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7월 2008-06-02   430

2008 참여연대_한국의 인권상황, 유엔에 서다

한국의 인권상황, 유엔에 서다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PR) 참관기

전은경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 flyek@pspd.org
 

 

“실례합니다. 저는 한국 NGO에서 일하고 있는 전은경입니다.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본부 18번 회의장. 과테말라에 대한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이하 UPR)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한국의 인권상황을 간략히 정리한 문서를 들고 그동안 NGO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해준 국가를 중심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 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밖으로 나가 만나자는 외교관도 있었고, 회의가 끝난 후 로비에서 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시간이 없으니 준비해온 자료를 읽어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해당국가가 제일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를 목차에서 찍어주며, 이 부분은 꼭 읽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짧은 설명도 덧붙였다. 그렇게 제네바 UPR 회의에 참석한 NGO 참가단은 이틀 동안 20여 개가 넘는 국가의 외교관들을 만났고, 그보다 더 많은 국가에게 직접 혹은 이메일로 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렸다.

 

제네바에 간 까닭

나를 비롯한 7명의 인권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5월 4일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했다.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을 심의하기 위한 UPR 회의가 5월 7일에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UPR은 지난 2006년 유엔인권위원회가 유엔총회 직속기구인 인권이사회로 격상되면서 새롭게 도입된 제도로, 192개 모든 유엔회원국들의 전반적인 인권의무 이행상황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4년에 한 번)과 평가를 통해 인권상황의 실질적인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이다. UPR은 정부, 국가인권기구, NGO 등이 제출한 보고서와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서 당사국에 대한 조약기구의 권고사항과 유엔공식문건을 취합해 정리한 문서를 기반으로 해당 국가의 인권상황을 심의하고, 최종의견을 채택하는 과정을 거친다. UPR을 위해 참여연대와 민변, 인권운동사랑방 등 37개 인권시민사회단체도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했고,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OHCHR에 제출했었다.

이번에 NGO 참가단이 제네바로 간 까닭은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가 한국의 실제 인권상황과 어떻게 다른지, 새 정부 출범 이후 심각한 후퇴를 맞고 있는 인권침해 양상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에 어떠한 권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제사회에 집중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심각한 후퇴양상 보이는 한국의 인권

그렇다면 유엔인권이사회의 초대이사국이자 ‘아시아의 선도적인 인권 옹호국’이라 자평하는 한국의 인권상황은 어떠할까. 한국의 인권은 민주화의 진전 및 관련 법제와 그 적용상의 일부 개선에도 불구하고 내용상으로 심각한 후퇴를 맞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노동자의 50%(870만 명) 이상을 차지하는 등 그 수가 급증하고 있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많은 국민들이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박탈과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 이뿐인가. 헌법이 집회, 시위에 대한 허가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22개에 달하는 신고 항목을 만들어, 실제로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만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집회, 시위장소를 경찰버스로 에워싸서 일반인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여 의사표출과 전달이라는 집회, 시위의 권리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통신 등의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다른 법령에 의해 그 외연이 사실상 확장되고 있고, 공론형성의 장인 인터넷은 선거시 선거와 관련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법적으로 철저하게 금지시키고 있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등 취약집단들도 여전히 제도적,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도 상당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갇혀 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체포, 구금, 강제퇴거가 폭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국의 인권상황은 급속히 후퇴하고 있다. 정부는 사형제의 존폐여부에 대해서는 사형제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강조하는 입법안을 내놓고 있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비정규직의 급증과 관련해서도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파견허용 업종을 대폭 확대하는 방침을 내놓고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은 더욱 악화될 상황에 놓였다. 그뿐만 아니라 법무부는 경찰의 시위대 검거 등 정당한 공무집행에 대한 과감한 면책을 보장해 적극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할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기획재정부 역시 ‘2009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통해 복지예산을 대폭 축소하고, 영리의료법인도입, 민간보험활성화 정책 등 의료산업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국민건강권은 심각히 위협받고 있다.

 

 

사형제,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하라

이러한 한국사회의 핵심 인권사안들은 UPR 심의과정에서 각 국의 질의와 권고를 통해 재확인되었다. 상당수의 국가들은 사형제의 조속한 폐지를 권고하였다. 이주노조 간부에 대한 표적단속 등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심각히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듯 이주노동자 인권문제에 대한 각국의 질의와 권고도 쏟아졌다. 등록, 미등록에 관계없이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되고, 그들의 인권은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세 차례나 한국정부의 규약 위반을 결정한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북한, 미국, 영국이 한 목소리로 개정 내지 폐지를 권고하였다. 이밖에도 집회와 결사의 자유 보장,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여성폭력 및 가정폭력, 비정규직 문제 등 대부분의 한국의 인권상황이 다뤄졌다. 특히 한국정부에 대한 심의 직전 미팅을 가졌던 캐나다의 경우 NGO 참가단이 제기한 주민등록제도와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으로 인한 프라이버시권 침해를 즉시 수용해 이에 대한 권고를 내놓기도 하였다.

 

 

UPR을 활용하자

이번 UPR 과정에서 정부는 한국의 인권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채 다양한 미사여구를 동원해 작성한 보고서와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또한 한 번 잘 넘기면 되는 국제적 행사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가 역력했다. 사실 3시간이라는 한정된 논의시간과 이를 통한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사항이 국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각 국가의 핵심적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을 유보한 채 칭찬을 주고받거나 원론적 수준의 권고를 되풀이하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PR은 정기적으로 국내의 인권상황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정부뿐만이 아니라 인권시민사회단체가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UPR을 인권증진을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이 과정에서 인권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것이다.

유엔에서 각국의 외교관들을 만나 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리고, 그들을 설득하고, 밤새 정리한 문건을 언론에 알리는 작업들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국제사회 혹은 유엔이 한국 정부에게 어떠한 권고와 우려를 표하게 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정부의 반인권적 정책을 감시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치열히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쉽고도 어려운 말 ‘인권’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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