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3월 2017-03-02   596

[떠나자] 세상의 끝에서 온 여행자

 

 

크로아티아 바카르

세상의 끝에서 온 여행자

 

 

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다. 2년 동안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온 뒤,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 달에 한 도시』 유럽편·남미편·아시아편, 『없어도 괜찮아』가 있고, 현재 <채널예스>에서 <남녀, 여행사정>이라는 제목으로 부부의 같으면서도 다른 여행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난 아직도 너희들이 우리 집에 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한국은 우리에게 세상의 끝이야. 그렇게 먼 곳에서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 바카르Bakar까지 찾아와 준다니. 어떤 친구들인지 정말 궁금하구나.”

다보르카Davorka가 보내 온 첫 메일에는 ‘세상의 끝’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인구 1,500명이 사는 크로아티아 작은 마을의 은퇴한 선생님이고 한 달 동안 우리가 머물게 될 숙소의 집주인이다. 펜팔친구처럼 연락을 주고받았던 그녀를 만나러 지금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로 떠난다.

 

참여사회 2017년 3월호 (통권 243호)

 

인구 1500명의 작은 마을, 바카르 
크로아티아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주변 유럽 국가보다 저렴한 물가 덕분에 여름이면 몰려드는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스플릿, 흐바르 섬 그리고 두보르브니크로 가고 싶었지만 성수기만 되면 두 배 넘게 뛰어 오르는 숙소와 물가 때문에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인구 1500명이 사는 작은 마을, 바카르를 발견했다. 도서관 하나, 호텔 하나, 우체국 하나를 온 주민이 공유하는 아담한 동네. 하지만 이 마을 앞 바다는 항공모함이 드나들 정도로 깊은 만灣을 가진 천혜의 요새로 크로아티아에서도 손꼽히는 항구다.

 

–  친구 집에 가는데, 그 친구가 10유로면 갈 수 있다고 했어요. 
–  에이. 그 친구 농담이 심하네. 거기까지 그 돈으로 못 가요. 그나저나 그 뻥 센 친구가 누구요?
–  바카르에 사는 다보르카요.
–  어? 다보르카 할머니요? 이것 참, 어쩔 수 없네. 알았어요. 10유로!

 

택시기사는 바카르 해양 고등학교 졸업생인데 다보르카의 사위가 자신의 은사라고 했다. 아, 그래서 택시비를 깎아 준 거구나. 우리도 한 달을 머물면 1,500명의 주민들과 얼굴을 트게 될까? 기사는 바로 숙소로 가지 않고 일부러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맛집을 알려준다. 

 

–  머무는 동안 꼭 가봐요. 내가 학창시절에 자주 들렀던 곳이니까 맛은 보장할 수 있어요. 저기, 다보르카가 서 있네요.

 

택시기사와 연락을 주고받던 그녀는 우리가 도착할 시각에 맞춰 문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기사와 다보르카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누가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고 있는 마을, 바카르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물 다보르카의 집은 3층으로 된 크로아티아 전통 가옥이다. 1층은 손님방, 2층은 다보르카의 집 그리고 3층엔 그녀의 딸 도냐와 사위 보로가 살고 있다. 딸과 사위 모두 현직 교사이고 각각 영어와 역사를 가르친다. 다보르카 역시 은퇴한 지리 선생님이었다. 

 

–  너희들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어. 그런데 내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내 딸 도냐가 영어 선생님이니 그 아이를 불러 올게. 사실 그 동안 주고 받은 연락도 그 아이를 통한 거였어. 호호호.

 

참여사회 2017년 3월호 (통권 243호)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고

 

–  이봐, 중국인 친구!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나흘쯤 지났을까 꼬마 녀석들이 한 명, 두 명씩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더니 오늘은 열 명 이상이 모여 들어 동네를 걸어 다닐 수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동양인은 죄다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말끝마다 ‘치노’를 붙인다.

 

–  반가워. 하지만 난 중국인이 아냐! 한국에서 왔다고.
–  어? 중국 사람 아니야? 미안! 동양인은 다 중국 사람인 줄 알았어. 하하.

 

말썽꾸러기들 중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마테오란 녀석, 이 동네에 사는 열네 살짜리 소년이다. 우리가 공터에 앉아 있으면 동네 꼬마 녀석들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킨다. 우르르 몰려와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며 따라다니는 게 귀찮지 않다. 한국어 몇 마디 배우더니 어렵다며 공부는 집어치우고 함께 바다로 다이빙하러 가자는 귀여운 녀석들이다.

 

–  마테오. 이 동네에서 저렴하고 맛있는 식당 좀 알려 줄래?
–  저기 피자집 가 봤어? 내 친구들이랑 자주 가는 곳 인데 싸고 맛있어. 
–  쌀밥 먹을 수 있는 곳은 없어?
–  아, 리조또 말하는구나. 그건 저 집. 내 소개로 왔다고 말해 주면 잘해 줄 거야.

고작 열네 살짜리 녀석의 입맛을 믿을 수 있을까? 게다가 어린애 소개로 왔다는데 서비스를 잘해 준다는 게 말이 되나? 속는 셈 치고 녀석의 안내에 따라 식당에 들어갔다. 피자가 나오고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우리가 어리다고 마테오를 우습게 봤음을 반성했다. 피자의 본고장 이탈리아보다 맛있었고, 라지 사이즈가 8,000원 정도였으니 저렴하기까지 했다. 화덕에서 구운 피자의 고소함과 쫄깃한 치즈 맛이 환상적이다. 게다가 크로아티아의 레몬 맥주랑 함께 먹으니 느끼함마저 사라진다. 다음 날, 쌀밥이 먹고 싶어 시킨 리조또는 해산물이 가득하고 마늘 향이 진하게 풍겨서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으니 이쯤 되면 마테오의 미각과 안목을 인정해줘야겠다.

 

한 달 동안 이 작은 마을에서 벌어졌던 소소한 사건들이다. 잠시나마 동네의 구성원이 되었고, 꼬마 녀석들과 사람들을 통해 크로아티아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보르카 할머니의 비밀 해변을 공유했고, 도냐의 가족들을 통해 이들의 역사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나흘, 혹은 일주일을 머물렀다면 이런 관계가 가능했을까? 여행과 일상의 경계의 시간인 한 달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평화로운 바카르에서 그들과 함께한 따뜻한 추억을 가슴에 담는다.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 바카르에서의 한 달. 다시 만날 그 때까지 나의 바카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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