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7-08월 2018-07-02   1425

[듣자] 2008년 평양, 뉴욕 필하모닉의 <아리랑>

2008년 평양,
뉴욕 필하모닉의 <아리랑>

 

마젤

2008년 뉴욕 필하모닉 공연을 지휘한 거장, 로린 마젤 

 

한반도에 평화가 꽃필 것인가. 멀지만 가야 할 평화의 길에 음악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2008년 2월 26일 열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평양 공연은 북미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게 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그로부터 10년, 드디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정권의 향배(向背)에 흔들리지 않는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눈앞에 두게 됐다. 음악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위대한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평양에 울려 퍼진 북미 양국의 국가 

10년 전, 거장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은 북한 <애국가>와 미국 <성조기Star Spangled Banner>를 첫 곡으로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시작했다. 뉴욕필이 연주하는 북한의 <애국가>를 듣는 미국인들은, 북한 사람들도 자기들처럼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일 뿐, 머리에 뿔 난 도깨비가 아니라는 걸 느꼈을 것이다. 미국의 <성조기>를 듣는 북한 사람들은 더 복잡한 상념이 머리를 맴돌았을 것이다. ‘철천지원수’, ‘미제 승냥이들’이라 욕하며 오랜 세월 적개심을 불태운 미국의 국가가 평양 한복판에 울려 퍼지다니…. 이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해야 할 상대임을 인정해야지,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북한 국가 <애국가>와 미국 국가 <성조기>

지휘 로린 마젤     연주 뉴욕 필하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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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책임 얘기는 생산적이지 않으니 논외로 하자. 미국에 대한 북한의 적대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전쟁 기간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북한의 도시 82개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세균전과 민간인 학살도 얘기하지 말자. 휴전이 성립된 뒤 북한은 폐허 위에 나라를 다시 세웠지만, 미국의 핵 위협과 군사훈련에 늘 긴장해야 했고, 미국 주도의 경제봉쇄 때문에 벼랑 끝에서 생존을 이어가야 했다.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의 평화운동가 램지 클라크 선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는 ‘경제 봉쇄 자체가 학살’이라는 뜻밖의 대답으로 피디를 놀라게 했다. 1990년대 중반,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은 북한 위정자들에게 1차 책임이 있지만, 미국의 경제봉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구소련과 동구권의 지원이 끊어지자 속수무책으로 벌어진 참극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경제봉쇄란 것 자체가 전쟁 행위의 연장이다. 총알과 폭탄으로 죽이는 대신 보급을 차단하여 상대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19세기 유럽, 나폴레옹은 영국을 공격하는 게 쉽지 않자 대륙 봉쇄로 영국 경제를 고사시키려 했다.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군이 800일 넘게 레닌그라드를 포위 공격하자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봉쇄에 맞서 수십 년 동안 체제를 유지해 온 북한 사람들이 겪은 고통은 어느 정도였을지, 남쪽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2008 뉴욕 필하모닉 평양 공연 앵콜곡 <아리랑> 

작곡 최성환     연주 뉴욕 필하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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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필 평양 공연의 감동을 다시 한번 

북한의 핵 위협을 제거하려면 북미 간 적대관계를 청산해야 하며, 해묵은 적대관계가 청산된다면 북한도 더 이상 핵과 미사일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이’ 이뤄져야 하듯 북미 평화체제 또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이’ 이뤄져야 하며, 여기에는 전쟁 행위의 연장인 경제 제재를 완전 철폐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2008년 뉴욕필 평양 공연, 북미 양국의 청중들은 서로의 국가를 존중하며 경청했고, 아낌없이 박수를 나누었다. 이러한 감동이 일상 속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항구적인 평화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제 남과 북의 교류와 화합을 생각할 때다. 모든 분야의 교류가 확대되겠지만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10여 년 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고려호텔 옆 샤브샤브집에서 차이코프스키를 들은 기억이 있다. 책에서 ‘북한은 쇼팽을 진보적인 작곡가로 높이 평가한다’는 구절을 읽기도 했다. 남북 합동음악회를 전하는 뉴스에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소리를 얼핏 듣고 반가워한 적도 있다. 북측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음악을 느끼고 즐기고 위로받는, 우리와 똑같이 피와 살로 된 인간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북미 회담이 성사되어 역사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 남쪽의 일부 수구 세력들은 남북 갈등을 일으키고 이를 지렛대로 북미 갈등을 조장하려고 든다. 역사를 거스르는 이러한 움직임을 음악의 힘으로 진정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뉴욕 필하모닉이 2008년 평양에서 연주한 앵콜곡은 북한의 공훈예술가*북한의 예술인들에게 수여되는 국가 영예 칭호 최성환이 작곡한 <아리랑>이었다. 남이든 북이든 보수든 진보든 우리 겨레라면 누구나 하나임을 느끼게 해 주는 <아리랑>, 평화의 길을 가는 지금 다 함께 귀 기울여 듣기 좋은 곡 아닐까.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도 훌륭했지만, 남북 교향악단이 함께 연주하는 <아리랑>도 곧 듣게 되기 바란다.  

 

 


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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