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3월 2017-03-02   487

[역사] 국편 해체, 국정 교과서를  막아내기 위한 첫걸음

 

 

국편 해체, 국정 교과서를 
막아내기 위한 첫걸음

 

 

글.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남북관계사, 한중일 역사인식 문제 등을 매개로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평화문제를 해명하고 전망하는데 관심이 많다.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1948~1961』, 『한일근현대 역사논쟁』등의 저서가 있다.

 

소위 국정교과서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다. 교육부는 연구학교가 하나라도 진행하겠다던 공언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교육부가 이렇게까지 몽니를 부리는 것은 그만큼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의 이득과 함께 탄핵 기각의 경우를 대비하고, 인용되는 경우에도 자신들의 정책이 정당하다는 점을 계속 견지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혹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소신’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경우라도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한다면,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먼저다. 사과를 한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상식이고 정치의 도덕이다.

현 정권은 민심에 떠밀려 핵심 정책을 변경하면서도 책임은커녕 사과조차 없다. 오로지 ‘꼼수’만 난무한다. 자원외교를 통해 수천억 원의 손해가 가시화되고, 4대강을 되살리기 위해 보를 다시 파괴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음을 시인하면서도 사과와 책임은 없다. 언제부터인가 공직사회는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되어 버렸다. 작년 말부터의 촛불 정국에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책임진 공직자는 단 한명도 없다. 공직자들이 이러니 사회 전반에 그런 분위기가 만연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로 정당화하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국정 교과서 제작의 화룡점정 국사편찬위원회
국정 교과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의 ‘효심’이 지극하고 최순실의 ‘도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정치적 이득에 눈이 먼 정치가들, 임명직 고위공직자들의 맹목적 충성, 영혼 없는 교육부 관료들을 거기에 더해도 뭔가 부족하다. 뉴라이트적 역사인식을 전국민적으로 공유시켜야 한다는 믿음에 근거해, 민주주의나 역사연구자들의 전문성 정도는 힘으로 눌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집필자들의 존재를 덧붙여 생각하면 그나마 국정 교과서 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권력과 돈,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사람이 갖추어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부족한 것은 시간과 전문성이었다. 그것을 채워 준 것이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였다. 국편은 내부 직원 24명과 외부 13명을 동원해 집필자들의 초고를 수정했다. 국편 내부에서는 초고가 너무 형편없어 사실상 다시 썼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국편은 초고를 파기했다. 집필료 지급을 위해서는 필자들의 원고를 근거서류로 붙여야 하는데 이런 행위를 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개입이 문제될 수 있음을 인식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교과서가 공개되고 다양한 반대의견과 오류사항이 지적되고 난 후에도 국편은 그 수정 작업에 직접 관여했다. 2017년 2월 6일 교육부가 역사교육연대회의의 비판에 대응해 발표한 설명 자료는 국편이 작성했고, 자료문의는 편사부장과 역사교과서편수실장에게 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집필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거나, 그들이 답변했다는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상황이 이쯤 되면 국편은 ‘국사 편찬’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집행하는 기구로 환원되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참여사회 2017년 3월호 (통권 243호)

왼쪽부터 논란의 중심이 된 초등학교 사회 국정교과서 실험본, 중학교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 교학사판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국편의 통폐합과 역사관련 기구 재편 필요
국편은 1946년 3월 조선사편수회의 사업과 자료를 수습하여 설립했던 국사관이 1949년 3월 지금의 명칭으로 확대 개편된 기구다. 조선사편수회는 사료편찬과 함께 식민사관에 입각한 통사체계의 수립과 전파를 목적으로 설립된 식민기구였다. 국편은 과거에 대한 반성은 ‘생략’하고 다시 국사편찬 업무를 표방하면서 ‘부활’했다.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에서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통사서술은 매우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에 설립의 필요성도 있었다. 국가차원의 기록보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사료편찬 임무도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그렇지만 식민주의 극복을 위한 역사인식 연구와 확립에 국편의 공로가 거론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승만 정부가 역사교과서 검정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박정희가 역사해석을 독점하기 위해 국정교과서제도를 채택하자 국편은 드디어 ‘본연’의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렇지만, 그 교과서는 주로 반식민주의 교과서라기보다 독재미화 교과서라고 평가된다. 2009년 국정제가 폐지되면서 국편은 사료편찬 업무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박근혜정권에 이르러 그 명칭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다시 권력의 시녀 역할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직접 실록을 편찬했지만, 그것이 권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는 않았다. 기록을 지키기 위해 사관들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왕 또한 그러한 권리와 역사적 임무를 존중했다. 2017년 현실은 정반대다.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은 국가의 역사교육 독점을 진두지휘하고, 사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국편의 연구자들과 위원들은 ‘누군가 해야 할 일’, ‘아이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선의와 명분 뒤에 숨어서 권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집필과 감수·심의에 나섰다.

국편의 존재가 국정교과서 출현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런데도 국정교과서가 폐기 직전의 상황에 몰린 지금도 국편은 사과하거나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다. 국사편찬의 기능을 가진 국가 기관을 두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세계사적 조류에도 맞지 않다. 조선사편수회도 결국 해방 때까지 조선사를 펴내지 않았다. 그 기구를 만들었던 일본조차 국사편찬 기구를 따로 두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국가의 기록을 수집하고 편찬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기록원이 존재하고 있다. 국정 교과서가 다시 등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편의 존폐를 논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편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과 동북아역사재단의 수장을 동원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연루시켰다. 이들 기관에는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며 괴로워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렇지만, 국정을 폐기하기 위해서 이들 기구의 성격과 역할도 다시 짚어보고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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