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3월 2017-03-02   1138

[만남] 자서 – 박상규 회원

 

자서(自序)

박상규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영미 미디어홍보팀 간사

보신탕집을 하던 아버지 덕에 학교 도시락 반찬으로 개고기를 싸 갔다는 남자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개를 천 마리는 먹었을 거라는 그의 너스레 앞에서 내가 떠올린 건 이제 갓 4개월 된 우리 집 강아지였다. 초보견주인 난 본능적으로 그를 경계했다. 그러나 그가 사랑한다는 시구 하나에 그 긴장은 서서히 녹아내린다. 김중식의 시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나온다는 그 문장은 이렇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이 시구대로라면, 개 천 마리를 먹은 그와 개와 살아가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참여사회 2017년 3월호 (통권 243호)

사대문 안을 떠나 변방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개천마리’라는 닉네임을 쓴다는 이 범상치 않은 남자의 이력부터 살펴보자.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글을 깨우치고, 고등학교는 내신 14등급으로 졸업했다. 대학 성적은 평점 2.55. 졸업 후엔 한동안 삼성전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하루 3천 대의 모니터를 생산했고 그 이후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던 기자가 되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이력서를 냈다. 면접장에서 주먹으로 책상을 꽝하고 내려친 후, 그렇게 덜컥 기자가 되더니 그로부터 10년 후엔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 왜 사표를?

“제가 수원대를 졸업했는데 기자생활을 하며 만난 동료기자나 취재원들 대부분이 저보다 학벌이 훨씬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체에 한번 걸러진 사람들 같다고나 할까. 그런 그들을 보면서 ‘공부도 잘 했던 사람들이 대체 왜 이러고 살지?’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죠. 근데 늘 그런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결국 나 또한 그들에게 동화될 수밖에 없어요. 그들의 목소리만 듣게 되고 그들한테 밥을 얻어먹고. 기자를 그만 둔 후 제가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제가 밥을 사줘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나한테 냉면 한 그릇조차 사 줄 수 없는 그들이야말로 정작 기자의 도움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죠.”

내게 밥을 사주는 사람과 내가 밥을 사야하는 사람. 이 단순한 이분법에서 그의 인생 한 자락이 내 손에 잡혔다. 중심에서 빗겨난 삶을 오래 살았던 이들은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어디쯤 그어지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또 하나는 이쪽 사람들, 세상의 주류들 얘기가 전혀 재밌지 않았어요. 내가 굳이 대변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진리인 냥 퍼뜨리는 작업에 회의가 들기도 했구요. 기자들도 진실을 파헤치는 게 아니라 지면을 메우는 방식으로만 훈련이 되어 있어요. 여러 가지로 공허했죠.”

사대문 안을 떠나 변방으로 가고 싶었다. 소속 매체가 아니라 기사로 말하고 싶었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회사를, 주류들의 세상을 떠나겠다고 작심했으나 막상 퇴사 한 달 전부턴 두려움에 잠이 깨곤 했다. 많건 적건 꼬박꼬박 들어오는, 유일한 수입이 없어진다는 건 공포였다.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행복해요. 월급을 많이 받았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생계 문제도 그다지 힘들진 않아요. 어쨌든 퇴사를 한건 최근 10년 내 제가 한 것 중 가장 잘한 선택인 거 같아요.”

그가 환하게 웃는다. 소박하지만 진실로 행복해 보이는 웃음이다. 2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지리산으로 내려가던 날도 아마 그는 저런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그냥 지리산이 좋았어요. 빈집을 보증금 없이 연 200만 원에 빌렸는데 1년 전만 해도 지리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죠. 거기 있으면 정말 고요해요.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고. 산책하고, 책 보고, 밥 먹고, 멍하니 있다가 자고. 공부는 많이 안 하고 그저 멍 때리는 시간들이 많죠.”

 

재심 : 배제된 자들의 이야기
품을 팔아 생계를 꾸리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지리산으로 내려가셨던 분이 박준영 변호사는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잘못 엮인 거죠, 하하하. 퇴사 직전에 가정폭력 관련 기획을 하며 남편 죽인 여자들을 취재한 적이 있거든요. 그 기사를 보고 박준영 변호사가 연락을 해 왔어요. 그분이 재심전문변호사잖아요. 근데 재심 자체도 중요하지만 관련된 이야기들을 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누군가 달라붙어서 그 이야기를 전달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거죠.” 

얼핏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끼리 갖는 매우 두텁고 친밀한 관계)처럼도 보이는 이 두 남자의 만남은 분명 ‘사건’이었다. 지난 2년 간 그들은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을 포함 3개의 사건을 세상에 알려 재심을 이끌어냈고 그 중 두 사건은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란 제목 하에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진행한 스토리펀딩은 후원액 5억 6,797만 8,000원으로 스토리펀딩 역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두 사람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엮어 『지연된 정의』라는 책을 펴냈고 올 2월에는 ‘재심’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난 2년간 그의 인생은 이렇게 모두 ‘사건’이 되었다. 

이 일을 하시면서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많이 느꼈을 거 같아요.
“한국의 헌법이나 사법 제도는 꽤 괜찮은 수준이에요. 시스템이 아니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자에 대한 차별이 더 문제죠. 피의자가 사회적 약자면 판검사들이 조사도 재판도 대충해요. 근데 이게 판사, 검사, 경찰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들도 가진 거 없고 못 배운 사람들을 혐오하고 함부로 대하니까,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인 거죠.”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 모멸감. 사회학자 김찬호는 『모멸감』이란 책에서 이를 ‘정서적인 원자폭탄’에 비유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 그러나 모멸을 주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기준으로 열등한 집단을 범주화하고 멸시하는 통념이나 문화의 위력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많은 경우 모멸은 다른 모멸로 이어지며 자괴감과 수치심을 확대 재생산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분노는 자기나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된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 책의 한 구절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존중과 자존의 문화는 여럿이 만드는 것이지만, 그 출발과 귀결의 지점은 각자의 내면에 있다.’ 

 

참여사회 2017년 3월호 (통권 243호)

여기, 우리들의 셜록
“재심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었어요.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중퇴에 엄마 아빠도 없이 살다 15살 때 살인 누명을 썼어요. 감옥에서 3년 넘게 지내던 중 진범이 잡혔죠. 그동안 어떻게 감옥살이를 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이 소년의 대답이 충격적이에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살만하다고…. 이들은 왜 자신들의 억울함을 말 못하나, 왜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강변하지 않나, 저도 첨엔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근데 계속 만나다 보니까 알겠더군요. 사회적 약자들은 조리 있게 말할 줄도 모르고 감정만 앞세우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을 못 해요. 또 우리 사회가 약자들한테 제대로 발언권을 준적도 없구요. 이 사회에서 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잘난 사람들, 즉 공부 잘 하는 애, 싸움 잘 하는 애, 교장, 교사, 높은 사람들, 가진 자들이죠. 그리고 그들이 진실을 말해도 세상은 듣지 않죠.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누명을 썼던 그 아이가 그러더군요. 자기가 안 했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그땐 아무도 듣지 않았다고….”

사건의 주인공들은 사건 당시, 어리거나 지적 장애가 있었고, 많이 배우지 못했으며, 가난했다. 그리하여 이 벌거벗은 생명들은 너무도 쉽게 성 밖으로 버려졌다. 성 밖의 외침은 너무 작았고, 너무 멀리 있었다. 
“한 사건을 해결하는 게 정의이고, 그들이 누명을 벗을 때 너무 행복하고, 근데 슬픈 게 뭐냐면요….”

인터뷰 내내 활기 넘치던 그가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올라오는 눈물과 감정을 가다듬느라 잔뜩 목에 힘을 주는 그는 보며, 난 언제나 그랬듯이 도망치고 싶었다.
“책을 내고 북콘서트를 했어요. 끝나고 스텝들이랑 술을 마시는데 삼례 나라슈퍼 친구 중 한 명한테 문자가 왔어요. 제대로 못보고 다음날 아침, 하필 전복죽을 먹고 있다가 문자를 봤죠. ‘기자님 저 너무 추워요. 동상 걸릴 것 같아요. 보일러 나오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이렇게 온 거예요. 역설적인 게 그들을 보도한 나는 박수 받고 술 얻어먹고 그러는데, 그들은 아직도 그러고 사는 거예요. 방 얻고 한 달 치 월세를 내라고 400만 원을 보냈어요.”

억울한 사건 하나를 해결하는 게 정의라고 외치던 그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진다. 정의가 필요한 건 감옥 밖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 줌의 정의라도 더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스토리펀딩의 후원금으로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만들었다.
“기자와 언론은 말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위해 일해야 돼요. ‘셜록’은 그걸 하고 싶은 거죠. 진실은 혼자 밝혀지는 게 아니고 기자가 찾아내야 하는 거거든요.”

‘셜록’의 CEO로서 그의 꿈은 초봉을 웬만한 방송사 수준으로 주는 것 그리고 사장과 막내기자의 연봉 차이가 크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근데 월급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그가 후배들에게 내렸다는 지침이다.
‘돈 벌어오라는 소리 안 하겠다. 돈은 내가 벌어온다. 클릭 수만 노리는 의미 없는 기사 쓰지 말라. 훗날 쪽팔려진다. 괜한 보고 하지 말라. 우린 국정원이 아니다. 회사 위해 일하지 말고 좋은 저널리스트가 되도록 노력하자.’

평소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을 사랑하는 나지만, 오늘은 박상규의 셜록이 훨씬 더 섹시하다. 비록 파이프를 즐기지도 베이커가 221b에 살지도 않지만 내가 사랑하는, 우리들의 셜록은 아직도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
“장의사 일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우리 모두 마지막엔 누군가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야 되는데 그 세계에 대해 쓴 사람이 아직 없더라구요. 또 감옥에도 1년쯤 가보고 싶어요. 그 안에서 이어지는 삶과 일상에 대해서도 글로 쓰고 싶어요.” 

그가 글쟁이가 된 건, 운명이다. 

 

자서(自序, 자기가 엮거나 지은 책에 서문을 씀. 또는 그 서문​)
그와 헤어져 집에 오자마자 김중식의 시집 『황금빛 모서리』부터 찾았다. 20년의 두께로 쌓인 먼지가 손을 더럽히는 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책장을 넘겼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은 힘 약한 사물들, 그 흔적들을 더듬다 시집의 맨 앞장에 시인이 스스로 적어 넣은 자서를 오래도록 읽었다.
 
내가 욕한 것들과 나는 얼마나 닮아 있으며 또한 닮으려고 안달했는지 들켜버리게 되었으니. 그래도 한때는 최선을 다해 방황했다.     – 1993년 봄, 김중식

 

10년 전 그가 기자생활이란 걸 할 때, 하루는 와인을 실컷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다음날, 양치질을 할 때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도 그의 몸에선 와인이 쏟아져 나왔다. 닮으려고 안달한 적은 없으나 어느새 자신이 욕한 것들을 닮아가고 있는 삶, 그것이 그는 두려웠다. 그의 사직서가 시인의 자서를 닮은 건 그 때문이었다. 

‘저는 사대문 안에는 없는,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 사대문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사대문 안과 사대문 밖, 밥을 사주는 자와 밥을 얻어먹는 자, 더 배운 놈과 덜 배운 놈. 세상의 모든 경계와 사람들 사이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금. 그 날카로운 모서리을 찾아가는, 최선을 다해 방황하는 한 남자의 고단한 발끝. 그 앞에 나는 짧게 2017년 봄, 이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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