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5월 2008-04-04   427

수업일기_아이들이 닫힌 마음을 열어갈 수 있도록

아이들이 닫힌 마음을 열어갈 수 있도록

배성호 서울당산초등학교 교사 wise0414@naver.com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교실에는 쓸쓸함이 깃든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때론 버겁기도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없으면 교실은 휑해진다. 사실 교실은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야 생기를 띤다. 어른들은 활력 넘치는 아이들을 으레 밝은 이미지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이들은 특유의 낙천성으로 저마다 지니고 있는 마음의 짐을 풀어간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하루는 ‘장래 희망’이야기를 하는데 한 아이가 뜬금없이 부잣집 여자를 만나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 아이는 옆 반인데도 넉살이 좋아 우리 반에 와서 스스럼없이 이야기에 동참한 것이다. 뚱딴지같은 이야기에 곁에 있는 아이들과 나 역시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이야기는 그저 웃고 지나갈만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 친구는 축구를 곧잘해서 축구부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학교도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학교에서 축구부를 하려면 다달이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결국 경제 형편이 어려운 이 아이는 부모의 설득과 스스로의 결정으로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사실 그런 경험을 하고나서도 아이는 언제나처럼 장난치며 줄곧 웃으며 학교샐활을 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도 좋아하는 축구를 예전처럼 즐겨하지 않았다. 그저 장난만 칠 뿐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는 몇 친구와도 조금씩 거리를 두며 나름의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참 편치 못했다. 아이가 지닌 꿈이 단순히 경제 여건 때문에 접어야한다는 것이 안타깝고 그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씁쓸함을 넘어 가슴 한 편을 묵직하게 누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자신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꿈을 스스로 접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선진국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허전한 마음으로 그 친구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졸업한 학생이 찾아왔다. 이 친구는 공부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매우 집중했었다. 그로 인해 부모님이 여러모로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이 친구가 당시 나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역사 내용을 게임으로 만들어서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들이 참여한 역사 발표 대회에 나가 당당히 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반 아이들이 자체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서 참여했던 대회에서 이 친구는 그 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당시 대회에 참여했던 중·고등학생들은 물론 심사위원들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큰 상을 받고 돌아온 날에도 아이는 부모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아이가 대회에 나갔다는 그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리 찾아온 사춘기와 함께 나름의 성과를 얻었으니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아이를 보면서 새삼 당황스러우면서도 대견하기도 했다.

이 친구는 내게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자신을 이해하고 격려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참 부끄러웠다. 사실 그 친구에게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가 되라고 했지만 나 역시 걱정도 제법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친구는 나의 격려에 힘을 받아 지금도 자기 나름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나를 찾아왔을 때도 직접 만든 게임을 가져왔다. 게임도 제대로 못하는 선생님에게 가르쳐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친구를 보며 오히려 내가 기운이 났다. 아이들 저마다가 지닌 꿈이 현실적 상황에 맞춰 재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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