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8월 2008-07-28   822

김재명의 평화 이야기: 유대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김재명의 평화 이야기 13

                       유대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글·사진 김재명<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kimsphoto@hanmail.net

지난 6월 이 땅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일이 일어났다. 서울경찰청 기동대 소속 이모(22) 상경이 “촛불집회 진압에 투입되기보다는 차라리 육군으로 복무하고 싶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한 일이다. “내 양심을 거슬러, 전투경찰 본연의 임무 외에 다른 정치적 상황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담은 이런 청구는 이즈음 전·의경들의 고통스런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투경찰대설치법>에 따르면, 전경의 임무는 대간첩작전 수행으로 제한돼 있다. 의무경찰(의경)의 임무도 경찰의 치안업무를 돕는 것이다. 이를 보더라도 전·의경이 시위현장에 투입되어야 할 법률적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를 막기 위해 투입된다는 것은 시민들을 ‘적’으로 본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모 상경의 육군 복무전환 청구는 바로 그런 점을 비판한 것으로 이해된다.


평화주의는 곧 반전(反戰)주의

“내 양심에 비춰 촛불시위를 막는 전경 복무를 못 하겠다”는 목소리는 곧 평화주의와 양심적 병역거부의 이슈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내 양심에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름 아닌 평화주의에 바탕을 둔 행동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이름난 철학교수 제니 타이히만은 ‘평화주의’를 한 마디로 ‘반전주의’라 규정했다. 평화주의자들은 폭력 사용을 반대하지만, 특히 정치적인 갈등에서 비롯된 폭력과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평화주의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의 생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은 물론이고 우리 인간의 타고난 권리와 자유를 억누르는 국가폭력은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평화주의는 ‘공권력’이란 이름 아래 국가폭력이 마구 휘둘러질 때 그 국가폭력의 앞잡이가 되길 거부하고 무기(전경은 최루탄 발사기, 병사는 총)를 내려놓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지구촌 평화주의자들에게 ‘중동의 깡패국가’라고 욕을 먹는 이스라엘을 보자. 1967년 6일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을 이긴 이스라엘은 지난 40년 동안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요르단강 서쪽 지역)를 점령, 군사통치를 펴왔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본 헌병들의 군홧발에 마구 차였듯이,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군사통치에 온갖 굴욕을 겪어야 했다. 한반도로 넘어온 일본 정착민들에게 논밭을 빼앗기고 만주로 떠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대로 살던 땅을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빼앗기고 피눈물을 흘리곤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피억압자’로 만드는 주체는 이스라엘 정권이지만, 점령지 곳곳에 세워진 검문소를 비롯한 현장의 억압자는 이스라엘 병사들이다. 유혈충돌이 길어지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스라엘에서 큰 이슈로 떠올랐다. 이스라엘 평화운동단체 가운데 하나인 ‘병역거부자 연대 네트워크’ 웹사이트(www.refusersolidarity.net)에 따르면, 2000~2005년 사이에 현역과 예비역을 합쳐 약 1,700명이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지만, 이스라엘은 1995년 병역거부권이 법적으로 인정된 나라다. 법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병역거부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당사자의 설명을 듣고 그 이유가 맞다고 인정되면 병역을면제 받는다. 문제는 병역거부권이 인정되는 사례가 10%에 못 미친다는 사실이다. 병역거부 신청자 10명 가운데 1명만이 병역을 면제받는 셈이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양심적 병역거부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째는 징집 거부다. 이스라엘에서는 만 18세를 넘으면 남자나 여자 가릴 것 없이 군대엔 가야 한다. 그러나 젊은 평화주의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감옥엘 간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징역형이 한국처럼 2~3년씩 길지는 않다. 7~8개월 복역을 하면 그걸로 끝이다.

두 번째 형태의 병역거부는 병역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1967년 6일전쟁 뒤 이스라엘이 점령중인 지역(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아울러 서안지구 안에 자리 잡은 유대인정착촌)에서 근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근무하면 점령군으로서 총과 탱크로 현지사람들을 억누르는 쪽으로 움직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서 군사행동 안 하겠다”

병역거부는 대부분 개인적이지만, 때때로 집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2003년 9월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들 27명(현역 9명, 예비역 18명)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을 폭격하지 못하겠다”며 집단항명에 나선 적도 있다. 이 사건으로 현역 9명이 ‘불명예제대’를 했다. 2003년 12월엔 이스라엘 특공대소속 13명의 예비역(병사 10명, 장교 3명)이 이스라엘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점령지 복무를 거부했다. 이 편지에는 “우리는 수백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을 탄압하는 데 더 이상 가담하지 않겠으며, 유대인정착촌에서도 근무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병역거부 움직임이 나올 때마다 이스라엘의 보수 언론매체들은 ‘비겁자’ 또는 ‘반역자’ ‘배신자’ 소릴 쏟아 부어왔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겉으론 조용한 편이다. 그들을 감옥에 보내기보다는 근무지를 바꿔 조용히 마무리하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이스라엘 국방부가 평화주의들에게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생겨날 나라 안팎의 비판적 목소리들을 미리 잠재우려는 계산에서다.

이에 비해 우리 한국정부는 너무 답답하게 굳은 모습이다. 첫째, 촛불시위 막기보다는 국방에 힘쓰겠다는 한 젊은이의 요청을 선뜻 받아주지 못하고, 둘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주려고 지난 정부가 짜놓았던 일정(2008년 말까지 관련 병역법 개정 마치고, 2009년 초에 시행)조차 기약 없이 뒤로 미루려 하고 있다. 국민여론이 수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이제라도 수렴 과정을 거치면 될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에 비춰, 양심적 병역거부 대응에 관한 한 이스라엘 정부가 한국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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