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9월 2011-09-02   7518

김용민이 만난 사람-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

상처입은 마음 보듬는 치유의 한마디 ‘와락’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은진 작가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

혈액형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01년이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칼 란트슈타이너가 혈액에 A, B, O형이 있다는 것과 서로 맞지 않는 혈액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반세기 뒤인 1927년 일본의 다케지 후루카와라는 철학 강사가 혈액형 성격학을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심리학자나 의학자들은 혈액형 성격학이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찌 4가지 혈액형으로 구분될 수 있겠나.

  “사람들이 혈액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해요. 그야말로 단순하기 때문이에요. 단순한 건 예측할 수 있으니까. 영화 대사처럼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 누군가 나에게 적대적 행동을 보이면 B형의 저런 특성 때문에 그럴 거라고 해석하잖아요. 이렇게 답을 내리면 편하지요. 사람을 상대할 때 에너지 소모가 줄어요. 사람은 이렇게 분류를 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 그런 ‘심리’가 있다. 이번 호에서 만날 사람은 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다. 조선반도를 다 돌아 다녀봤다는 나로서도 심리기획자라는 직업은 생소하다. 하긴 내 ‘직업’ 시사평론가도 조어造語 초기에는 그랬을 것이다. 시사평론가는 면허도 자격증시험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심리 기획자는 어떤 일을 할까?

 

“실험실 학문 아닌 실제 사는 데 필요한 도움 주고 싶다”

“마인드프리즘은 심리 치유 콘텐츠를 가공·유통하는 회사예요. 심층 심리분석도 합니다. 하지만 전 심리분석이나 정신분석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실험실 학문으로 보여요. 심리학이란 사람들에게 도움과 유익을 주는 학문이지 누굴 설득하기 위한 게 아니죠. 사람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지나치게 학문적으로 접근하다가 결국 의사나 학자들이 업적 쌓기에 이르게 되지요.”

  ‘실험실 학문’이 아닌 ‘실용 심리’를 하는 전문가를 심리기획자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이명수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어쩌면 그의 전공이 심리학과 만나 새로운 직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적으로 사람이 사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심리 교육이란 것은 실용 심리의 한 분야로 해왔던 거지요.

  심리라는 학문이나 정신 분석 내용 자체를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적용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 심리기획자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집 짓기도 심리 건축이 마지막입니다. 심리적으로 편안한 것들. 화려하진 않지만 황토집 같은 것에서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을 느끼잖아요. 재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지요.”

 

피해자끼리 가해자 찾는 모멸스러운 싸움

마인드프리즘의 최근 두드러진 ‘활동 실적’은 쌍용자동차 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 노동자 2000여 명과 그 4000여 명의 가족이다. 2년 동안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8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나머지는 스트레스나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불귀의 객이 됐다. 부모의 고통은 곧 아이들에게로까지 전이되었다. 

  “98명 가운데 마음의 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이 26명이나 됐습니다. 보통은 100명 가운데 2~3명만 이런 징후를 보이는 것이지요.”

  당사자는 아니지만, 쌍용자동차 사건을 접한 나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옥쇄 투쟁 당시 같은 계층이면서도 공장 안에서 목숨 걸고 싸우던 동료를 대적했고, 투쟁 종료 후에는 린치를 가하기까지 했던 일부 ‘사측 노동자’의 행각에 말이다. 사실 해고자 자신과 가족의 심리적 상흔은 이들 때문에 더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우리 역사에서 간첩으로 몰렸고 그로 인해 고문 피해를 당한 분들이 있어요. 아내(정혜신 박사)와 제가 본 중에서는 그분들의 경우가 가장 끔찍한 사례인 것 같아요. 과거 간첩으로 몰린다는 것은 일가족 전체가 파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어요. 어떤 분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자퇴하라며 교사로부터 하루에 몽둥이 50대씩 한 달을 맞았다더군요. 이걸로 끝이면 다행이죠. 어렵게 졸업해도 취업을 못했습니다. 짐승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상처를 받고 30년 넘게 살아온 경우지요. 여기서 근본적인 범죄자는 누구입니까. 정부 아닙니까.”

  맞다. 분노하고 배상을 요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정부다.

  “국가를 상대로 뭘 해야 하는데, 국가란 아주 거대해요. 실체도 불분명하고요. 이러다 보니 본질보다는 곁가지로 분노의 대상을 전이轉移하지요. 내가 국가가 조작한 간첩 혐의로 잡혀 들어갔어요. 내게는 늙은 아버지가 있었는데 내가 잡혀간 사이에 돌아가셨어요. 마땅히 장례를 맡아줄 거라고 기대했던 사촌형제는 시신을 거적에 싸서 대충 묻어버렸어요. 이 소식을 감옥에서 들어요. 나는 분노합니다. 그러고는 ‘내가 나가게 되면 사촌을 응징하리라’며 살의殺意를 품습니다.”

  차분히 생각하면 사촌 간에 힘을 합쳐 국가를 대상으로 싸워야 하는 게 원칙 아닌가. 쌍용차도 마찬가지다. 사측이든 노측이든 그들은 성실히 일한 죄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성 말살의 궁극窮極을 보여준 2009년 투쟁의 먹구름이 지나고 나니 먹튀 자본의 농간, 이를 관리, 감독하지 못한 정부의 직무유기라는 근원根源은 사라졌다.

 

내상을 ‘와락’ 안아줄 친구가 되다

“얼마 전에 심리치료 보고서를 냈어요. 거기서도 가장 많이 발견된 유형이 이런 거였어요. ‘옆자리에 근무하는 친구가 쇠파이프 들고 와서 밤에 나를 팼다. 경찰, 국가는 용서할수 있다. 그러나 저놈만은 그냥 둘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직해서 짓밟아버리고 그다음 날 그만두겠다.’ 심리치료의 출발은 ‘저놈이 저럴 줄 몰랐다’는 원망을 지우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가해자는 싹 빠지고 피해자끼리 가해자를 찾는 비극이 벌어진다. 지난 7월호 인터뷰 차 만났던 제주 강정마을이 그렇다. 해군기지 유치 문제를 놓고 지지자와 반대자로 갈리고 이웃사촌, 친인척끼리도 찢겨져 서로 죽이니 살리니 하며 고성이 오간다. 재개발을 하게 되면 마을 주민끼리 원수가 되는 현실도 한 맥락이다. 이명수 대표의 발길이 닿는 또 다른 치유의 현장, 부산의 한진중공업, 아산의 유성기업,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 명동 ‘카페 마리’도 그 경우라 하겠다. (특히 이들 사례 중 용역을 붙이는 기업 혹은 자치단체의 횡포는 숫제 범죄 수준이다. 분노를 용역에게로 돌리려는 지능적인 책임 회피 유형이리라.)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

  “‘심리적 외상’, 이걸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최근 ‘애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어버이연합 회원들을 보면, 우리 시각에서는 그분들을 이해할 수 없잖아요. 한국전쟁을 겪은 60~80대 어르신들이 집단적으로 스트레스 환자, 즉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증후군을 앓고 있는 분들이라고 봅니다. 이웃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내 부모형제를 이적행위자로 고발해 죽게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 기반 자체가 무너진 거죠. 스트레스가 기본적으로 그렇거든요. 1950년 한국전쟁의 경우 온 국민이 모든 사람이 위정자 몇 사람을 빼놓고는 집단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우리 역사는 이를 치유하지 못하고 넘어왔죠.”

  남침을 획책한 북한, 이런 분단의 위기 상황을 관리하지 못했던 남한. 체제 또는 정부에 대한 책임론은 온 데 간 데 없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오늘도 미력에도 불구하고 진보 세력을 ‘토벌’하려고 저리도 애쓰고 계신 것이다. 집단적 치료가 없고 내상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난폭해진다는 것이다. ‘각개약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급격한 공동체 붕괴 현상도 여기서 비롯된다.

  “미국의 경우를 볼까요?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뒤, 뉴욕 거리에서 축제가 벌어졌어요. 사람을 죽였는데 잔치판이라니. 그러나 그럴 수 있습니다. 실제 9·11 테러 때 사람들이 PTSD를 겪었습니다. 고층빌딩에서 사람들이 몸을 던져 땅에 퍽퍽 소리가 나고, 여자 한 명이 (눈 뜬 채로는 차마 뛰어내리지 못할 것 같아) 치마를 뒤집어쓰고 빌딩에서 떨어집니다. 미국민은 이런 것을 현장에서 또는 TV를 통해 목격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트라우마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들에게 심리치유사를 붙여주었지요.”

  그렇다면 쌍용은, 77일 동안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됐다. 고압볼트 총에도 맞았고, 밑에서 천장 위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아버지가 토끼몰이 당하듯 전투경찰한테 몰리는 장면을 지켜봤다. 개같이 처참하게 맞았다. 그래서 이명수, 정혜신 두 심리전문가는 PTSD를 겪은 쌍용자동차 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 노동자와 가족을 직접 찾아갔다.

  이 같은 심리적 내상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바로 ‘와락’이다. 두 사람은 지난 3월부터 평택에서 해고노동자와 배우자를 위한 심리상담 세션을 진행하면서 대상자인 노동자 8명과 그 배우자 6명에게서 의미 있는 치유 효과를 만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고 지난 7월 말 207명, 1,825만 원의 모금 그리고 다양한 비금전적 기부를 통해 후원자와 손을 잡게 됐다.

 

경쟁 벗어나 ‘나 좋은 대로’ 살기

문득 우리 시대 청춘이 염려됐다. 오늘날 20대는 온순해 보인다. 혹자는 ‘비겁하다’고는 하나 상대에 대한 얕지 않은 판단과 충분한 배려를 표하는 이들이 바로 20대다. 그래서 요즘도 진정성이라고는 밑바닥뿐인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좋은 말’로 등록금 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도로로 진출해 도로교통법을 위반할 정도일 뿐, 짱돌을 던지거나 하는 일도 없다. 이런 순둥이들에게도 그런데, 스트레스가 감지된다. 나는 그들의 폭발이 걱정된다.

  “젊은 친구들한테 억울한 느낌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미물인 원숭이도 그래요. 두 마리를 놓고 한 녀석에게는 먹이를 3개, 또 다른 녀석에게는 2개를 줘보세요. 분노합니다. 우리가 흔히 정리해고, 명예퇴직을 당한 분들의 상처가 큰 점에 공감하지요? 그래도 이 경우는 직장을 가졌고 또 다녀본 경우입니다. 지금 청년들은 출발조차 하지 못해요. 억울함이 생깁니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나는 발조차 딛지 못할까’라고 생각해요.”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시대정신 포착 내지 어젠다 세팅은 프로급이다. 친환경 녹색혁명, 친서민, 공정사회. 그러나 실천이 없다. 염장만 지른 꼴이다. 나는 적자생존, 경쟁구조를 바꾸는 데서 모든 구조 개혁이 시작된다고 피력해왔다. 논의할 부분은 바로 ‘경쟁’이다. 경쟁은 스트레스를 부르는 핵심 요인이다.

  “우사인 볼트(육상)와 박태환(수영)을 경쟁하게 해선 안 됩니다. 우사인 볼트와 박태환을 놓고 땅에서 경기를 치르면 우사인 볼트가 무조건 이기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면 우사인 볼트는 바보예요. 박태환 못 이기죠. 우리 경쟁의 근본적인 문제는 맹목적인 ‘줄 세우기’에 있습니다. 속도가 빠르다고, 같은 트랙이 아닌데 우겨 넣습니다. 전 어떤 일이 잘 안 풀리면 ‘나는 박태환인데 그라운드에서 박지성처럼 축구 하느라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자신을 비난할 이유가 별로 없는 거죠. 그렇다면 내가 물로 들어가면 될 일이지, 그라운드에 끌려 나와서 허덕일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로 일을 가져와서 하면 되잖아요. 흔히 ‘네 좋은 대로만 하고 살 수 있느냐’고 합니다만, 좋은 대로 하고 살아야죠.”

 

“당신이 늘 옳습니다”

마인드프리즘은 기업 단위의 심리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을 낸다. 이 수익으로 음지라 불리는 현장에 찾아가 고통받는 이웃의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심리카페 ‘홀가분’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이명수 대표는 참여연대를 주목했다.

  “제가 심리기획을 10년간 했는데 각종 진단 결과, 가장 스트레스 높았던 집단은 바로 참여연대 활동가들이었어요. 왜 그럴까요? 많이 알아서 그래요. 김진숙?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요. 한데 활동가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강정마을, 재건마을 그리고 신자유주의, 양극화, 철거민. 모르는 게 없어요. 그래서 다들 괴로운 거예요. 맛있는 밥을 먹으면 ‘그분들은 이런 호사를 못 누리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 생각하며 분열적인 상황에 직면하지요. 따라서 참여연대 회원이나 활동가들은 자기 보호를 잘 해야 해요. 그러려면 ‘당신이 옳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해요.”

  “비행기 이륙 전에 스튜어디스가 비상상황이 닥칠 경우를 대비해 산소마스크가 내려온다고 일러주지요. 얼핏 생각하면 그런 경우가 닥치면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먼저 씌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요. 그러나 성인이 먼저 착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안정이 돼야 남에게 차분히 산소마스크를 씌워줄 수 있다는 논리지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도 그렇습니다. 자신을 보호하세요.”

  ‘나는 옳다.’ 이렇게 인정하고 격려하는 사회 기풍, 이 안에 ‘홀가분’의 답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나만 옳다’는 착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정 돌아가는 모습이나 주변의 권력자들을 보아도 그렇듯이 ‘나만 옳다’는 사람들은 홀가분하기가 어렵다. 스스로를 보호하면서도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우리 사회는 좀더 담백하고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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