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2월 2015-02-02   773

[경제] 성장하지 않는 경제에서 버려야 할 상식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다시

우리 경제는 정체하고 있다.  앞으로 다시 성장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여기서부터 쇠락의 길을 걸을 지는 솔직히 아무도 잘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앞으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가 다시 오기 어렵다는 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좋건 싫건 동의한다. 그런데 ‘성장하지 않는 경제’는 ‘성장하는 경제’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과거에 중요한 인생의 교훈이었던 상식이 때로는 뒷덜미를 치는 흉수가 되기도 한다.

경제는 저절로 성장하지 않는다

첫째, 성장하지 않는 경제는 세금을 제대로 거둘 수 없다. 반면, 성장하는 경제는 가만히 있어도 세금이 저절로 걷힌다. 특히 세제가 누진구조인 경우에는 세금 증가율이 성장률보다 더 높다. 소득이 올라가면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장이 정체되거나 쇠락하는 경제는 그 반대다. 도통 세금이 맘먹은 대로 걷히지 않는다. “세금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걷히는 것”이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둘째, 성장하지 않는 경제에서는 부동산이 보배가 아니라 업보다.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을 통해 거두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높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의 가치가 높을 수 없다. 게다가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리라는 전망도 없기 때문에 버블bubble,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됨로 존재하기 어렵다. 경제가 성장할 때는 부동산의 가치도 높고, 또 그 가치가 더욱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존재했지만, 경제가 정체한 경우에는 그 반대가 된다. 그 반대는 무섭다. 자칫해서 한껏 부풀어 오른 버블이 갑작스레 꺼지기라도 하면 그 때는 아수라장이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은 보물인 줄 알고 무리하게 붙잡은 부동산이 사실은 또 다른 흉수임을 절감하게 된다. “부동산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오르는 것”이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된다.

셋째, 성장하지 않는 경제에서는 기업에 돈을 몰아주는 것이 성장을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기업은 돈벌이가 돼야 투자를 하는 생물이다. 돈만 된다면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도 누비고, 자기 집을 저당 잡히고도 투자를 하지만, 주판알 튕겨서 돈이 안 된다고 결론이 나면 억만금을 주어도 투자하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할 때는 도처에 돈벌이 기회가 보인다. 따라서 기업은 자금을 확보하려고 혈안이고 금융시장에는 만성적인 자금의 초과수요 현상이 나타난다. 암시장이 생기고 사채가 횡행한다. 이런 경제에서는 한정된 재원 중 기업에 몰아주는 몫을 늘리면 기업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을 투자하고 따라서 경제는 더욱 더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가 정체되거나 쇠락하는 경우에는 어디에 투자해도 돈 나올 곳이 없다. 따라서 기업에 돈을 몰아주어 봤자 기업은 그 돈을 차곡차곡 금고에 쌓아둘 뿐 좀체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총수요는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한정된 재원을 기업에 몰아주느라 개인의 가처분 소득을 줄인 경우에는 소비수요만 줄어들게 된다. 그 결과는 성장의 추가적 정체다. “기업에 돈을 몰아주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성장이 된다”는 상식은 통하지 않게 된다.

잘못된 경제 상식은 하루빨리 버려야

넷째, 성장하지 않는 경제에서 오늘의 부채를 미래로 이전시키는 것은 자살골이다. 성장하는 경제는 대개 인플레이션inflation, 화폐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현상을 동반한다. 따라서 부채의 액면금액을 동결한 채 미래로 이전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부채의 실질적 탕감이다. 게다가 경제성장에 따라 소득도 증가할 것이니 지급여력은 늘어난다. 이것이 과거 우리나라가 기업 부채를 탕감하거나 국가 부채를 희석시킬 때 자주 사용하던 방식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정체되거나 쇠락하는 경제에서는 물가가 제자리거나 디플레이션deflation, 통화량이 적어서 물가가 떨어지고 돈의 가치가 올라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부채탕감 효과는 발생하지 않거나 오히려 그 반대로 실질 부채의 증가가 일어난다. 거기다 소득까지 줄어들 경우 부채의 부담은 이중적이 된다.  “빚을 져도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상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장하지 않는 경제에서 이 모든 것을 다 합쳐서 추진하는 것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 짓이다. 정부는 세금을 안 걷겠다고 하면서 세출을 늘려서 재정부채를 증가시킨다.  그러고는 국민들보고 빚을 내서 부동산을 사라고 한다. 그러나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법인세 인상에는 기를 쓰고 반대한다. 그리고는 넥타이 부대들한테 꼼수로 세금을 걷으면서 경기활성화를 외친다. 미친 짓을 곱빼기에 곱빼기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경제가 성장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확실한 점이 있다. 잘못된 상식은 깨끗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저절로 앉아서 기다리면 아무것 안 해도 입안에 떡이 굴러들어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옛말에 어르신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경제가 성장하던 시절에 생긴 말일 것이다. 


전성인

서울출생. 서울대와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조교수로 근무,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근무후 홍익대 경제학과에 현재까지 재직중. 화폐금융론이나 거시경제학에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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