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4월 2015-04-02   863

[경제] 디플레이션과 성장 정책

디플레이션과
성장 정책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참여사회 2015년 4월호 (통권 221호)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 그대로 일반적인 물가수준 그 자체가 하락하고 있다. 지난 2월 소비자 물가는 1년 전에 비해 0.5% 상승했다. 그러나 담뱃세 인상에 따른 담뱃값 인상 기여도가 0.52%이기 때문에 이 요인을 제외할 경우 사실상 물가수준은 이미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3월 25일 발표된 GDP 디플레이터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경제 활동을 반영하는 종합적 물가지수는 한 술 더 떴다. 계절조정 된 시계열을 사용할 경우 작년 4/4분기는 전기 대비 ?1.0%, 전년 동기대비 ?0.13%로 모두 음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미 작년 말부터 문자 그대로 물가하락이 시작되었다고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물가하락에 대한 다양한 시선
물가하락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다양하다. 어떤 이는 물가 하락이라는 사실 그 자체를 부정한다. 일부 언론이나 일부 국회의원들은 “장바구니 물가는 아직도 높고”,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고”, “만원 한 장을 들고 가서 살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이 다 맞다고 해도 이는 물가하락과는 무관한 얘기다. 이 말은 물가의 절대적인 수준이 소득에 비해 높다는 주장일 수는 있어도 물가수준이 ‘하락’하고 있다는 데 대한 정확한 반론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대놓고 헛소리는 못해도 슬그머니 딴 얘기를 하면서 물가하락을 사실상 부정하려고 한다. “기대 인플레이션률이 아직 2%대로 높다”는 것이 그런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물가상승률은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측정하지 한국은행이 조사하는 기대 인플레이션률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행 주장대로라면 물가가 급등하는 인플레이션 기간에도 사람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는 말인가. 특히 기대 인플레이션은 후행지표로서의 속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가하락에 천천히 반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은 과거 유산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어쩌면 한국은행은 이런  주장을 통해 3년 통산으로 물가안정목표를 지키지 못한 자신들의 정책적 실수를 적당히 얼버무리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가하락을 보는 또 다른 시선은 현재의 물가하락이 본격적인 디플레이션통화량의 축소에 의해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의 시작이 아니라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현재의 물가하락이 원유가격 하락 등 공급측면의 일시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고 조금 지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은행은 연초에 펴낸 인플레이션 보고서의 말미에서 “예측 가능한 시계에서 디플레이션은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한국은행이 왜 3년 통산 기준으로 물가안정목표(2.5% ~ 3.5%)를 못 지키고 실제 물가상승률이 1% 대에 머물렀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3년 동안 매년 공급측면의 예측 불가능한 충격이 있었단 말인가.

또 다른 사람들은 디플레이션이 한번 시작되었다고 해서 곧 더 극심한 디플레이션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니고, 조기에 회복되기도 하고, 경험적으로는 그런 경우가 더 많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최근에 물가상승률이 음수가 된 적이 더러 있었다. 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음수였던 적은 없지만, GDP 디플레이터 기준으로는 1999년에 ?1.2%, 2006년에 ?0.1%의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이때는 필자를 포함해서 아무도 디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무엇인가 상황이 그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그래서 한국은행처럼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무책임하게 치부하기 어려운 것이다.

 

저성장-저물가 시대의 성장 정책
그렇다면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명백하게 저성장-저물가의 늪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물가 수준의 하락은 바로 이런 현상의 표출일 뿐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국면으로의 진입을 인정하자는 것은 우리 경제가 직면한 구조 변화를 직시하자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총력을 동원한 성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성장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 아직 우리 사회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확실한 조건은 있다. 첫째, 성장은 인적 자본 또는 물적 자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통해 달성된다. 우리는 과거 이중에서 물적 자본의 증가에 집중해 왔다. 이자율을 낮추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면서 친기업 정책을 펴서 기업들에게 투자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5년을 거치면서 이제 더 이상 이 방식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기업들이 더 이상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탈출구가 필요하다.

둘째, 현재 우리나라는 노령화에 의해 노동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따라서 노동자의 머릿수를 증가시키는 정책도 벽에 부딪쳤다. 혹자는 해외 인력을 수입하거나 통일을 앞당기자고 주장하지만 그것도 그리 쉬운 해결책은 아니다. 

셋째,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필자는 아마도 거의 유일한 탈출구는 인적 자본의 지속적 축적뿐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스펙 쌓기 경쟁을 더 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동 생산성을 향상 시키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투자도 덩달아 증가하고,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향상될 수 있다.

이제는 성장정책으로서의 노동 정책을 심도 있게 살필 때가 되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차원이 아니라 휴먼 프렌들리 차원에서 말이다. 그것이 물가수준의 하락이 주는 진정한 메시지다.

 

 

전성인
서울출생. 서울대와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조교수로 근무,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근무 후 홍익대 경제학과에 현재까지 재직 중. 화폐금융론이나 거시경제학에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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