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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원하는 바를
 백안시해선 안된다”



정현백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글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영광 사진가

이명박 정부, 2년 지났다. 그의 시대에 대한 피로도가 심한 이들은 한결같이 “그것밖에 안 지났어?”라며 놀라움 반 탄식 반을 토로한다. 지난至難할 것이 분명한 남은 3년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반응에 장난기가 발동해 더 약 오르라고 이렇게 대꾸한다. “이명박 정부 임기 1825일 중에 730일이 지난 셈인데 이걸 46억년 지구연대기로 환산하면 선캄브리아시대라는 거 알아?”

사실 도덕이 경시되고 부가 숭상되는 이 시대는 철학의 선캄브리아시대라 아니할 수 없다. 민주주의 선캄브리아시대는 또 아닌가. 법은 이명박 대통령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통치도구화 됐고, 양심은 ‘세종시를 원안대로 하겠다’고 십수번 약속하다가 뒤집은 이명박 대통령의 변명성 수사修辭로 전락됐다. 지구상에는 이명박 대통령만 있는 것인가. 하긴 선캄브리아는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 시대이다.

2월 17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카페에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인 정현백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를 만났다. “사회학을 전공해 이론으로 무장된 인사가 해야 하는데 과거 사료를 연구하는 게 일상인 내가 시민운동에 앞장서는 건 부담이다”라며 겸손을 표했지만, 이미, 양성평등, 정치개혁, 남북화해협력, 노동정의 실현을 위해 큰 족적을 남긴 그이다. ‘참여연대 대표로서의 포부’를 뒷전으로 미루고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수상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독일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히틀러에 열광한 건 실업자문제 해결해줬기 때문”

히틀러는 600만 유태인을 상대로 재산을 가로채고, 생체실험을 하며, 학살까지 감행했지만 놀랍게도 이 과정 가운데 범법의 우愚를 남긴 흔적이 없다. 모든 악행을 도모하기 전에 그 악행을 정당화할 근거를 입법화한 것이다. 그는 압도적인 표로 독일의 수반이 됐다. 아울러 절대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탓에 원초적으로 불법인 군부정권의 짓이 아니었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민간 정부가 행한 것이다. 이 미증유未曾有의 합법적 ‘폭거’, 우리에겐 생소하나 독일에겐 70년 전 일이었다. 비교가 가능할까.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과 히틀러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열광’이 그렇습니다. 대니얼 골든하겐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치학 박사 논문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유태인을 가스실에 보내 죽도록 하고, 가스가 빠진 뒤 엉켜 죽은 시신을 떼어내 금니를 떼어내는 일을 하는 독일인들, 강제에 의해 또는 정신상태가 이상해서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정상이었고 자발적이었으며 열의가 있었다.’”

정현백 대표는 곧바로 히틀러 체제 속에서 이런 의미를 찾아냈다.
 
“나치가 등장하던 시기에 좌파가 허약했느냐.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대중은 히틀러 쪽에 쏠렸지요. 좌파는 그들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대중이 히틀러에 열광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실업자 문제를 해결해줬다는 점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었습니다. 훗날에는 금융자본에 붙었지만, 초기엔 모든 형태의 독점자본을 반대했습니다. 또한 볼셰비키 노선도 반대했습니다.”

문제는 결국 ‘대중의 사적 이익’이었다. 계속 들어보자.

“이른바 민주개혁진영은 민주화 운동기에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많이 지났는데 그 관념에 변화가 없습니다. 대안 사회를 지향하더라도 그 때 그 때의 상황에서 대중의 사적 이익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필자는 솔직히 이 부분에서 섬뜩했다. 민주개혁진영이 대선과 총선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했음에도, 그나마 재보선에서 이기고, 지방선거에서의 경쟁력을 운위할 수 있는 기반은 ‘이 정부의 실정失政’이었다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지향점도 가치도 모호하다만) 대중의 사적 이익에 충실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숱한 약속을 끝내 지킨다면, 그렇게 해서 개선의 삶의 질을 서민계층이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까. ‘콧수염 없는 히틀러’의 등장을 막을 장치가 퇴임시기 등 임기를 명시한 헌법 말고는 없는 현실을 걱정하도록 만들지 않을까.

“우리가 먼저 보수에 말걸기 해야”

몇몇 학자들이 우려한대로 ‘좌파와 우파 어디에서도 대안을 찾지 못한 대중이 다음 정권에서 파시즘을 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궁금했다. 히틀러라는 독초가 무럭무럭 크도록 해준 온상이 바로 ‘실업 위기’였기에 말이다. 게다가 지금 사실상의 실업자가 400만에 이른다.

“대중은 실업의 위기가 극에 달하면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파시즘 우려는 과장입니다. 한국사회는 경제의 국외 의존도가 높습니다. 국수적 즉 폐쇄적 색채를 대내외에 표출하기엔 모험적 요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실업의 문제를 가벼이 볼 일은 아닙니다. 대안 제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중의 심리는 신경질적으로 변모하게 돼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로서의 ‘포부’ 표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백안시해서는 안 됩니다. ‘대중이 원하는 바’에 말입니다. 그러면 벗어야 합니다. 공동체,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고 현실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또한 거기에 내재된 엘리트주의까지 말입니다. 시민운동에 참여하면 탄압 받는 위험이 없으면서도 내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대중의 뇌리에 심어줘야 합니다.”

이른바 진보 진영이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한 채 불신의 수렁에 곤두박질 친 이유는 무엇인가. 상향식 소통 구조라는 본령本領을 상실한 채 끝내 상층부 엘리트 지식인이 주도하는 하향식 통보 구조로 전락한 탓이 크다고들 말한다. 안타까운 점은 ‘하여간 빨갱이들 하는 짓이란…’ 이런 폄하 속에 주택건설, 소비조합, 생활협동조합, 대안적 삶 운동 같은 가치 지향적 시도까지 도매금으로 사장死藏됐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 번졌던 ‘붉은 비엔나’ 운동 때, 지방정부는 노동자가 살 수 있는 공간 6만 채를 지으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건축과 조경 등 공동체 시설을 만듦에 있어 공공복리를 앞세웠고, 모든 식사를 공동체가 함께 했던 것입니다.”

외형은 성장과 개발이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공공성과 복지, 공동체의 가치가 하수처럼 흐른다. 결국 진보 진영만의 성장과 개발의 원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동구 사회주의가 실패했고, 유럽의 진보정치도 대안제시를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만 대중에게 진보정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정부가 보수를 표방하던 진보를 표방하던 진전된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을 겁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네 보수 진영에게서는 철학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대화 파트너를 찾기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참여연대가 공론의 장 열어야”


논의의 초점이 보수진영으로 옮겨갔다.

“서구의 경우, 보수가 사회복지 정책 수립에 앞장 섰습니다. 특히 기독교에 기반을 둔 기독교민주당의 경우도 사회복지의 시스템화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재밌는 것은 최근에 유럽 극단주의자Extremism조차 사회복지에 대한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죠. 빈곤하기 짝이 없는 우리 보수 진영의 풍토와는 시야 면에서부터 대비됩니다. 한국의 장기적 미래에 대한 구상이 필요합니다. 우리 시민사회는 지금 보수 진영과 불필요한 소모전에 역량을 허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같이 존폐를 걱정해야할 만큼 전방위적인 공격과 압박을 당하는 상황에서 이런 논의는 매우 사치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하긴 촛불집회 이후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광폭한 탄압에 즉자적인 대응에 천착한 것이, 아니 천착해진 것이 우리 시민운동이다.

“우리가 먼저 보수에게 말 걸기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빨갱이’ 운운하는 상대의 태도는 결국 소통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몰이해의 문제 아닙니까. 대화가 가능한 합리적 보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만들어야죠. 합리적 보수는 합리적 진보가 만들 수 있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것처럼, 대화가 최선의 제어임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합리적 진보가 합리적 보수를 추동해 함께 해 나가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다시 히틀러 이야기가 나왔다.

“히틀러 세력이 발호할 수 있었던 토양은 경제적 ‘양극화’였습니다. 1920년대부터 번졌던 파시스트 운동은 무려 30개 나라에서 발생했습니다. 여기엔 미국 영국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미국 영국에서는 수그러들었습니다. 대신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번성했습니다. 핵심은 중산층의 경제적 튼실 여부였습니다. 튼실하지 않은 구조 속에서 파시즘이 싹텄던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범하는 민주주의 압살에만 우리의 고민이 집중돼서는 안 됩니다. 장기적으로 양극화 문제에도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중산층의 소생이 양극화 해소의 첩경이며, 나아가 병들지 않는 민주주의를 위한 백신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길은 넓고 창창해 보이나 차는 웅덩이에 빠져 헛바퀴만 돈다. 이명박 정부가 쳐 놓은 ‘좌파’, ‘불법시위’의 그물에 얽혀 옴짝달싹 못하는 시민사회의 현실이 그렇다. ‘내 코가 석자’인 상황, 정현백 대표는 ‘담론 형성’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제시했다.
 
“참여연대가 해 온 그간의 가치, 이를테면 검찰개혁, 의회감시, 인권옹호 등은 앞으로도 더 고양해야 할 가치라고 봅니다. 여기에 더해 참여연대가 공론의 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한국의 미래에 대한 책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서구와는 달리 지적 네트워크나 가치 연대가 상당히 약합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합니다. 특히 온라인 분야에서의 지평 확대는 필수적입니다. 인기 있는 담론 형성을 선도해갔으면 합니다.”


“지금껏 다져온 민주주의 토대에 자신감 갖기”

급속한 산업화 그리고 외환위기, 경쟁력이라면 사람의 가치도 판별하는 신자유주의. 이 과정에서 권익을 침해당한 이들의 편에 섰던 시민운동. 이제는 하나의 공적 체계로 자리 잡는가 싶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몰아닥친 지원금 삭감, 공안 수사, 색깔공세라는 전방위적 위협에 심각하게 위축돼 있다.

그러나 정현백 대표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50%대를 넘나드는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역대 동기대비 최대 지지율. 자기 사람 심는 족족 찬양을 연발하는 관제방송의 영향력. 여기에 더한 이른바 ‘조중동’의 혹세무민. 그리고 ‘대안’ 없는 야당의 무력감. 맥없는 낙관은 아닐까. 유일한 변수가‘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열심히 싸워서 자중지란自中之亂 속에 괴멸하는 것 정도’라면 과장일까. 과장이 있었다면 냉소이다.
 
“우리가 다져온 민주주의의 토대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제 아무리 법치를 앞세워 독재 체제를 강고히 하려 해도 민주주의 시스템을 바꿀 수 없습니다.” 숨죽인 대중을 직시하라는 조언도 한다.

“이명박 정부 시대의 공안은 압제 속에서 조성된 것이지요. 대중은 자신이 쌓아온 삶의 토대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득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민을 믿지 않는 시민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의 다름 아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세월, 혹시 시민운동이 간과해 왔던 과제는 또한 실추된 초심은 없었을까. 더디 갈 때 깊이 성찰해봄은 어떨까. ‘대중의 사적 이익에 대한 관심’, ‘양극화 극복을 위한 성의 있는 대안 마련’, ‘합리적 소통구조를 위한 담론 형성’ 이런 것을 말이다. 혹시 아는가. ‘진보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여기에 담겨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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