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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8년 07월
  • 2008.06.30
  • 218




잘 하고 있고, 앞으로 더 잘해야 할

국민참여재판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kypark@pspd.org

지난 해 초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미국 영화나 소설에서 쉽게 봐온 배심원에 의한 재판이 우리나라에서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국민의 사법참여의 일환으로 배심제 같은 것을 촉구해왔다.
6월 중순까지 약 20건의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실시된 과정을 보면 국민의 참여수준이나 재판내용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좀더 보완하고 다듬어야 할 일도 조금씩 눈에 띄고 있다. 5년간의 시행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참여재판제도는 다시 다듬어질 예정이다. 그 때까지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

이 글은 지난 6월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고 난 소감문이다.     

이 재판에서 다룬 사건은 김 모 피고인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웃을 망치로 때려 살인미수로 기소된 사건이다.

검사는 베스트, 그렇다면 변호사는?

이 날 재판에서는 검사(2명의 검사 중 수사검사가 아닌 공판담당 검사)의 노련함이 인상적이었다. 이 공판담당 검사는 배심원석 앞 1미터 내외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거나 배심원과 증인 사이의 거리를 적절히 왔다갔다하면서 주장을 펼쳤다. 배심원들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목소리도  올렸다내렸다 했다.

무엇보다도 자료를 손에 들고 읽는 적이 거의 없었다. 자기가 할 말을 외우고 나와서 하니 적절한 손동작과 몸동작이 가능했다. 배심원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아 버렸을 것 같았다.

이에 비해 미안하지만 변호인은 그러지 못했다. 변호인도 지금까지 봤던 국민참여재판의 다른 변호인들에 비해 뒤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재판의 공판담당 검사에 비해 부족한 것은 분명했다.

배심원들을 비롯해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변호인의 몸에 부착한 마이크 장치가 편치 못했던 것 같다. 마이크의 일부분을 잡고 말해야만 하다보니 몸동작과 손동작이 아무래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배심원들에게 설명한 자료를 서둘러 만드느라, 사소하지만 빠뜨리지 않아야 했을 사항을 빠뜨려 당황하기도 했다.

변호사협회는 뭘 하고 있나

왜 이렇게 검사와 변호사간의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적응력의 차이가 나타났을까?

지금 국민참여재판은 거의 국선전담 변호사가 담당하고 있다. 엄청난 자원과 경험, 재정을 보유하고 있는 검찰의 지원을 든든히 받고 있는 검사와 ‘나홀로 변론 준비’를 하는 국선전담 변호사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개인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부수적으로 국선 변호사건을 맡던 과거의 국선변호사에 비해 지금의 ‘국선전담변호사’들의 역할은 아주 많이 나아졌음은 분명하다).

국민참여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재판에 참여하는 법관과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지금까지 했던 재판방식과는 다른 재판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과 교육이 필수적이다.

실제 법원과 검찰은 법관과 검사들을 국민참여재판에 적응하도록 많이 교육하고 훈련시키고 있다. 필요하면 우리의 국민참여재판의 원형인 미국 배심재판을 배우도록 해외연수까지 보낼 정도이다.

그런데 변호사들은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형로펌이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국민참여재판을 포기해야 하나?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원해주어야 할까? 바로 대한변호사협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호사협회는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여 안타깝다.

말로만 그친 ‘무죄추정의 원칙’

이 날 재판을 보면서 다시 눈에 띈 것은 피고인에게 판사가 질문을 할 때 피고인을 일으켜세운다는 점이다. 물론 일반 재판에서도 피고인은 일어서서 재판장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참여재판이기에 더 문제 있는 방식이다.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말을 시키는 기회는 기본적으로 네 번이다. 재판 시작단계에서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을 알려주고 신분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이 첫 번째다. 다음은 검사와 변호인이 공소사실과 입증계획, 변론계획을 설명한 뒤, 피고인에게 공소사실 인정여부를 묻는 ‘피고인의 모두(冒頭) 진술’이다. 세 번째는 다른 증인들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질문(신문)이 모두 끝난 뒤에 하는 ‘피고인 신문’이다. 마지막은 검사의 최후 진술과 구형, 변호인의 최후 변론에 이어서 하는 피고인의 ‘최후 의견 진술’이다.

그런데 이 네 번의 기회 중에 피고인은 세 번째 ‘피고인 신문’ 때만 증인석의 의자에 앉아 답변하고, 나머지 세 번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한다. 본인이 스스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법관이 일으켜세운다.

이 날 재판도 마찬가지였다. 앉은 채로 답한다고 해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누가 답변하는 것인지 배심원들이 몰라보는 것도 아니다.

배심원들이 피고인에 대해 갖는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피고인들에게는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수의’를 입지 말고 보통의 옷, 즉 ‘사복(私服)’을 입을 것을 권하고 있다. 죄수복을 보는 순간, 범죄자나 죄인이라는 인상을 배심원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자리에 일어서서 질문에 답하는 것은 피고인의 심리를 위축시킨다. 몸이 편한 상태에서 말할 때와 목소리뿐만 아니라 말의 내용도 미세하게 차이날 수 있다.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은 일으켜세우지 않는다. 피고인만 일으켜세우는 것은 피고인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다룬다는 것을 은연중에 그러나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법정에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말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재판의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피고인은 무죄, 즉 범죄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법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온전하게 실현되고 있지 않다. 일반 시민이 배심원들이 참여하는 재판이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더욱 잘 지켜져야 할 재판에서조차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날 재판도 일반 시민 여덟 분과 함께 방청했다.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행사에 참여해준 분들이었다. 그리고 이 날 재판을 어떤 고등학교 학생 십여 명도 방청했다. 법에 대해 관심 있는 학교동아리 소속이라고 했다. 선생님께는 공결 허락까지 받아서 방청하러 왔다고 했다. 그들도 몇 년 뒤에는 배심원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된다. 앞으로 훌륭한 배심원이 될 학생들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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