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6월 2012-06-02   4051

[놀자] 손으로 만지고 세상을 깨닫는다, 보드게임

손으로 만지고 세상을 깨닫는다, 보드게임

 

 

이명석 저술업자

 

‘블루마블Blue Marvel’을 아시는지?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보드게임 말이다. 주사위를 굴려 세계의 도시를 사고, 빌딩을 올려 세를 받고, 황금열쇠에 걸려 벌칙을 수행하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이 『조화로운 삶』의 저자이자 귀농 운동의 선구자인 스콧 니어링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_모노폴리_ 게임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 수업을 위한 교재로 사용되면서 좀 더 분명한 틀을 갖추었다. 이 수업을 진행한 사람은 훗날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숲으로 들어간 스코트 니어링이었다.

보드게임 ‘모노폴리’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 수업을 위한 교재로 사용되면서 좀 더 분명한 틀을 갖추었다. 이 수업을 진행한 사람은 훗날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숲으로 들어간 스콧 니어링이다.

 

블루마블은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만든 ‘모노폴리Monopoly’라는 게임을 거의 베꼈다. 그 원형은 미국 동부의 학생과 퀘이커 신자들이 집단적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각자 손으로 게임판을 만들며 지명이나 게임의 요소를 조금씩 달리했다. 어쨌든 주사위를 굴려 땅을 차지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은 같았다. 이 게임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 수업을 위한 교재로 사용하면서 좀 더 분명한 틀을 갖추게 되는데, 바로 그 수업을 진행한 사람이 스콧 니어링이었다. 그가 학생들과 함께 밝혀낸 자본주의의 본질은 게임의 제목에 담겨 있다. ‘독점Monopoly’ – 누군가 한 사람이 모든 땅과 재산을 독차지해야 끝난다. 니어링이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블루마블이나 모노폴리가 싫다. 나쁜 이데올로기를 전파해서가 아니라, 재미없어서이다. 게임의 초반에 누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느냐로 승패가 결정되고 끝이다. 뒤처진 자는 마치 오르는 집값을 감당 못해 전전긍긍하는 세입자들 같다. 나는 다른 많은 보드게임을 찾았고, 거기에서 다른 종류의 인생과 사회를 살아가는 재미를 배웠다.

 

뱀

 

보드게임은 글자 그대로 판Board을 깔아놓고 즐기는 게임이다. 주사위를 굴리고, 카드를 뒤집고, 말을 움직이면서 엎치락뒤치락 승부를 가린다. 사실 윷놀이, 화투, 장기, 바둑도 보드게임의 일종이다. 어느 민족이든 이와 비슷한 게임을 즐겼는데, 독일인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설계된 게임을 만들었고 이것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 국내에 보드게임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대략 10년 전부터다.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컴퓨터·인터넷 게임이 인기몰이를 해온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아날로그 게임은 마니아들을 늘려왔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 게임으로도 사랑받는다.

 

보드게임의 세계는 정말 다채롭다. ‘할리갈리’처럼 과일의 숫자를 보고 먼저 종을 친 사람이 카드를 따는 간단한 게임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몇날 며칠을 다투어야 승부를 볼 수 있는 ‘액시스 앤 얼라이스’ 같은 게임도 있다. ‘카탄’은 육각형 모양의 타일을 이어붙인 섬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자원으로 서로 빨리 성장해나가는 게 목표다. ‘카르카손’은 중세의 성곽 도시를 배경으로 여러 사람이 하나씩 타일을 이어붙이며 지형을 만들어 가고, 그 과정에서 성이나 길을 완성하면 점수를 얻는다.

 

ferris_board

보드 게임 한 판은 마치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 판 위에서 주사위의 운에

각자의 기술을 더해 상대를 이기고자 한다. 어찌 보면 주사위는 공평하지 못한 수단 같지만, 힘이

약한 사람도 운에 따라 게임승자가 될 기회를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나는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로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보드게임을 권하라고 한다. 똑같이 승패를 가리는 게임이지만, 양쪽에서의 기분은 사뭇 다르다. 대개 보드게임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컴퓨터의 인공지능이나 네트워크 너머의 이름 모를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앞에 얼굴을 마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 번 게임이 시작되면 어떻게든 끝까지 가야 한다. 결정된 맵이 마음에 안 든다고, 초반 운이 안 좋다고 멈추고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언제나 상대와 대화해야 하고, 서로 간에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 시절 ‘뱀 주사위 놀이’라는 게임을 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주사위를 굴려 불장난 칸에 걸리면 나쁜 일을 한 죄로 아래로 떨어지고, 반대로 착한 일에 걸리면 위로 올라가는 게임이다. 그중 제일 착한 일이 ‘간첩 신고’라는 웃지 못할 이데올로기도 들어 있다. 이 게임 역시 ‘뱀과 사다리’라는 원형이 있다. 나는 이 게임을 싱가포르, 홍콩, 스페인의 톨레도에서도 보았다. 불교적인 세계관을 담은 ‘윤회쌍륙’이나, 벼슬살이를 담은 ‘승경도’ 같은 전통의 게임도 비슷하다.

 

mono

 

보드게임 한 판은 마치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 판 위에서 주사위의 운과 각자가 가진 기술을 더해 상대를 이기고자 한다. 어찌 보면 주사위는 공평하지 못한 수단 같지만, 힘이 약한 사람도 운을 얻어 게임에서 이길 기회를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초등학생 아이와 부모들이 함께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는 거기에서 사회를 보기도 한다. 블루마블처럼 강자만이 독식하는 게임은 쉽게 흥미를 잃는다. 때론 기술로 때론 운으로, 엎치락뒤치락 누구든 이길 기회를 주는 게임이 훨씬 재미있고 지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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