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4월 2008-03-03   541

굿모닝 세미나_’꼬보’의 고추장 이야기

 

김칫국물을 버리며 거북했던 이유

수유너머에 들어설 때 난 직감했다. 뭔가 이 곳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기고 있으며 뭐든 건져 가리라는 것을…. 학교 건물의 한 층을 다 쓰고 있으면서도 강의실, 사무실, 놀이방, 카페, 탁구장, 도서관, 식당 등 어디 한 구석 허투로 낭비되는 곳이 없었다. 식사 후에는 식빵으로 접시를 닦아먹어 양념 국물 하나 낭비하지 않는 것처럼.

무엇보다 마음에 많이 남은 것은 고추장이었다. “나는 전혀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 사람들과 함께 늙어갈 것이다.”라고 말할 때 느껴지는 자신감, 유순하던 눈빛이 “지켜본다”고 했을 때 문득 번뜩이던 것, 그 밖에도 ‘어록’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 뼈있는 말들을 나직나직하게 하시던 모습. 비록 질문 하나 못했지만 말씀을 듣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최근 나는 두 권의 책 읽는 것을 막 끝내고 아직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아마 <수유너머>를 방문하기 위한 준비는 아니었을까?

그 중 한 권은 김형경 씨의 소설 「성에」인데 거기에는 우리가 가진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환상은 환상일 뿐이지만 또한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어준다고. 고추장의 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환상’은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변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꿈’을 꾸면서도 그 것은 단지 ‘환상’일 뿐이라는 말을 하며 “어른이 되어 현실에 적응”하면서 산다. 그런데 고추장은 “저희는 여기서 생활을 함께 합니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이 내게는 “이 곳은 우리의 꿈과 현실이 일치하는 곳입니다.”라고 들렸다. 어쩌면 우리의 꿈은 우리가 포기하지 못하는 욕심 때문에 ‘환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른 한 권의 책은 「아직 더 가야할 길」이라는 책이다. 심리학자가 쓴 책인데, 그 곳에서는 사랑은 자신과 타인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자신의 게으름과 싸우고 발전해나가는 과정. 고추장의 딸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며 빙긋 웃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널 사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스스로를 조각하면서 확장해가고 계시는구나. 축복 받은 아이야.’  
        
어제 술자리에서 만난 모닝콜 친구에게 <수유너머>이야기를 했더니 반신반의한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해보이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건 어쩌면 남들에게 그렇게 보여줄 수밖에 없어서이지 않겠느냐고. 나중에 아프면 어떻게 하고, 아이가 커서 부모를 원망하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 친구를 보면서 고추장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보험 상품을 권유했다던 조카분이 생각났다. 실은 우리의 속마음은 그런 게 아닐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우리에게 ‘불편’하다는 것. 자신의 꿈을 접으며 안정(혹은 이를 핑계로 한 물질에 대한 욕심)을 위해 아득바득하지 않아도, 꿈과 현실을 일치시켜 가며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것. 마치 내가 <수유너머>를 다녀온 뒤 김치통에 남은 김칫국물을 버리면서 거북함을 느꼈던 것처럼. 

글쓴이_ 꼬보. 본명은 서혜선. 차분함 안에 호기심과 열정을 지니고 있는  ‘굿모닝세미나’ 주요 멤버이다. 왠지 그녀 옆에 있으면 이후 펼칠 끼와 가능성을 나눠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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