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5월 2012-05-02   4005

[통인] 농담도 금기로 만드는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의 위력

사진작가 박정근님

농담도 금기로 만드는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의 위력


사진가 박정근

 

 

황지희 현대도시여성

사진 김은진 작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트위터에서 북한 계정을 팔로잉 하고, 북한 관련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누군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 받는다고 했을 때, 그저 트위터가 처음 등장하면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구속됐고,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그 누군가의 이름은 박정근이다. 그는 현재 아무도 모르는 유명인사(?)가 됐다. 국내 언론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해외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그를 취재하고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트위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박정근 사건’은 박정근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혹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의 편견을 모두 그 스스로 깨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스물다섯 살, 용띠다. 통일 운동으로 청춘을 보낸 중년의 운동권이 아니라, 세상 어디를 가도 흔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청년이었다. 직업도 단체 활동가가 아니라, 사진가다.

 

무엇보다 그는 대응 방식이 달랐다. 억울함을 울분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유머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이런 태도에 트위터 이용자들은 더 열광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박정근은 “체제 찬양으로 보이는 글들은 대부분 농담이었으나 저는 이 편지에서 농담을 일일이 설명하진 않을 것입니다. 농담을 변명하는 건 농담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렇게 하면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니까요.”라며, 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짚었다. 아울러 그는 이 공개서한에서 ‘압수수색과 경찰조사 이후 성욕마저 감퇴했다. 신정아에게 추근대는 변양균같이 변변치 못한 남자가 된 기분’이라고 너스레를 떤 바람에, 트위터 이용자들이 그의 성욕을 걱정해주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런 범상치 않은 태도와 달리 직접 만나본 박정근은 평범한 20대 초반 남성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제일 싫은데, 공판을 집에서 너무 먼 곳에서 하는 바람에 두 배로 힘들다고 하소연 한다. 키 크고, 예쁘고, 걷는 걸 좋아하는 여자가 이상형이나, 대국민 필화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연애에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사진과 음악, 각종 문화예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눈빛이 빛나는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사진가 박정근

4월 19일, 참여연대 앞 카페에서 요거트 딸기 스무디를 주문한 그와 만났다.

인터뷰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물어보니,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걱정하던 부분이 박정근 씨 ‘성욕’이었다. 괜찮나?

글쎄. 확인할 도리가 없어서(웃음). 사실 요즘 공판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여력이 없다.

 

압수수색 이후 방안에서 잠들지 못한다고 들었다. 치료는 받고 있는가?
처음에는 그 문제로 친구 집을 전전했으나, 지금은 집에 있다. 어차피 불구속 상태라, 주거제한이 있어서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한동안 치료를 받았고, 약을 처방받아 먹어왔지만, 지금은 복용을 자제하고 있다. 이제는 약 없이도 집에서 잠들곤 한다.

 

정확한 혐의가 무엇인가?
내 개인 트위터로 북한 계정을 팔로잉하고, 북한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의 글 133건을 리트윗해서 사람들에게 알린 혐의, 유튜브에 있는 북한 군가를 링크한 혐의 등이다. 검찰은 이것들을 북한을 찬양, 고무하는 글을 전파한 이적 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문제가 이렇게 불거졌을 때, 왜 계정을 폐쇄하지 않았나?

계정을 폐쇄하면, 법률적으로는 증거인멸로 보일 수 있었다. 따라서 폐쇄하지도, 그렇다고 그대로 두기도 힘들었다. 일단 나는 북한을 찬양한 게 아니라, 북한에 관한 농담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사를 받을 때 어떤 심경이었나?
말 때문에 이뤄진 일이라면, 말로 풀면 된다고 생각한다. 왜 그 이유를 법정에서 설명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박정근 사건이 또 한 번 이슈가 된 것은 3월 9일 벌어진 1차 공판이었다. 당시 변호사는 박정근 씨가 그동안 트위터에 올렸던 농담들, 즉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 , ‘주체 사상도 결국 통큰 치킨 앞에선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등의 문장을 근엄하게 낭독했고, 이는 재판을 방청했던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트위터에서 큰 웃음을 유발했다.

 

1차 공판이 화제였다. 계획된 작전이었나?
우리 입장에서는 심각했다. 트위터에 올린 글들이 북한에 대한 풍자이자 조롱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내가 올렸던 북한 관련 농담들을 580개나 찾아 냈다. (이렇게 농담을 찾고 있는) 스스로가 매우 저열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자료를 보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변호사가 읽으니까 예상보다 큰 웃음이 터졌다. 북한을 소재로 패러디했던 작품은 일부러 원본대로 컬러로 출력해 갔다. 그걸 보면 아무도 내가 북한을 찬양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패러디만 보면, 나는 북한 가면 사형감이다.

 

왜 하필 북한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나?
사진가로서의 호기심이다. 과연 북한 사람들은 어떤 사진을 찍을까? 어떤 영화를 볼까? 등 북한의 문화예술이 늘 궁금했다. 내가 트위터에 올린 북한 관련 얘기들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 수준이다.

 

사건 이후 사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

(박정근 씨는 인터뷰 당일에도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솔직히 사건 이후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전에는 각종 집회 등에 나가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작업 방식이 바뀔 것 같다. 좀 다른 사진을 찍고 싶다.

 

사건을 겪으면서, 감사한 일도 있었나?
보석금 천만 원이 10분 만에 모였다는 얘기를 듣고 감격했다. 그리고 공판에 왔던 모든 사람들, 구속 됐을 때 편지와 책을 보내주고, 직접 방문해줬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고 생각하나?
트위터에서 생긴 첫 번째 사건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국가보안법과 차별성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적 목적이 아닌 것을 사람들이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감을 얻기 쉬웠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의 첫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가 되는 건가?
맞다. 부담이 크다. 혹시나 나에 대한 판례가 나중에 관련법의 근거가 될까봐 걱정이 많다.

 

수감 생활은 어땠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감옥에 소위 이적물이라고 불리는 책들이 많더라.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책을 많이 읽는 바람에, 전보다 더 의식화 된 것 같다(웃음).

 

박정근 씨는 인터뷰 내내 특유의 유쾌함을 잃지 않았지만, 공판이 진행되면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물었다.

 

공판이 장기화 될 것 같은데,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학교에 다닐 예정이다.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뒀는데, 공판이 진행되면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일상이 매달 열리는 공판을 기준으로 움직인다는 게 힘들다. 아마도 사진을 정식으로 전공할 것 같다.

 

사진 이외에 하고 싶은 일은?
고등학교 때부터, 음반 기획을 해왔다. 홈페이지를 오픈을 준비하던 중에 이런 일이 생겨서 진행을 못하고 있는데, 다시 도전하고 싶다.

 

어떤 음악을 담는가?
가수 유승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유승준은 어떤 의미에서 금기다. 하지만 유승준의 병역기피 사건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고, 그의 음악의 가치도 재확인 하고 싶다.

 

금기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북한에 이어 유승준이라니
맞다. 하위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하고 싶은 아이템들이 많은데, 우선 유승준에 대해 말하고 싶다. 방구석에서 음악하며 사는데, 앨범을 내고 싶은 뮤지션들 있지 않은가? 그 사람들과 남들은 잘 듣지 않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음반사 이름이 무엇인가? 독특할 것 같다
(약간 망설이다가) 이름이 좀 웃긴데, ‘비싼 트로피 레코드’다.

 

또 북한 관련 글들을 트위터에 올릴 것인가?
나도 모르겠다. 사법기관이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것 같다. 이런 일 겪고 누가 또 그러고 싶겠는가. 그런데, 나는 사진가로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고, 농담이나 조롱이 나의 생각을 표현해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올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간통죄로 고발 당한 여주인공은 “국가가 언제부터 내 아랫도리를 관리하기 시작한 거냐”라고 말한다. 박정근 씨를 만나며, 이 영화가 떠올랐다. 정부가 언제부터 국민들의 농담까지 관리하기 시작한 것일까? 정부는 ‘박정근 사건’을 통해 국민들에게 ‘북한’은 금기어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행위로 국가를 보호할 수 있을까?

 

북한 사람들은 어떤 사진을 찍을지 궁금해 하는 순수한 청년 사진가, 인터뷰를 마치고 혼자 벚꽃 구경을 가는 감성 청년, 유승준을 키워드로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이 도발적인 아티스트 박정근 씨는 몇 마디 농담의 대가로 아프게 살고 있다. 매 순간, 자신의 생각이 법정에 서는 고통을 지켜보고 있다. 그의 트위터 주소는 @seouldecadence다.

 

 

박정근 사건의 한계는 ‘농담’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이 사건의 한계에 대해 박정근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근 씨를 보호하고 지키려고 나선 이유는 그의 말들이 ‘농담’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진담이었다면? 그가 진심으로 북한 사회를 동경하고 찬양한다면? 그 생각을 국가가 검열하는 것이 옳을까? 그의 진담에도 사람들은 손을 들어줄까?

 

사진가 박정근님과 인터뷰어 황지희님
박정근님과 인터뷰어 황지희님 단란하게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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