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3월 2016-02-29   1055

[경제] 한반도 전쟁 프로세스

 

한반도 전쟁 프로세스

 

글.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혹독한 독재가 내 청춘을 지배했다. 대학 전반부는 박정희 말기, 후반부는 전두환 초기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하지만 젊어서 그랬을까, 지금처럼 기가 턱턱 막히지는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든 말은 제 뜻을 잃고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가 선거에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와 생애맞춤형 복지는 기실 규제완화와 민영화, 부동산투기였다. 불행하게도 그의 말 바꾸기는 이 땅만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그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기실 ‘한반도 전쟁 프로세스’로 판명 났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참으로 그럴듯한 이름이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저비스Robert Jervis가 갈파했듯이 국제관계란 ‘안보 딜레마가 걸린 사슴사냥 게임’이다. 사슴사냥 게임이란 서로 협동하면(협동, 협동) 더 큰 이익을 얻지만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배반, 배반)을 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참여사회 2016년 3월호(통권 232호)

반복되는 배반의 늪, 남북관계
남북관계는 ‘반복 죄수의 딜레마’ 성격을 지니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란 (협동, 협동)이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배반, 배반)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죄수의 딜레마를 거듭하게 되면(반복 죄수의 딜레마), 서로 협동하는 쪽을 택할 수 있다. 끝없는 반복은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사냥 게임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전략은 반복 죄수의 딜레마에서 가장 유력한 전략이다. 첫 번째는 협동을 택하고 다음부터는 상대 전략을 따라하면 된다. 

하지만 양 쪽이 다 이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 우연 때문에라도 (배반, 배반)이 한번 나타나는 경우 영원한 상호보복이 일어날 수 있다. 지난 7년간 박왕자씨 살해사건, 금강산 관광 중단, 연평도 포격 , 5.24 조치, 확성기 비방 방송은 이런 보복의 악순환을 의미한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느 한 쪽이 먼저 협동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를 ‘관대한 TFT(GTFT)’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안보 딜레마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안보 딜레마란 한 쪽의 안보가 증가하면 다른 쪽의 안보가 그만큼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한 쪽의 군사력이 증강되면 반대쪽도 군비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요약된다.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는 북한과 미국의 게임이다. 북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정권의 유지이며 그들은 핵무기 보유가 가장 비용이 덜 드는 방안이라고 믿고 있다.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하려면 ‘한 방’이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이 핵무기가 신뢰할만한 위협이 되려면 장거리 로켓 발사 능력도 있어야 한다. 

 

평화협정과 경제협력 동시에 추진해야
북한의 배반에 대해서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라는 강력한 응징(배반)으로 맞섰다. 북한 역시 개성을 군사보호지역으로 선포했다. 10킬로 이상 뒤로 물러났던 군사 대치선이 다시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로 좁혀졌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의 경제에 그다지 큰 충격을 주지 못한다. 개성공단에서 북한에 귀속되는 연간 약 1억 달러는 북한 GDP의 1/30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의 대 중국 무역의존도는 100% 남짓이므로 경제적 응징이 효과를 보려면 중국이 나서야 한다. 하지만 중국이 대북한 무역 중단과 같은 제재를 할 리 없다. 미국의 대 중국 봉쇄망이 더 촘촘해지기 때문이다. 한반도 안보 딜레마는 더 큰 차원의 게임, 즉 중미 간의 패권경쟁의 일부인 것이다. 

놀랍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도 응징하겠다고 나섰다. 사드 배치에 관한 협의가 그것이다. 중국과 미국 간의 안보딜레마가 전면에 등장했다. 중국 정부가 <환구시보>를 통해서 전쟁 불사를 외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미일 삼각 동맹이 완전한 방어체제를 갖춘다는 것은 언제나 중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으로선 군비 증강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역시 사드 이상의 무기를 추가로 배치해야 하고 악순환은 증폭될 것이다. 바야흐로 한반도 전쟁 프로세스가 시작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중지와 평화협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안보 딜레마의 제도적 해결 방향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경제협력의 이익이 증대된다면 남북한은 사슴사냥 게임에서 (협동, 협동)을 기꺼이 택하게 될 것이며 상호 배반의 가능성은 그 만큼 줄어들 것이다. 

결국 남북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란 경제와 안보 두 차원의 딜레마를 동시에 푸는 과정이다. 항간의 오해와 달리 원래부터도 햇볕정책은 이런 과정을 담고 있었고 참여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런 방향을 명확히 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우리는 일본이나 아세안과 함께 미국과 중국 사이에 완충지대를 형성시킬 수 있지만, 반대로 남북관계가 악화된다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대리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근혜 정부의 무지와 근시안은 우리 아이들을 경제 위기 뿐 아니라 안보 위기로 밀어 넣고 있다.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참혹한 청춘을 보내게 할 것인가? 올해와 내년, 두 번의 선거에 우리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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