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4월 2013-04-05   4292

[경제] 한미 FTA 발효 1년, 새로운 통상전략의 모색

한미 FTA 발효 1년, 

새로운 통상전략의 모색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지난달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만의 논쟁 2편을 쓰겠다고 했지만 이 두 대가 간에는 더 이상 대화가 없었고 한미 FTA는 발효된 지 1년이 되었다. 우리 경제의 앞날을 뒤흔들 엄청난 사건들이 바야흐로 터져 나오겠지만 고작 1년이나 1년 6개월 만(한EU FTA)에 벌어질 일은 별로 없다. 한미 FTA와 같은 대사건의 효과는 굉장히 긴 시간대에 걸쳐 나타나기 마련이다. 

 

 

후안무치, 정부의 자화자찬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 2011년의 유럽 재정위기라는 역사적 사건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데 한미 FTA나 한 EU FTA의 효과를 따로 떼어내서 통계로 검증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다행히 예년과 달리 정부도 별 호들갑을 떨지 않아서 ‘워낙 실적이 안 좋으니 조용히 넘어가나 보다’ 했는데 결국 3월 14일 기획재정부는 정부 7개 부처를 대표해서 한미 FTA 예찬에 나섰다. 다시 강조해 두지만 지금 한미/한 EU FTA의 효과를 말한다는 건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대 EU 수출이 2012년 -11.4%를 기록했는데 “그나마 한 EU FTA 덕에 -20%가 되는 걸 막았다”고 해도 딱히 반증할 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부가 들고 나온 건 한미 FTA 발효 후 2012년 3월 15일부터 2013년 2월 28일까지 약 1년을 떼어 내서 말 그대로 ‘한미 FTA의 1년의 성과’를 발표한 것이다. 지난 1월 14일 관세청이 2012년 대미 수출이 4.1% 증가했다고 자화자찬에 나섰다가 1, 2월을 빼면 마이너스라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미 수출입 교역 현황

 

하여 작년 1월에서 3월 14일까지의 기간을 빼고 금년 1, 2월을 추가하니까 가까스로 플러스로 나온 모양이다. 이 기간 동안 대세계 수출이 2.3% 감소했는데 대미 수출은 1.4% 증가했으니 이것이 한미 FTA의 효과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EU FTA는 발효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으니 더 큰 효과를 나타내야 하는데 대EU 수출이 두 자릿수로 감소한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히려 대EU 수출의 급감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미 수출이 나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게 온당하지 않겠는가?

 

미국과 유럽에 대한 수출 증가율

 

위 그림에서 보듯이 2010년 32.3%(EU는 14.8%), 2011년 12.8%(4.1%)였던 대미 수출증가율이 2012년 4.1%(-11.4%)로 급감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물론 한미 FTA에 포함된 관세 인하가 수출에는 얼마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에 수출을 주도한 건 재협상으로 관세가 인하되지 않은 자동차 산업, 그리고 철강 산업이었다. 반대로 20% 가량 관세가 인하되어 가장 혜택이 클 거라고 선전했던 섬유·의류 분야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무역에서도 딱히 한미 FTA의 효과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광개토대왕까지 내세워 미국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2012년 우리 수출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높아졌을까? 그렇다. 2011년에 비해 0.01% 증가했다. 반면 FTA를 맺지 않은 중국은 0.65% 늘어났고, 일본 0.57%, 독일 0.25%, 영국 0.09% 순으로 증가했다. 이 통계로도 한미 FTA의 효과는 찾기 힘들다. 

 

2007년에 한미 FTA와 한 EU FTA가 동시에 발효되면 실질 GDP가 무려 7.61% 추가 증가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을 되돌아보면 낯이 뜨거울 만도 한데 정부는 자화자찬 중이다. 해서 선인들이 ‘후안무치’라는 말을 만들지 않았을까?  

 

 

우리의 미래와 새로운 통상전략

 

문제는 수출입 통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 협상 이후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를 중심으로 무려 66개의 법령이 제·개정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또 이들 분야에서 상대 국가의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미국 FTA 전략의 핵심 목표이다. 

 

이제 한미 FTA가 폐기되거나 투자자 국가제소권, 서비스 현재 유보 분야의 래칫조항, 미래의 MFN(최혜국 대우)등이 개정되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민영화와 규제완화로 갈 수밖에 없다. 2007년까지의 협상 중에는 미국식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이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라고 우길 수 있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식 시스템의 파산이 증명됐는데도 우리의 미래라고 믿는 데 이르면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난 4~5년 동안 중국은 급부상해서 세계는 G2체제를 맞았다. 오바마는 “아시아로의 귀환”을 외치면서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에 일본을 끌어들이고 중국은 ASEAN+3(한중일+인도,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구상으로 맞서고 있다. 도대체 한국의 통상전략은 무엇인가? 부질없이 숫자 장난을 할 시간에 동아시아 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옳지 않은가? 미국과 중국의 구애를 이용하여 동아시아 지역협정을 에너지생태협력, 스마트그리드협력, 도로철도망 연결 등 협력 사업 위주로 만들 수도 있고 나아가서 이를 표준으로 하여 한미 FTA 등 기존 FTA를 개정하거나 폐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ASEAN+3,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구상 이후 한국은 아무런 전략도 없이 강대국의 요구에 끌려다니고 있다. 남북관계의 악화와 더불어 이러다가 100년 전 조선의 신세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지금 두터워져야 할 것은 낯의 두께가 아니라 사고의 두께이다.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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