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4월 2016-03-30   731

[경제] 삼성의 떡수

 

삼성의 떡수

 

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출생. 서울대와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조교수로 근무,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근무 후 홍익대 경제학과에 현재까지 재직중. 화폐금융론이나 거시경제학에 관심이 많음.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일진광풍을 일으키고 막을 내렸다. 인간과 슈퍼컴퓨터의 싸움, 인간계와 신계의 대결 등등 자극적인 제목이 줄을 이었다. 덕분에 우리가 그동안 많이 사용하던 용어들이 바둑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도 새삼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장고長考, 패착敗着, 포석布石 등이 모두 그런 용어였다. 그와 함께 새롭게 떠오른 용어도 있다. 떡수실착, 완착 등 좋지 않은 수를 속되게 이르는 말. 이 말은 필자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패착도, 악수惡手도 아니고 떡수. 우리나라 사람들만 기가 막히게 그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는 절묘한 용어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감동적인 승리를 얻어 낸 제4국에서 우리는 난공불락 같던 알파고가 떡수 몇 번에 그대로 무너져 내리던 과정을 경이롭게 지켜보았다.

아무리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상대가 한두 번의 ‘사소한 계기’로 쓰러진 예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본다. 다윗을 상대하던 골리앗은 돌팔매질 한 방에 쓰러졌고,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던 아킬레스는 파리스 왕자가 쏜 화살을 발뒤꿈치에 맞고 생을 마감했다. 해리 포터가 볼드모트를 쓰러뜨리고, 루크 스카이워커가 어둠의 황제를 물리치는 것은 모두 산술적 계산을 넘어서는 영웅담이다. 그리고 그 영웅담의 뒤에는 때로는 눈에 보이고, 때로는 슬쩍 감추어진 떡수들이 존재한다. 대개 자만심은 부주의를 부르고, 되풀이되는 부주의는 가끔씩 치명적인 떡수로 되돌아와 자기 주인의 가슴을 찌른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벌이던 때, 우리나라에서는 또 다른 ‘무모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삼성과 시민단체의 한판 승부다. 

 

상처뿐인 영광,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조금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작년 5월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서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공익법인을 삼성그룹 지배에 또 동원할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열흘이 지난 5월 26일,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과 삼성물산 간 합병 소식이 터졌다. 삼성물산 주주인 엘리엇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를 들었다. 드디어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엘리엇은 법정으로 갔고, 삼성은 전 그룹직원을 총동원하여 삼성물산 주주들에 대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엘리엇은 주주 이익을 얘기했고, 삼성은 애국심을 얘기했다. 결과는 법원이 주주이익을 기각하고 언론이 애국심에 편승하면서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삼성 편을 들었던 국민연금은 수천억 원의 손실을 경험했다. (물론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삼성은 승리했으나 ‘상처뿐인 영광’에 가까웠다. 첫째, 조용히 준비하던 원샷법이 이 난장판을 겪고 나서 조용하게 통과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둘째, 무언가 정직하고 공정한 듯한 인상으로 그동안의 부적절한 재산형성과정과 e-삼성의 경영 실패를 덮고 새롭게 출발하려던 이재용 이사장은 “역시 그 버릇 어디 가나”라는 손가락질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싸늘한 시선은 쉽게 만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셋째, 합병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신규 순환출자 고리가 발생해서 ‘피처럼 소중한’ 삼성물산 주식 2.6%를 또 다시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원샷법은 정부가 선거법 개정까지 연계하면서 대리전을 치러주어서 모양새는 좀 빠졌지만 넘어갔다. 둘째 문제는 어차피 단기간에 해결 되는 것이 아니니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 셋째 문제는 조금 골치가 아팠다.

 

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

 

삼성의 자만심이 부른 떡수
난리법석을 친 합병 과정을 보면서 이재용 후계구도 준비팀이 아마도 뼈저리게 느꼈을 점은 삼성물산 주식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었으리라. 따라서 이 주식을 전량 시장에 대책 없이 팔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떡수’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돈에 손을 댄 것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가지고 있던 돈 5천억 원이 그런 돈이다. 고故 이종기 삼성화재 회장이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사후에 기증했던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한 돈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출연재산의 매각대금은 출연재산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그 용도를 제한하고 있다. ‘공익목적사업’에만 써야 하는 돈이다. 그 돈을 덥석 가져다 쓴 것이다. 결과는 상증세법 위반이다. 떡수가 나온 것이다.

알파고가 떡수를 두는 논리적 과정은 잘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삼성이 왜 떡수를 두었는지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한번 경계선을 걷고 그럭저럭 빠져나왔다는 자만심, 국세청 유권해석이 법에 배치되는지는 보지도 않고 아마도 문제없다고 보고를 올렸을 법무팀, 선거를 앞둔 정치권과 국민들이 과연 이를 유심히 쳐다 볼 것인가 하는 안일함,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그 진짜 이유는 상당 기간 베일에 가려져 있을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팩트 하나. 떡수를 두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재용 이사장은 어떻게 이를 처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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