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6월 2014-06-03   1000

[경제] “21세기의 자본”

“21세기의 자본”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참여사회 2014년 6월호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향한다

 

프랑스의 43살 경제학자 피케티Piketty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가 ‘21세기의 자본’이라고 이름 붙인 책 한권이 ‘공산주의자 선언’의 유령처럼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그의 업적은 사에즈나 애트킨슨과 함께 20년 가까이 작업한 일관된 통계로 자본주의 역사를 묘사했다는 데 있다.

 

그는 ‘경제과학’이라는 경제학 특유의 독선을 거부하고 ‘정치경제학’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에게 자율적 조정기제로서의 시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의 ‘객관적 법칙’ 따위를 믿지 않는 그가 ‘자본주의의 근본법칙’이라고 부른 두 개의 식이 있다.

 

첫째는 α=rβ라는 회계적 항등식이다. 자본이 차지하는 몫(α)은 β=W/Y(한 나라의 재산을 국민소득으로 표시하면 몇 년 치에 해당하는가)에 자산의 수익률(r)을 곱한 값이다. 이 자산을 피케티는 ‘자본’이라고 불렀다.

 

둘째는 장기적으로 경제가 정상상태steady state라면 β가 s/g의 비율로 수렴할 것이라는 가정(그는 법칙이라고 했지만 내 보기엔 현실과의 비교를 위한 가설일 뿐이다)이다. 즉 자산/소득 비율이 저축률/성장률 비율로 수렴해야 한다.

 

피케티는 전후의 국민계정 통계와 300년의 역사 속에 남아 있는 세금자료를 이용해서 이 비율들의 실제 값을 추적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β는 유럽의 벨에포크, 미국의 도금시대(19세기 말에서 1910년까지)에 최대치(약 7배)가 된 이후 1950년까지 뚝 떨어졌다가 1980년대부터 급상승해서 이제 19세기말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즉, 부자들이 가진 자산의 가치가 1년 내내 전 국민이 생산한 부가가치의 6~7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바로 이 수치가 불평등의 증거다. 두 번의 세계 전쟁과 대공황이 자본의 물리적 파괴, 90%를 넘는 누진소득세, 노동에 유리한 각종 정책(뉴딜), 금융 자본에 대한 규제를 통해 부의 불평등을 대폭 완화했을 뿐, 자본주의는 내재적으로 불평등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참여사회 2014년 6월호

 

다시, 자본의 시대가 올 것인가?

 

또 하나, 그가 찾아낸 놀라운 사실은 자본의 수익률(r)이 전 역사를 통해서 4~5%로 일정했다는 것이다(경제학의 이론이나 상식을 뒤엎은 이 역사적 사실이 앞으로 경제학계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이유로든 경제성장율(g)이 떨어진다면 제2법칙에 따라 β가 치솟을 것이고 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미 선진국의 경제성장율은 1%를 가까스로 넘을 정도로 떨어졌고 중국 등 신흥경제도 곧 성장의 한계를 맞을 것이다.

 

전 세계 인구 증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바야흐로 21세기가 다시 ‘자본의 시대’가 될 거라는 강력한 증거다.  이런 의미에서 『21세기의 자본』은 지옥의 묵시록이다.물론 피케티는 자신의 책이 묵시록이 아니라며 온건한(!) 해결책, 일시적인 누진소득세(최고세율 80%에 이르는)와 글로벌 자본세(전 세계에 동시에 부과하는 0.1% 정도의 재산세)를 제시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단 1%에게만 적용되는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상기해 보면 이 해법이 전 세계적으로 실천될 가능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19세기 말의 사회, 즉 레미제라블의 사회를 견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동아시아야말로 피케티의 이 정책을 실천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 성장률이 선진국의 두 배를 넘으니 재산세율을 그리 높게 잡지 않아도 되고 자본의 유출도 그리 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는 세계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역사를 보는 장기적 시야는커녕, 눈앞의 문제를 호도하는 데 급급한 이 나라의 지배세력이다. ‘세월호’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우리의 현실이다.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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