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5월 2012-05-02   3246

[놀자] 춤출 줄 아는 사람이 춤출 만한 세상도 만든다

춤출 줄 아는 사람이 춤출 만한 세상도 만든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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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나의 혁명이 아니다.”

20세기 초반의 아나키스트 작가인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이 말했다. 나는 주말 저녁 깨끗한 셔츠와 댄스화를 챙기며 이 말을 곱씹는다. 절반은 자기변명이고, 절반은 자기 확신이다. 뉴스에는 파업 소식이 끊이지 않고, 지금도 누군가는 목숨줄을 위협받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밤 춤추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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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골드만은 사회운동가, 농동운동가, 혁명가, 아나키스트, 페미니스트, 자유연애와 언론자유의 주창자, 산아제한운동의 옹호자였다. 청중을 격동시키는 특유의 연설로 유명하고, 미국 아나키스트 회의 대표를 지냈으며 미국에서 정치범으로 구속된 첫 번째 여성이기도 하다.

 

엠마는 자서전 『나의 삶을 살며』에서 회고한다. “댄스홀에서 나처럼 지치지 않고 즐겁게 추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친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마치 누군가의 부고라도 알리려는 듯이. 그러곤 속삭였다. “선동가가 춤을 추는 건 옳지 못해.” 그녀는 화를 냈다. 아름다운 이상을 위해 관습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삶의 즐거움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자유를 원해. 스스로를 표현할 권리,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을 향한 모든 사람들의 권리.”

 

 

작년 말 어떤 여인이 춤을 추는 동영상이 큰 소란을 빚어냈다. 주인공은 당시 한나라당의 전여옥 의원으로, 어느 송년회에서 남자의 손을 잡고 즐겁게 사교 댄스를 추고 있었다. 그녀가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 수감되기 직전 고급 호텔에서 송별회를 했다고 비아냥거린 직후에 올라온 영상이었다. 사람들은 비난의 말을 쏟아부었다. 요지는 이랬다. ‘자기는 불건전한 춤이나 추고 놀아나고 있는 주제에…’ 그것은 마치 룸살롱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여종업원을 희롱하는 모습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심지어 ‘발정난’ 어쩌고 하는 말도 나왔다. 분노의 맥락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전 의원이 춤추고 있는 그 모습은 내겐 어떤 비난의 동기도 되지 못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배우 김여진은 트위터를 통해 꼬집었다. “남자랑 손잡고 춤 좀 신나게 추면 안 되는 건가? 나 디게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춤을 좋아하면서 또 춤을 터부시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다. 학교에 가기 전부터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엉덩이를 실룩거렸다. 도시로 전학 가서는 롤러스케이트장의 디스코 타임 때 발바닥에 불이 나게 비벼대기도 했다. 물론 어른들의 눈은 피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는 본격적으로 신분을 속이고 나이트에 가야 했고, 대학생이 되면 좀 자유로워질까 했는데 그 엄혹한 시국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래도 신입생 환영회에서 다들 운동가요를 부를 때 <세계로 가는 기차>를 부르며 막춤을 추었고 그걸로 의외의 사랑을 받았다. 뭔가 억눌린 게 많을수록 몸으로 터뜨리고 싶은 욕망도 많아지는 법이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춤이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나는 본격적으로 춤을 배워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주민센터에서 성인 힙합 댄스를 배웠는데, 30대 이상은 뼈를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물러섰다. 이어 라틴 댄스를 배웠다. 삼바, 룸바, 차차차…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구청장배 단체전에도 나갔다. 그런데 안무에 맞춰 추는 춤은 재미가 덜했다. 그래서 대학로에 있는 살사바에서 골반을 해방시키기 위해 애를 썼고, 그 이후 스윙댄스에 정착해 지금까지 매진하고 있다.

 

 

라틴, 살사, 스윙… 이런 춤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짝을 지어 추는 파트너 댄스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터부 ‘불륜과 퇴폐의 춤바람’을 만난다. 전여옥의 춤사위를 두고 가시 돋힌 말을 내뱉은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었다. 물론 이런 춤들이 태어난 목적에는 ‘남녀 간의 사교’가 빠질 수 없다. ‘이성의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어서’ 춤을 시작했다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정작 춤에 빠지면 이런 설렘은 뒤로 물러난다. 춤과 음악의 매력이 그것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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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원래 가무에 능한 사람들이다. 러시아의 한인이나 연변의 조선족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다들 치맛자락 휘날리며 신명나게 춤추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금강산에 카펫을 깔러 갔다가 춤에 눈을 떴다고 한다. 일과가 끝나면 북한 직원들이 식당에 있는 테이블을 싹 치우고 음악을 틀더니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더란다. 그게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어서, 돌아오자마자 스윙 댄스를 시작하게 되었단다.

 

 

나는 몸치라서, 나는 체력이 딸려서… 이런 핑계도 필요 없다. 사실 몸에 다른 춤의 버릇이 덜 붙어 있는 사람이 새로운 춤을 더 잘 익힌다. 그리고 어른들이 파트너 댄스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40대인 나로 보자면, 혼자 추는 춤은 1분만 춰도 헐떡거리게 된다. 하지만 서로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는 파트너 댄스는 1시간도 너끈히 출 수 있다.

 

 

김근태 선생의 장례식에 배우 장미희가 찾아와 오열한 일이 화제가 되었다. 둘은 1990년대 초반 미국 대학의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행사 마지막 날 연회를 하며 사람들이 플로어에서 춤을 추었다. 장미희는 그가 누군가에게 이끌려 나오는 모습을 보았단다. “대단히 못 추는 춤이었는데, 그래도 참 매력적이었다. 주저하는 듯하면서도 스스럼없이 사람들의 동작을 조금씩 따라 하는데 그게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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