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4월 2020-04-02   916

[듣자] 대중음악의 할 일

대중음악의
할 일

 

재난에 무기력한 음악과 예술, 그러나 

답답한 날들이다. 분통 터지는 날들이다. 끔찍한 날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총선, ‘n번방’ 사건으로 이어지는 2020년 3월은 참혹하다. 한 가지 사건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세상에 세 가지 사건이 동시에 밀려오니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밖으로 나가기 두렵고, 뉴스를 보기도 힘들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버틴다는 이야기가 소셜미디어에 자주 올라오지만, 현실 재난 중인 우리에게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재난 드라마는 심심할 정도이다.

 

이럴 때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있지만, 아니, 음악은 세상을 못 바꾼다. 음악이 세상을 바꾼 적은 없다. 사람들의 행동이 세상을 바꾸었고, 그때 함께한 음악이 있을 뿐이다. 음악도 사람의 일이지만, 음악과 예술에 과한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망자 수가 중국을 넘어선 이탈리아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노래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는데,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그 정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일, 서로를 더 뜨겁게 응원할 수 있는 일 정도이다.

 

하지만 모일 수 없고, 만나서도 안 되는 현실에서 음악인들 역시 자신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사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음악보다 밥이 더 필요하고, 돈이 더 필요하다. 지금 음악이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자신의 무력함을 확인하는 일일지 모른다. 죽었다 깨어나도 정치와 경제가 할 수 있는 일만큼은 해낼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일일지 모른다. 음악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해명하지 못한다. 이런 일이 안 생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 굶는 이들의 배를 채우지 못하고, ‘n번방’ 26만 명 이상의 가해자들에게 처절한 고통을 주지도 못한다.

 

다만 음악은 아프고 두렵고 힘들고 화난 이들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다. 혼자만 아프고 두렵고 힘들고 화나지 않았다고 알려줄 수 있다. 나의 마음도 너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이지 않던가. 우리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믿음이 싹트고, 그 믿음 위에서 우리는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지 않던가. 한편 인간은 또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존재이고, 선거 승리를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비열한 존재이며, 전염의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분노하고, 슬퍼하고, 걱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모두가 인간이다.


참여사회 2020년 4월호

코로나19로 모든 예술공연이 취소되는 가운데, MBC <놀면 뭐하니?>가 ‘방구석콘서트’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MBC

 

인간을 충실히 기록하는 게 대중음악의 역할

그렇다면 음악은 그동안 이러한 인간의 실체를 충분히 담아왔을까. 예쁘거나 로맨틱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아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낱낱이 기록했을까. 그리하여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을까. 더 깊이 위로하고 더 많이 손을 잡게 되었을까. 사실 즉시 즐거움을 주지 않는 예술작품, 자신이 정의롭거나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고 알려주는 예술작품, 보고 나서 더 생각해야 하는 예술작품은 대중에게 불편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자랑할 수 있는 상품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 이제 예술가들은 좀처럼 불편함을 주려 하지 않는다. 네가 가해자이거나 동조자, 혹은 특권층이라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수용자에게 숙제를 주지 않으려 한다. 그래야 사랑받기 때문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의 태풍이 몰아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수수 꺾인 거리의 폐허처럼 음악이 남았으면 좋겠다. 금세 말끔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을 바라보며 재난을 기억하듯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2020년 3월을 잊지 않게 하는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버려진 사람들에 대해, 비열했던 사람들에 대해, 잔인했던 사람들에 대해 쉽게 동정하고 단죄하는 노래가 아니라,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두려웠는지 말해주는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꿋꿋이 삶을 지키고 정의의 편에 섰던 이들을 기억하게 하는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꽃이 피면 금세 겨울을 잊는 우리는 재난이 지나고 나면 오늘을 즐기기 바쁠 것이다. 당연히 누군가는 꽃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2020년 3월에 주저앉은 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노래를 만들어보려 애썼으면 좋겠다. 사람의 마음은 금세 아물지 않고, 금세 나아지지 않으니까. 곱씹고 곱씹어야 우리는 조금이나마 나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민중의소리’와 ‘재즈피플’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 연출뿐만 아니라 정책연구 등 음악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 하기』,『음악편애』등을 썼다. 감동받은 음악만큼 감동 주는 글을 쓰려고 궁리 중이다. 취미는 맛있는 ‘빵 먹기’. 

 

※ <듣자> 서정민갑의 ‘대중음악 편’ 연재를 마칩니다. 2017년 1월호부터 2020년 4월호까지 총 17편의 한국 대중음악가와 대중음악 이야기를 다뤄주신 서정민갑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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