼야 합니다. ‘우호적 권력’이 나오기 보다는 ‘권력의 맹성’을 추동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도덕적, 정치적 역량을 키울 때입니다.”

  조국 교수에게 정말 궁금한 것 하나를 물었다. “‘큰 꿈’이 있느냐”라고. 답은 간단했다. “제 발언이 나름 주목받고 있는 것은 제가 어느 편에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려면 한 편에 서야지요. 그럴 생각 없습니다.” 이 말을 아쉽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기대를 부르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독자의 몫이다. 


* 조국 교수의 인터뷰 내용 중에는 신간 『진보 집권 플랜』(오마이북)에서의 발언도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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