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5월 2012-05-02   5056

[역사] 워터게이트 사건, 진짜 사건의 서막이었을 뿐

워터게이트 사건, 진짜 사건의 서막이었을 뿐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1972년 6월 17일 닉슨 재선위원회 안보담당 고문 매코드를 비롯한 다섯 명의 침입자가 워싱턴DC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었다.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진 것이다. 2년 뒤인 1974년 8월 9일, 닉슨이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임기 중 사임했다. 흔히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1974년 7월 13일 18개월의 조사 끝에 미 상원 워터게이트 사건 특별조사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는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사주했는지를 밝힐 결정적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사실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불법 침입 사건은 닉슨 사임을 예고하는 서막에 불과하다. 이후 이어진 언론의 집요한 추적, 특별검사의 매서운 수사, 의회의 TV 중계 청문회 과정은 닉슨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저지른 범죄 행위와 뻔뻔한 거짓말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이로 인해 닉슨은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고, 탄핵 위기에 몰려 결국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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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3월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에 출석한 닉슨.

 

닉슨의 진짜 죄목?

미하원 법사위원회가 탄핵 권고안에서 닉슨에게 적용한 범죄 조항은 사법방해죄와 권력남용죄, 두 가지였다. 사법방해죄란 워터게이트 사건 직후 닉슨이 직접 또는 측근을 통해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고, 범법자들의 신원은 물론 이와 관련된 불법 비밀 활동 일체를 은폐하고자 한 죄를 말한다. 닉슨의 사법 방해 행위는 그야말로 전방위적이었다. 우선 미중앙정보국CIA를 이용하여 미연방수사국FBI과 워터게이트 사건 특별검사의 수사 활동을 방해했다. 사건 관련자들에게는 함구의 대가로 금전을 제공하여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법정과 청문회에 서는 피고인과 증인에게는 위증할 것을 종용하고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제시했다. 나아가 이런 범죄 행각을 거듭하면서도 백악관과 닉슨 재선위원회는 위법 행위에 가담한 적이 없다는 성명을 거듭 발표하여 국민을 기만했다.

 
  권력남용죄란 닉슨 자신이 직접 또는 측근을 통해 대통령으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남용한 죄를 말한다. 여기에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저지른 죄만이 아니라, 닉슨이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자행한 불법 사찰 행위가 포함되었다. 먼저 닉슨은 FBI와 대통령 경호실 및 백악관 직원 등에게 민간인을 불법 감시하고 조사하도록 했다. 백악관에는 이러한 불법 비밀 활동을 위한 특별조사반을 설치했다. 특별조사반은 1971년 9월 3일 베트남전의 실체를 담은 ‘펜타곤 페이퍼’를 유출했던 엘즈버그를 중상모략할 정보를 입수하고자 그의 담당 정신과 의사 사무실에 불법 침입했으며, 선거자금을 불법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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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이 얼마나 많은 불법 정보를 수집했는가를 묻는 <타임> 표지.

 

또한 닉슨은 FBI가 개인 전화를 도청하도록 허용하고 이 사실이 폭로될 것을 우려해 도청 기록을 백악관에 은닉했다. 불법 사찰과 함께 닉슨은 국세청으로부터 극비리에 납세 보고서를 입수하고 표적 대상을 정해 세무 조사를 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하여 닉슨은 법무부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누설하며 수사와 재판, 청문회에 대처할 방안을 검토했다. 또한, 수사와 청문회 과정에서 자료 제출과 증언을 거부하기 일쑤였고, 사임의 결정적 단서가 된 대통령 집무실 불법 녹음테이프도 처음엔 버티다 결국 대법원의 판결에 굴복하여 특별검사에게 제출했다.

  닉슨 탄핵 권고안의 결론은 이렇다. ‘닉슨은 대통령으로서 신의에 위배된 행위를 했고 그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으며 법과 정의의 원칙을 침범하고 헌법에 기초를 둔 정부를 위험에 빠뜨렸다.’ 최종적인 탄핵 권고안에는 의회 모독 혐의도 추가되었다.

 

The real Bob Woodward and Carl Bernstein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 두 기자는 집요하게 추적하여 알아낸 사실들을 <워싱턴 포스트>지에 폭로했다.  

 

닉슨의 유죄를 밝혀낸 이들은

 
닉슨의 불명예 사임에는 언론과 내부고발자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우드워드와 번스틴 기자는 단순 불법 침입 사건에 그칠 수도 있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에 백악관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매일 16시간씩 300여 일을 뛰어다니며 끈질기게 추적했다. 닉슨에 대한 국민의 공분은 미 상원의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와 미 하원 법사위원회의 닉슨 탄핵 논의가 TV로 미국 전역에 중계되면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우드워드 기자에게 고급 정보를 흘려 당시 딥 스로트Deep Throat라고 불렸던 FBI 부국장 마크 펠터의 내부고발, 백악관 법률 고문 존 딘과 백악관 보좌관 알렉산더 버터필드 등 청문회 증인의 진실 폭로도 닉슨에게 결정타를 가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상징적 화두로 떠올랐다. BBK 사건, 내곡동 게이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사건 등에는 모두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졌다. 최근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서는 야당들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근거로 이명박 대통령 사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확히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불법 침입 사건이 아니라, 재임 초기부터 법을 농단하며 불법 사찰을 시도했고,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고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남용하고 사법 방해를 일삼았기 때문에 사임했다. 그렇다면,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이 사실을 은폐하는 데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있고, 내부고발자에 의해 대가성 돈다발이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 ‘한국판 워터게이트 정권’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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