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4월 2008-03-03   272

참여마당_회원 생각

나의 2008년

권범철 참여연대 회원 paledall@naver.com

나의 2008년이라. 나는 늘 새해가 오는 게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거창한 새해에 비해 초라한 내가 싫었고, 다시 돌아오는 달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지난해가 아쉬웠다. 또 새해가 시작된다고 하여 지난해를 먼지털 듯   털어버리고 갈 순 없기에 조금은 우울한(시국이!) 올 연말이 맘에 걸리는 것도 그렇다. 난 그냥 연말이 좋다. 연말의 그 해이한 분위기가 좋다(꽉 짜인 건 언제나 답답하지 않나?). ‘올해엔 기필코’와 같은 새해맞이 결심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사람들은 묻는다. 2008년엔 뭐 할 건데?

그에 앞서 올해엔 뭐 한 게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난생 처음 외국여행을 가서 그 곳에서 새해를 맞았다. 1년 전 이맘때, 난 북경의 낡은 아파트에서 불법 복제한 DVD를 사 보거나 책을 빌려 보거나 혹은 탁구를 치거나 하며 놀고 있었다. 그때의 새해맞이 각오는 무사히 논문을 쓰고 졸업하는 것이었다. 그 바람대로 올 여름 무사히 논문 쓰고 졸업했으니 이것만으로도 나의 한 해는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하다. 올해는 나의 신변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한 해였다. 우선 북경에간 사이에 이사를 한 우리 집은 서울에서 더 멀어졌고, 그 덕분에 버스에 투자하는 돈과 시간은 갑절로 늘어났다(그래도 가난한 나를 챙겨주는 누나와 매형과 조카에게 늘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더 이상 학교에 머무르지 않게 된 일이다. 학교를 졸업한 나는 이제 학생이 아니었고, 얼마 뒤 그토록 혐오하던 직장인이 되었다. 좀더 자세히 분류하자면 어느 단체의 활동가로서 직장인이 된 것인데, 그렇다고 활동가라는 직업을 혐오하지는 않았다. 내가 직장인을 혐오했던 건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어디엔가 끌려가 지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요즘의 난 30여 년간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의 양식에 적응하느라 힘겨운 상황이다. 게다가 올 연말의 대선 결과는 새해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으니, 다가올 새해는 더욱더 반가울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다가오는 새해를 잘 맞이하는 일은 필요하다. 우리가 할 일은 다가오는 한 해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새해의 새판을 구성해내는 일이다. 비록 달갑잖은 결과를 낸 대선 뒤에 오는 한 해라 하더라도 한 줌도 되지 않는 정치꾼들 때문에 우울하게 맞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저 투표용지 한 장만 덜렁 던진 채, 새로 선출된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님들이 선정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을 수만은 없듯이. 우리는 잠시 잊은 것 아닌가?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인 순간은 4년 혹은 5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투표용지 제출 순간만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민주주의는 늘 망각을 가져오는 것 같다. 2008년 내가 할 일은 ‘기억’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땅의 권력자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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