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5월 2016-04-29   540

[경제] 남북의 위기,  그리고 희망 

 

남북의 위기, 
그리고 희망 

 

글.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한 조각 희망도 없었기에 개표 시간에 나는 술집에 있었다. 스마트 폰을 쓰는 동석자들 덕에 내가 관심을 가진 후보들은 일찌감치 당선권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딱 하루, 환호가 지나고 “뭐가 달라진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경제만 보면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에겐 121석도 과분하다. 며칠 내에 발표될 한국은행의 ‘1/4분기 국민총생산 추계’는 연간 1%대 성장률을 가리킬 것이다. 피케티의 ‘세습 자본주의’는 미국보다도 한국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미 7을 넘은 베타값(국민순자산/국민소득)은 노동소득으로 주택 같은 자산을 소유하는 일이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말이고, 하위 50%의 인구가 겨우 1.7%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김낙년교수, 선진국은 5% 정도)은 우리의 자산 분배가 극도로 불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 정권 8년은 부동산 가격만 높여 놨고 가계, 기업, 정부는 모두 빚더미에 앉았다. 

그런데도 선거는 이 상황을 바꾸지 못했다. 소스키스와 홀에 따르면 조직 노동자가 주변부 노동자를 외부인으로 취급하는 상황에 단순다수대표제가 결합하면 복지정치는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은 기업별로 노조가 조직되어 있고 대기업과 하청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지역마다 한 명만 뽑는 소선거구제인데다 비례대표의 비율도 지극히 낮다. 복지정치에 대단히 불리한 상황인 것이다.

 

계층마다 따로 노는 북한 경제
며칠 동안 갑자기 우울의 나락에 떨어진 건 최근에 북한 연구를 시작한 것도 한몫했다. 우선 북한의 GDP가 약 3백억 달러 남짓 될 것(한국 GDP의 약 1/45 정도)이라는 한국은행의 추정은 과대평가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한국과의 직접 비교를 위해서 북한의 물적생산 통계에 남한의 가격을 곱하고, 달러로 환산하기 위해서 한국의 대미 환율을 곱했기에 나온 수치이기 때문이다(반면 북한의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은 ‘비공식 부문’ 생산은 플러스 요인이다). 

“통계를 제대로 발표하지 않는 계획경제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은 북한 경제가 몇 개의 조각으로 완전히 분리된 상태라는 주장과 겹치면 최악을 상상하게 만든다. 군사경제 따로, 궁정경제 따로, 각 부처 경제 따로, 그리고 ‘인민’의 시장경제가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2년 7.1조치 이후로 시장경제의 비중이 커졌다 해도 그것이 곧 ‘개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쇼크요법’과는 정반대의 정책기조를 띠고 있지만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무법 사회lawless society, 스티글리츠’가 초래된 것은 아닐까? 전주(돈 주인)라고 불리는, 말하자면 ‘신흥 부르조아지’가 생겨났지만 이들은 러시아의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 사회주의 국가의 특권계층’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유기업의 생산수단을 사용하여 근대 초기 선대제의 상인, 또는 재판농노제의 지주처럼 생산성 향상 없이 자원과 사람의 수탈로 자신의 돈 주머니만 채우는 건 아닐까?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이 400배쯤 차이가 나면 달러를 가진 사람이 곧 왕일 것이다. 따로 노는 경제가 각각 무역회사와 해외 식당을 차리고 전주 역시 중국과의 교역에 몰두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참여사회 2016년 5월호 (통권 234호)

남북의 적대적 공존에 균열을 낸 4.13 총선
남북은 양쪽 모두 단기 경제위기가 아니라 대개혁이 필요한 구조적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양쪽의 지배집단은 ‘북핵위기’에서 살 길을 찾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을 이용하여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남한의 지배계급은 ‘북풍’을 이용하여 정권을 유지한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치킨게임)은 곧잘 미국과 남한의 양보를 얻어내고 북한의 인민은 선군정치에 환호할 테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수없이 강조한 아름다운 ‘협동의 규범’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걸림돌이 되고 만다(전근대 사회의 협동에는 착취가 은폐되어 있을 수 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치킨게임의 비극(전쟁)까지 걸고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려 한다. 남쪽에서는 경제권력이 세습되고 북쪽에서는 정권이 세습된다. 

이번 총선은 이런 구도에 작은 균열을 냈다. 새누리당의 ‘참패’는 더 이상 ‘북풍’에 이끌려가지 않으려는 시민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20~30대의 투표율이 올라간 것은 더 이상 ‘세습 자본주의’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남북이 양쪽 모두 민주주의에 의한 협동으로, 시장과 국가, 사회적경제(시민사회)가 조화를 이루는 다원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 평화와 번영의 지름길일 것이다. 이번 선거가 그런 그림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대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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