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8월 2016-08-01   587

[경제] 론스타 재판, 어디까지 왔나?

 

론스타 재판,
어디까지 왔나?

 

 

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출생. 서울대와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조교수로 근무,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근무후 홍익대 경제학과에 현재까지 재직중. 화폐금융론이나 거시경제학에 관심이 많음.

 

 

소송 제기조차 쉽지 않은 론스타 
지금부터 정확히 4년 전인 2014년 7월 24일, 참여연대는 론스타 및 그 관련자들을 상대로 3조 4천억 원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금액 면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의 주주대표소송이었다. 그로부터 4년뒤 이제 비로소 본격적인 논리 공방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다. 가장 중요한 피고인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 대한 소장 송달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주주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고, 해외의 사건 관련자들에게 소장을 송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특히 그레이켄은 주소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송달에 애를 먹었다. 작년에는 런던의 주소로 송달이 이루어졌는데 참으로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그레이켄과 공식적으로 아무런 수임 관계에 있지 않은 어떤 영국의 로펌이 “이런 송달은 문제가 있다”고 한국 재판부에 의견서를 보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텍사스의 론스타 사무실에서 소장을 받아들여서 송달이 완료되었다. 이제 비로소 말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말싸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시급한 것은 주주대표소송의 원고 적격을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403조 제5항의 의미를 다투는 것이다. 위 조항은 “발행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에는 제소의 효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지주의 완전자회사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그 주식이 (비자발적으로) 하나금융지주 주식으로 교환되었다. 이 경우 이 주식교환이 제소자인 소수 주주의 자발적 의사와 무관하다는 점, 주식교환 이후에도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지주의 ‘완전 자회사’가 되어 외환은행의 이익과 하나금융지주의 이익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 당초의 제소 주주는 하나금융지주의 주주로 남아 있다는 점 등이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물론 법원이 이 조항을 협소하게 해석할 경우 이 조문이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한다는 점에서 헌법을 위배하고 있는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그 구체적 논점이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난제가 있지만 일단 심리가 개시되었으니 그것을 따라가면 된다. 특히 재판부도 이 소송이 우리나라가 론스타에게 외환은행 지배를 통해, 그리고 어쩌면 투자자-국가 중재를 통해 억울하게 빼앗긴 돈을 다시 받아낼 유일한 정상적 통로라는 점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참여사회 2016년 8월호(통권 237호)

 

현대 재판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한편 최근에 론스타와 관련한 또 다른 소송이 막을 내렸다.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한국을 떠나기 직전인 2011년 3월말에 있었던 외환은행 주주총회에서 4%를 초과하는 의결권을 부당하게 행사해서 배당을 받아 갔던 것을 문제삼는 주주총회 결의 부존재·취소 소송이 그것이다. 애석하게도 대법원(주심은 김소영 대법관이었다)은 지난 7월 22일, 이 소송을 각하했다. 아직 판결문을 입수하지 못해 정확한 논거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원고 적격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보도되었다. 대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위에서 언급한 주식교환의 결과로 당초 외환은행 주주였던 원고들이 더 이상 외환은행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 판결은 많은 아쉬움을 가지게 한다. 왜냐 하면 대법원은 현행법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법을 발견하고,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원고의 주장은 간단하다. 론스타는 산업자본이고, 4%를 초과해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데, 부당하게 의결권을 행사했다. (만일 그 의결권을 4%로 제한하면 배당과 관련한 안건은 부결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 주주총회 결의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존중해야 할 옳은 주장들이다. 그 사회 경제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왜냐 하면 론스타는 이 시기만 산업자본이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산업자본이었는데 의결권을 제한 없이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법원은 형식상의 원고 적격의 문제를 이런 사안의 본질과 함께 판단하고 전체적인 측면에서의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했어야 한다. 그런 법을 발견하는 것이 대법원에게 맡겨진 사회적 역할인 것이다. 적어도 이번 사건의 주심 대법관은 그런 법을 발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제 조만간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의 투자자-국가 분쟁중재의 최종 결론이 나올 것이다. 이 중재사건은 우리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각하되었어야 한다. 왜냐하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투자는 국내법을 위반한 위법한 투자였고, 따라서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이 보호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재 재판부는 이 중재사건을 각하하지 않고 지금까지 끌고 왔다. 

원고 적격을 문제 삼아 사회적 함의가 큰 재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현대 재판이 추구해야 할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다. 재판은 결국 그 사회, 그 시대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도구이고, 재판부는 그 사명을 현명하고 슬기롭게 수행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주주대표소송에서 우리나라 재판부의 소명의식을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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