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5월 2008-04-02   657

참여연대는 지금_굿모닝 세미나: 저자와의 만남, 최재천 교수

 

 

김칫독 파묻을 때는

3월 <굿모닝세미나>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지식의 통섭 : 학문의 경계를 넘다”를 세미나 한 후, 저자인 최재천 교수(사회생물학자,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를 초청하여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 인간사회가 자연이라는 거울에 비춰지니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또 다른 면이 속속 드러나는데…….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당시, 그곳’의 문제를 풀기 위해 사람들은 ‘당시, 그곳’에 골몰한다. 그리고 풀리지 않으면, 자신의 에너지를 한 곳으로 덜 쏟아 부었다고 자책한다. 그러나 최재천 교수는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경계를 넘나들라고. 다시 말해서 땅을 팔 때 넓게 파라는 것이다. 김칫독을 묻으러 땅을 파본 사람은 경험적으로 알리라. 김칫독을 넣기 위해 김칫독 지름만큼의 너비만의 땅을 파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 넓게 파야지 김칫독이 쏙 들어갈 만한 깊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참여연대를 방문한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굿모닝세미나>멤버들과 함께 ‘통섭’의 개념을 쉽고도 재미나게 쏟아낸다.

정리_교육홍보팀 홍성희 간사

 

굿모닝세미나 멤버(이하 굿) : ‘통섭’(通涉)이라는 말이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통섭’의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최재천 교수(이하 최) : 원래 ‘통섭’이라는 말은 에드워드 윌슨의 책,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번역하면서 고안된 용어입니다. 저도 이 단어를 한국말로 어떻게 번역할까 참 곤욕스러워했습니다. 혹자는 영어 그래도 ‘컨실리언스’라고 쓰자고 제안도 했었죠. 많이 공부하면서 고민하다가 ‘통섭’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전 ‘이거구나’ 싶었는데, 이 용어가 이미 원효대사가 썼던 말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죠. 제가 만들어냈다고 발표했으면 망신당할 뻔 했어요(웃음).

 

굿 :‘통섭’의 의미가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명확히 다가오지 않습니다.

 

최 :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문제든 어느 한 분야의 지식으로 명쾌하게 풀리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문제들은 다각도로 검토하고 살펴야 되죠. 지식의 경계를 넘어 다른 분야를 아우르면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는 학자들이 학문의 경계를 넘을 때 여권을 검사합니다. 다른 영역의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 전공이 뭐지? 전공도 아니면서 무슨 얘기를 해?’라고 하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요. 잘못 이야기 하면 그 때 지적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다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배워놓고 다른 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굿 : 학문 분야들의 경계가 분명하고 그 사이에 높은 벽이 생긴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최 : 지금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심연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넓게 파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한 가지 관점을 가지고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다산의 지식경영법”의 저자 있죠?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인데요, 그 분 연구실 한번 가보세요. 여러 분야의 목록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 분의 책이 최근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는 것도 바로 ‘넓게 파야 심연에 도달한다’는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굿 : 넓게 파는 것이 벅차게 느껴집니다.

 

최 : 물론입니다. 우리가 축적해놓은 지식은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럿이 함께 넓게 파야죠.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일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주제에 대해 누군가의 발표를 듣고 토론을 나눕니다. 3년을 그렇게 했으니까 2백 개의 주제에 대해서 논했던 셈이죠. 와인에 대해서, 노래에 대해서… 주제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거 엄청난 일입니다. 자기의 전공분야 이외의 것에 대해서 넘나드는 것. 그 힘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여기 <굿모닝세미나>처럼 갖가지 주제를 다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 계속 퍼져야 합니다.

 

굿 : 안티페미니즘 사이트에 들어가본적이 있어요. 타도 페미니스트 이름 중에 교수님 이름도 있는데요(웃음). 남성이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요?

 

최 :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눈여겨보면 어떨까요? 다른 관점에서 보는 순간 둘과의 관계는 많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저는 가부장적 질서가 강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버지와 같이 한국남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훌륭한 저의 아내 때문에 이렇게 바뀔 수 있었죠. 가끔씩 결혼한 여성한테 사람들이 이렇게 묻잖아요? ‘남편이 집안일 잘 도와줍니까?’ 잘못된 거죠. 그게 왜 도와주는 거예요? 당연히 남성도 해야 되는 일인데. ‘남편이 집안일 잘하나요?’ 이렇게 물어야 되죠. 저도 처음엔 설거지를 할 때는 빨리 끝내고 싶고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일이라고 생각한 이후부터 설거지 기술이 날로 향상되었죠. 이렇게 남성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도 진정으로 여성의 입장이 될 수는 없죠.

 

굿 : 혹자는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정해진다고도 하고, 혹자는 교육적, 환경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 : 인간은 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행문화를 누릴 수 없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유전자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난 유전자 결정론자이지만,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유전자가 환경 속에서 다듬어진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대화시간을 마쳐야 하는데, 끊임없이 나오는 질문을 끊을 수가 없다. 사회자가 끝내려는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은 0.1초의 틈도 주지 않고 다음 질문을 꺼내버린다. 여기 이 작은 모임<굿모닝세미나>에서 통섭의 씨앗이 내린 듯하다. 우리 세대는 어려워 보이지만, 이 씨앗들이 퍼지고 싹을 틔어 우리 다음 세대는 동서고금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학문의 결실을 맺으리라.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고, 저자와 함께 대화하는 <굿모닝세미나>는 5월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립니다. 4월에는 ‘또 하나의 나’를 찾아나가는 특별한 프로젝트 고혜경의 “성찰과 치유를 위한 꿈분석”이 시작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참여사회 뒷면 컬러광고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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