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3월 2014-02-28   1372

[경제] 모든 연령을 위한 세대 간 연대

참여사회 2014-03월

모든 연령을 위한
세대 간 연대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요즘 나는 뻔질나게 불광동에 간다. 보건의료 관련 공공기관들이 세종시로 이전하는 바람에 생긴 공간에 사회적경제센터, 청년허브센터, 인생이모작센터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청년허브가 둥지를 튼 건물 왼편에 자투리땅이 있다. 청년들이 기특하게도 이 땅을 일궈 도시 농부가 되자고 호미를 들었단다. 몇 날 며칠을 고생해서 두 평가량을 확보했는데 멀리서 이 꼴을 지켜보던 이모작센터 어르신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척하니 너덧 고랑이 넘는 텃밭을 마련했다. 자연스레 어르신들이 가꾸는 고랑과 청년들이 돌보는 고랑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세대 간 학습”과 고령화 사회 

 

이름표까지 붙여 가며 “경쟁적으로” 지은 농사의 결과는 어땠을까? 불문가지, 어르신 쪽의 배추가 훨씬 크고 속도 꽉 차 있었을 것이다. 두 세대는 수확한 채소로 김장을 해서 이웃들과 나누었다. 전효관 청년허브센터장에 따르면 서로 일하는 시간이 달라서 딱히 청년들이 농사법을 배우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농사짓기 전에, 또 일하는 동안에 청년들이 노인들에게 일을 배웠다면 더 높은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물론 농사니까 그렇지 인터넷으로 하는 일이었다면 청년들이 훨씬 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세대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면 어떨까? 세대 간 학습(intergenerational learning)이 그것이다. 어디 노인들이 더 잘하는 게 농사뿐이랴. 후쿠시마 사태에서 보듯이 위기가 닥칠 때 노인들의 지혜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인류 역사 100만 년 동안 노인들은 다음 세대에게 평생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규범을 물려주었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이 전통은 무너졌고 이제 핵가족마저 또다시 분열하는 데에 이르렀다. 특히 노인 세대와 손주 세대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노인들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규범은 낡고 고루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각국의 연구에 따르면 공동체의 정신이 살아있는 유명한 마을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났다. 

 

더구나 수명은 늘어났고 출산율은 터무니없이 떨어졌다. 이때부터 노인은 사회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국민연금이 그렇고 노인장기요양보험이 그렇다. 이른바 고령화 사회의 문제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보면 공적 연금이란 그 해의 생산물을 노인에게 얼마나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래서 연금의 기여와 급여를 어떻게 정하느냐를 놓고 세계적인 대논쟁, 연금개혁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적극적 노화와 세대 간 연대 

 

1990년대부터 각국에서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일어났고 2002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적극적 노화(active aging, 활동적 노화, 활기찬 노후라고도 번역한다)” 개념은 첫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각국의 실제 적극적 노화정책은 노인 재취업 정책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어야 노인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다다랐다. “세대 간 연대(intergenerational solidarity)”와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Society for all ages)” 개념이 그것이다. 

 

글 첫머리의 이야기에 내비친 “세대 간 학습”은 세대 간 연대를 달성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노인을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로, 또는 부담으로 생각해서 그렇지 실제로 노인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노인은 대대로 가정이나 사회의 각종 갈등을 조정하는 존재였다. 

 

현대사회에서 노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대 간 연대의 실험을 틈나는 대로 소개할 요량이다. 물론 제로섬 게임 상태를 해결할 거시 경제정책도 필요한데, 이들 정책이 세대 간 연대정책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지속가능해질 것이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