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3월 2011-03-01   3111

김용민이 만난 사람-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길을 걸어온 사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길을 걸어온 사람



이석태 변호사,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은진 작가

사람들은 참여연대 대표 쯤 되면 기본적으로 대단한 ‘화력’이 있어야 하는 줄 안다. 하긴 지난 여름 유엔에 대한 천안함 진상조사 청원 건으로 촉발된 ‘어버이의 난’을 지켜본 이들은 참여연대 활동가가 보통 배짱과 투지로는 감내하기 힘든 일이라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요건은 ‘절망하지 않는 자세’라고 본다. 옳고 바른 세상 외에 다른 타산(打算)을 하지 않는 태도가 그렇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일전에 “변절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절망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돈 잘버는’ 변호사에서 ‘돈 안되는’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석태 신임 공동대표를 만난 것은 2월 25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이었다. 그런데 사무실 입구에 걸린 소속 변호사 명단에 ‘이돈명’ 세 글자가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고인이 된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더 지났는데 고칠 생각이 없는 것일까. 방도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그대로란다.

  “조선대 총장 마쳤을 때 저희가 모셔왔죠.”

  이돈명 밑에 이석태, 김형태 등 한국 인권변호의 대표 인사들의 명패가 보인다. 나름 ‘짬밥’이 있는데 선배 변호사와 함께 일하는 것이 여의(如意)했을까. 고인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사실 고인은 원래 민사사건 전문 변호사였다. 1963년 사무실을 개업한 뒤 ‘돈이 정신없이 들어오던(고인의 표현)’ 때를 겪었다고 한다. 젊을 때는 정의를 외치다가도 나이 들면 안정된 삶 속에 안주하게 마련인데, 고인, 지천명의 나이에 평탄한 삶을 버리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런 어른을 막연히 존경해서 모신 것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이력과 가치관을 가진 터라 격의(隔意)를 상실한 이유도 컸을 것이다. 이석태 대표의 삶이 그런 의미에서 꽤 상통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꺼낸 말이다. 그 역시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로펌에 들어갔어요. 꽤 컸지요. 큰 기업을 상대로 했으니 그랬겠지요.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사건기록을 이렇게 또 저렇게 따져 봐도 기업 주장보다는 노동자 주장이 더 합리적인 것이에요. 법률가 시각에서 봤을 때에 부당한 것은 못 참겠더라고요.”

  시대가 신자유주의의 바람을 타고 가면서 변호사 이석태의 생각 역시 그만큼 노동자 쪽에 기울게 됐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약자 편에 서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초심을 잃고 권력자 주변을 배회하는 속물들만 봐 와서인지 그의 그 ‘자연스러움’이 낯설게 느껴진다.

  “제가 하기 편하고 보람 있고 즐거운 분야에서 일해 온 것입니다. 물론 ‘돈이 되는 분야’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좋은 동료 및 선배와 지내는 게 행복하거든요. 참 럭키한 인생입니다.”

  사실 이 언급은 ‘요즘 약자의 대변자보다는 영리 추구 법조인이 되려는 이들이 적잖습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인권 옹호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라는 물음 속에서 나왔다. 이석태 대표는 처음에 말하기를 꺼려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길이었습니다.”라는 답에 이렇게 평했다. ‘럭셔리하지는 않지만 럭키한 삶이셨군요.’라고.

“사법개혁 본질은 특권 지위 해체에 있다”

그런 이석태 대표가 ‘뒷조사’ 업무를 하던 때도 있었다. 참여정부 초기 민정수석실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잠깐 일하던 시기였다. 대단히 합법적이고 긴요한 일이기에 심부름센터를 연상케 하는 ‘뒷조사’로 묘사하는 게 경망스럽긴 하다만, 요즘은 ‘성격 불문한 모든 뒷조사=경망스러움’ 도식이 가능하다. ‘다 이명박 정부 탓’이다. 때마침 대통령 취임 3주년 날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 사전에 레임덕이 없다고 말했지만 국가정보원의 스파이 미수 대망신과 민간인 사찰은 정권의 기반을 흔들고도 남는다.

  “‘국민을 모신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특정시대 특정지도자를 모시느냐’ 이 차이는 큽니다. 설령 대통령이 데려온 인물이라도 임명되고 나서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합목적인 인재를 선발해도 추천, 인선, 임명자에게 충성하는 경우가 있었지요. 그러나 이렇게 심한 전례가 있었나 싶습니다.”

  국가정보원 스파이 행동과 관련해 2월 23일자 <한겨레>는 ‘이 사건의 흐름을 잘 아는 관계자’가 “과거에도 여러 곳에서 이런 일이 몇 차례 더 있었는데 드러난 적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상습적이다 못해 일상화된 행태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의 그림자가 밟혔을까. 지난해 총리실 공직윤리 지원관실의 전 방위 민간인 사찰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또 정권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행태에서 검찰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파행 또한 반추反芻하게 된다. 이석태 대표의 진단이다.

  “검찰은 물론 법원까지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을 듣다가도 정권이 바뀌면 거꾸로 구 권력을 심판하는 신 권력의 첨병이 돼 있고요. 과거와 비교해서 질적으로 나아졌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기소권 독점 폐지 방안을 주목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싫어하겠으나 그 기소권을 경찰에 나눠주거나, 검사 등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공직비리) 수사처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물론 그 이야기, 십 수 년 전부터 나온 것이다.) 이석태 대표는 요컨대 사법개혁의 본질이 특권 지위의 해체에 있다고 강조한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판사들이 파업을 벌였지요. 정말 소프트한 사회가 되면 폭력만 피한다면 판검사가 시위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30을 넘기도 전에 머리 희끗한 어른들로부터 ‘영감님’ 소리 안 듣는 세상이 온다면 충분히 예상해봄직 하겠다.


“양심적 병역거부, 병역 기피 아닌 총 안 들겠다는 것”

이석태 대표의 족적 중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옹호가 선연하다. 최근엔 사법연수원 수료생 백종건 씨가 병역을 거부해 감옥 가게 생겼다. 사람 죽이는 훈련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소신을 지닌 이들을 반드시 징벌해야 하는가. 이들에 대한 변호에 나선지 10년, 사회적 합의는 요원하다.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의미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병역의 의미를 피하겠다는 게 아니라 총을 안 들겠다는 것입니다. 그 대안으로 모병제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는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독일의 예를 듭시다. 그곳도 절반이 병역거부를 합니다. 이들은 감옥 대신 국내외에 가서 양질의 봉사를 하게 됩니다. 국위선양은 기본이요, 개인의 신념을 존중하는 사회 기풍이 조성되며, 평화적 분위기를 확산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지요. 대체복무자의 성실도가 높아요. 그런데 이를 접고 모병제로 간다면 돈 벌러 군에 가자는 것인데 충성도가 대체복무와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대체복무제도가 노무현 정부 말기에 구체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없던 일이 됐다. 이 뿐인가. 현역은 물론 저격수 3만 양성설을 들먹이며 예비군 훈련도 강도 높게 하겠다고 천명한다. 북한 체제 흔들기를 위한 외교적 군사적 압박도 서슴지 않는다. 하긴 전쟁 나면 자기들이 총 들 일이 있겠는가. 그보다 대통령-총리-여당 대표 공히 군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 그래서 없어지지 않는다고도 생각한다. 국가보안법 관련한 피의자가 줄지 않는 현실도 이런 사회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생각의 영역에까지 그물을 놓는 야만적인 법, 이 법의 피해자도 변호사 이석태의 벗이었다.
 
  “뉴라이트가 2004년에 낸 성명에는 ‘북한 체제에 대해 지지하고 찬양하는 것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 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 침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돼 있더라고요.”

  좌든 우든 하나의 상식체계가 된 표현의 자유를 비판세력 압살의 구실로 오용되는 현실, 퇴행하는 시대의 단면이다. 하긴 김형근 교사의 예에서 그랬듯 ‘남북대화에 응해주신 남북 정부에 감사하다’는 말로도 시비를 거는 정부 아닌가.

“많이 걷기, 덜 격식차려 입기, 과식 안하기…채식까지”

자연스럽게 남북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 기준은 분명합니다. 남북관계를 움직이는 주도권 이걸 갖느냐 마느냐 하는 점이지요. 이것인 우리 사회의 평화 관리가 얼마나 가능하냐 하는 점과도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명박 정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북한 체제가 붕괴된다면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세계 10위권 국가가 다투다가 갑자기 꼴등인 국가와 경쟁하겠다며 치졸한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격이다. 그 졸렬함은 최근 정부 여당의 복지 논쟁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가난과 질병을 공적 안전망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통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빚어졌다. 그러나 여당 수뇌부 회의에서 고작 나온 이야기는 ‘그 사람 누구야’ 뿐이다. 이런 와중에 무상복지는 나라를 망조 들게 한다는 선동 아닌 선동만 메아리 칠 뿐이다. 뭐하라 집권했는가 하는 의문, 나만 드는 것일까.

  “경제논리를 끌어와 복지를 풀어가서는 안 됩니다. 온전히 정치논리로 풀어내야지요. 그렇다면 ‘옳다 그르다, 선이다 악이다’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집권세력의 무관심 무지로 비명에 가는 경우가 어디 사람뿐이랴. 동물도 그러하다. 각종 역병으로 인해 가축 800만 마리 이상이 집단 매몰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세인들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 오래 전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이 경고했듯 공장식 축산업의 한계에서 비롯된 재앙 아니겠나. 이석태 대표는 오래된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사실 발단이 된 것은 환경운동에 관여하면서였다. 개인적으로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많이 걷기, 옷을 덜 격식차려 입기, 먹는 거 있어서도 과식 안 하기를 실천했습니다. 그러다 채식까지 생각하게 된 거고요.”

  이석태 대표가 채식을 실천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세계적 환경단체가 “인구대국 중국의 GNP가 성장해 미국을 상당부분 쫓아오면 초지草地가 없어지고 지구는 망하게 된다.”라고 경고하면서부터였다. 기실 예측대로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곡물파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공룡 사라지듯 인간도 멸종될 수 있습니다. 공존하는 생명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대책 없는 살처분이 계속된다면 자연은 반드시 환경재앙으로 응징할 것입니다.”

‘대표’라는 자연스러운 이름표

채식을 일상화한 이석태 대표에게 한 마디 했다. ‘육식하는 동물이 공격력이 있다고 한다. 과하면 안 되겠으나 육식 좀 하시라. 환경 의식이 전무한 이런 무지막지한 사람들과 참여연대 대표로서 맞서려면 불가피하지 않겠는가?’라고. 인터뷰 내내 유순한 어조가 내심 ‘불만’(?)이었다. 이렇게 인격이 돋보이기로 소문난 이석태 대표, 참여연대 대표로서의 포부를 말하는 가운데서도 그 기조를 조금도 흐리지 않았다.

  “다른 대표님들과 조화를 이루는 일을 해야겠고요, 제가 법률가인 만큼 법에 얽힌 문제에 대해서 해야 할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현재 많은 일을 담당하는 활동가에게 배우고 또 도우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겠습니다.”

  자기의 존재감을 낮추며 약자와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진력해온 삶이 묻어난다. 참여연대 활동가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는 자신의 삶 그대로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참여연대의 대표가 된 것은 아닐까.

이석태 신임 대표는 85년 변호사 개업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국장,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민변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법무법인 덕수 구성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석태 신임 대표는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 동성동본 불혼 헌법소원 사건, 호주제 위헌소송, 매향리 소음피해 주민 손배소, 사형제 폐지운동 등의 변호인이나 주요직을 맡아 인권 신장, 사회약자를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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