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3월 2015-03-02   905

[경제] 두 나라의 봄

 

두 나라의 봄

 

 

정태인 경제평론가,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창립 준비위원

 

 

담배 피다 문득 올려다보니 주차장 한 귀퉁이 나무 가지에 점점이 달린 새움이 탐스럽다. 지난 이틀간 비 맞은 강아지 꼴이었는데 그 비가 그치자마자 거짓말처럼 보송해졌다. 3월에도 폭설이 내리는 이상한 세상에서 지금 봄을 얘기하는 건 괜스레 말만 또 앞서 가는 것일 테다. 하지만 눈에 빤히 보이는 걸 어이 하랴. “너희에겐 그래도 봄이 오는구나”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오바마의 ‘중산층 경제학’

오바마 대통령은 과연 대중 연설의 귀재였다. 그는 자신의 취임에 즈음해 미니애폴리스에서 결혼한 두 명의 젊은이 얘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레베카(식당종업원)와 벤(건설노동자)이라는 신혼부부가 자신의 임기 동안, 매우 어려운 시기를 거쳤지만 “탄탄하고 잘 짜인 가정”을 어떻게 꾸릴 수 있게 되었는지, 레베카의 편지로 소개했다. 그리고나서 이 부부의 아이들(잭과 헨리)에게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 하나 짚어 나갔다. 이름하여 “중산층 경제학middle class economics”이다. 누가 봐도 하층 노동자라고 할 만한 두 젊은이가 자신의 임기 동안 열심히 일한 결과, 중산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기회가 열리도록 하는 것이 오바마 경제학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기실 많은 지표들은 미국이 더 이상 “기회의 땅”, “능력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상위 10%, 그 중에서도 상위 1%에 자산과 소득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간명한 그래프로 그려냈다. 또한 미국 시민들은 의료와 교육, 그리고 주택대출로 인해 1인당 평균 1만 달러의 빚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레베카와 벤처럼 일하는 가정working family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보육, 대학, 보건, 주택, 노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아이 당 3천 달러의 감세, 7일간의 유급병가, 그리고 유급출산휴가, 남녀 간 평등임금, 최저임금 인상, 노동조합의 강화, 모기지 이자율 인하 등 구체적인 정책을 열거했다. “연간 15,000달러 소득으로 가정을 지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라”는 당당한 발언도 이 때 나왔다. 이어서 그는 노동자들의 숙련 향상을 위해서 지역대학community collegy의 무상교육을 내세웠고 21세기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 경제 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시설에 대한 공공투자도 약속했다.

재원은 부자증세에서 나온다. 자본이득세율을 자신의 취임 초에 비해 거의 두 배인 28%까지 끌어올려 상속세의 구멍을 메꾸고 자산규모 500억 달러를 초과하는 100여 개 대형 은행에 은행세(우리나라의 거시건전성 부담금과 유사하다)를 부과해서 앞으로 10년간 3,200억 달러를 확보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이른바 “오바마 의료개혁”이 그러했듯이 이런 약속이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를 순조롭게 통과하기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재정긴축을 둘러싼 그간의 논의를 단숨에 복지증세 논의로 뒤바꿨다. 지금 폭설과 혹한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에 과연 봄이 올 것인가? 여러 가지로 어렵겠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보송한 새움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부자를 위한 ‘줄푸세’가 계속되는 한국

한국의 대통령도 중산층 주거혁신 방안, 즉 기업형 민간주택 건설 방안을 내 놓았다. 정부는 여기서 중산층이란 가계의 65%를 포괄한다고 정의했다. 하지만 같은 발표문에서 그 임대주택의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서울의 상위 20% 정도라고 스스로 실토했다. 경제성장률 4%는 문제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제로는 3% 전후를 맴도는 성장률 탓에 재정적자가 확대됐다. 

박근혜 정부는 담뱃세를 올렸고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편 부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건강보험개혁은 보류하고 급기야 대통령이 국제대회 명예회장을 맡은 걸 기회로 골프세를 내릴 태세다. 여전히 “줄푸세세금과 정부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는 뜻으로, 2007년 박근혜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모델”가 신앙인 한국의 대통령을 믿는 건 폐사목에 꽃피기를 기다리는 꼴이니 제 아무리 봄이 온들 그 무슨 소용이랴.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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