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3월 2017-03-02   1175

[듣자] “드디어 봄이 왔다!”  비발디가 던지는 메시지 

 

“드디어 봄이 왔다!” 
비발디가 던지는 메시지 

 

글. 이채훈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공저) 등.

 

어김없이 봄이 왔다. 3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에 이어 겨울 내내 광장에서 외쳤던 대통령 탄핵이 마침내 이뤄질 것이다. 다시는 이러한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이 없기를! 모든 비리와 적폐를 걷어내어 마침내 ‘헬조선’을 끝장내고, 다 함께 아끼고 신뢰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기를! 

 

누구나 좋아하는 비발디 <사계> 중 ‘봄’, 아카펠라 노래로 들어보자. ‘아카펠라(ACappella’)는 ‘악단의 반주 없이’란 뜻으로, 사람 목소리만의 앙상블이다. 상쾌한 여성 아카펠라가 흥미로운 기교와 호흡으로 선사하는 ‘봄’, 가사가 없으니 아무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다.

 

비발디 <사계> 중 ‘봄’ 1악장 (노래 카르멜 아카펠라) 이 동영상을 보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Carmel Acappella Vivaldi Spring을 검색하세요.

 

 

비발디의 협주곡은 성악곡인 칸타타에서 태어났다. 17세기, 바이올린을 비롯한 악기들은 사람 목소리를 확대하고 연장하기 위한 표현 수단으로 발전했다. 독창과 합창이 대조를 이루는 칸타타가 널리 연주됐는데, 여기서 독창 대신 독주를, 합창 대신 합주를 넣으면 협주곡과 비슷한 형태가 됐다. 이렇게 보면 아카펠라로 부른 비발디 ‘봄’이 협주곡의 원형에 더 가까우며, 듣는 이에 따라서는 이쪽을 더 좋아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결론이 된다. 이번에는 비발디가 작곡한 그대로 ‘봄’을 들어보자. <화성과 창의의 시도> Op.8에 포함된 12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첫 곡이다. 바이올린 소리 대신 소프라노를, 합주 대목 대신 합창을 상상하며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비발디 <사계> 중 ‘봄’ 1악장 이 음악을 들으시려면? 
유투브에서 Vivaldi‘s Spring 1st Movement를 검색하세요.

 

비발디는 <사계>의 각 계절에 직접 소네트를 써 넣어서 음악의 정취를 설명했다. 봄의 소네트는 이렇다. “드디어 봄이 왔다! 새들은 매우 기뻐하며 즐거운 노래로 인사를 나눈다. 산들바람의 부드러운 숨결에 시냇물은 정답게 속삭이며 흐른다. 하늘은 갑자기 검은 망토로 뒤덮이고 천둥과 번개가 몰려온다. 잠시 후 하늘은 다시 파랗게 개고 새들은 또다시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 첫 주제는 기쁨에 겨워 “드디어 봄이 왔다!”고 외친다. 링크 00:32에서 새들이 하늘 높이 날갯짓하며 기뻐한다. 주제가 다시 봄을 알리고, 링크 1:12에서 산들바람과 시냇물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흘러간다. 봄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는 순간, 1:40부터 폭풍우가 몰아치고 새들이 놀라서 허둥댄다. 애수어린 대목이 길게 펼쳐지지만, 다시 봄의 주제가 등장하고 행복하게 마무리한다. 

 

주제가 되풀이 등장하고, 사이사이에 색다른 에피소드들이 삽입되는 음악 형식을 ‘리토르넬로(ritornello)’라고 한다. 비발디의 ‘봄’ 1악장은 A(봄이 왔다)-B(새들이 노래한다)-A(봄이 왔으니)-C(산들바람과 시냇물이 흐른다)-A(봄이 오나 했더니)-D(폭풍우가 몰아친다)-A(그래도 봄이 왔다), 전체적으로 이런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리토르넬로’는 영어로 ‘리턴(return)’ 즉 ‘돌아온다’는 뜻으로, 변화와 갈등을 뚫고 제 자리로 돌아와야 인간 정신이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진화한 음악 양식이다. 비발디가 확립한 ‘리토르넬로’는 사자성어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우 내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싸고 친박 집단이 관제 시위를 벌이고, 수많은 가짜 언론들이 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봄을 막을 수는 없지 않았는가. 

 

 

참여사회 2017년 3월호 (통권 243호)

‘빨강머리 신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 그가 확립한 ‘리토르넬로’ 형식은 ‘사필귀정’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비발디의 <사계>는 잘 알지만, 정작 비발디라는 작곡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보다 7년 연상으로(바흐는 1685생, 비발디는 1678생), 당시는 바흐보다 훨씬 더 인기 있는 작곡가였다. 바흐는 비발디의 협주곡을 무려 17편이나 베껴 쓰고 편곡하며 작곡 연습을 했다고 하니,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면, 바흐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기 계신 비발디는 음악의 큰아버지죠.” 비발디는 500곡 가까운 협주곡뿐 아니라 150여 곡의 종교음악과 90여 편의 오페라를 쓴 당대의 거장이었다.

 

베네치아에서 활약한 비발디는 별명이 ‘빨강 머리의 신부’로, 미사보다 음악에 미쳐 있었다고 한다. 그는 바이올린의 거장으로 널리 인정받았지만, 미사 집전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비발디는 바이올리니스트로는 만점, 작곡가로는 50점, 신부님으로는 빵점”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는 기관지가 좋지 않아 5년 만에 미사 집전을 포기하고, 고아 소녀들을 보호하는 피에타 자선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비발디의 음악을 세계 최초로 연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자선원의 소녀들이었다.

 

베네치아는 일 년 내내 떠들썩한 축제(carnaval)가 벌어졌는데, 몰래 낳은 아이를 거리에 내버리는 일이 많았다. 피에타 자선원은 그 곳에 수용된 900여 명의 소녀들 중 40명을 엄선하여 합주를 맡겼는데, 비발디는 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고, 이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비교적 쉽게 음악을 썼다. 금남의 집이었던 자선원에서 늘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오자 사람들은 매우 신비롭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불우한 소녀들 중에는 애꾸도 있고, 천연두로 망가진 얼굴도 있었지만 “천사처럼 노래했고”, “어떤 악기도 두려움 없이 척척 연주했으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우아함과 정확성으로 박자를 맞추었다”고 한다. (롤랑 드 캉트 <비발디>, p.19) 

 

드디어 봄이 왔다! 피에타의 소녀들에게는 음악을 연주하러 나가는 시간이야말로 햇살을 보는 해방의 시간이었고, 비발디의 음악이야말로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해 주는 기쁨과 축복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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