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0월 2008-09-01   501

특집_검찰권에 대한 시민 통제장치 마련해야

 


검찰권에 대한 시민 통제장치 마련해야


이호중
서강대 법대 교수 hojoong@sogang.ac.kr

검찰은 수사권과 공소제기권 및 불기소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을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사회적 사건의 ‘공식적 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건의 생산자로서 검찰

검사는 어떤 사건에 대하여 수사를 할 것인가 여부, 수사를 한다면 어느 방향에서 수사할 것이고, 그 사건의 실체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사건들만 보더라도, 대통령부인의 사촌언니가 개입된 공천비리사건을 단순 사기사건으로 포장하는 것이나, 쇠고기수입반대 촛불시위 과정에서 네티즌들이 벌인 조중동 광고중단운동을 소비자운동이 아니라 사기업에 대한 업무방해행위로 규정짓는 것 등을 보면, 검찰권력은 바로 자본과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 특정한 방향과 시각에서 사회적 사건을 규정짓는 것, 그럼으로써 시민사회가 형성하는 건전한 법담론을 왜곡해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검찰권력의 핵심일 게다. 형사사건에 관한 한 검찰은 법담론의 공식적인 생산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검찰은 통제받지 않는 수사권과 공소제기권을 이용하여 사회적 사건을 ‘정의(define)’하는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검찰의 이러한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종철사건을 살인이 아니라 고문치사죄로 형상화하는 것, 노동분쟁이나 시민단체의 집회·시위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시키는 것 등이 검찰이 지닌 권력의 살아 있는 모습이다. 기업의 구조적인 비리사건에 대해서도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높게 쳐주는 담론을 형성하는 것, 그리고 반대로 국가경제를 망친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하여 엄격한 법적 잣대를 형성하는 것도 검찰의 권력작용이다.

이처럼 법담론과 법적용에서의 검찰권력작용은 정치권력 및 자본권력과 구조적인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방향에서 시민사회의 법담론을 왜곡하고 시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단면들을 보이지 않게 규격화하고 통제하는 권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관료적 권력화

노무현 정부시절 검찰의 대선자금수사,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등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검찰이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거듭나서 ‘정권의 시녀’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떼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품은 적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사실 과거의 군사독재시설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도입되었다. 검찰총장임기제의 도입(1988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제도의 도입(2003년), 검찰인사위원회의 심의기구화 및 검사적격심사위원회의 도입(2004년), 검사동일체원칙의 완화(2004년) 등등. 게다가 정치권력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사회 전반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검찰이 정치권력의 외압에서 벗어나 비교적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도 많이 높아진 터였다.

하지만 역시 환상이었다. 지난 6월 법무부장관까지 나서서 조중동 광고중단운동을 벌인 네티즌들을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죄질이 나쁜 범죄’로 규정짓고 엄하게 수사하여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검찰은 이에 화답하여 기민하게 움직였다. 서울중앙지검은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을 꾸려 며칠 전 광고중단운동을 벌인 네티즌 24명을 사법처리하였다.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배임혐의 수사가 현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 및 언론장악의 과정에서 연출된 사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하여 도입된 여러 제도적 장치들은 검찰로 하여금 정치적 편향성을 스스로 극복하도록 검찰조직에 힘을 보태 주자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개혁이었다.

정치적 독립성과 관련해서는, 지난 2005년 10월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에 대하여 당시 법무부장관의 불구속수사지휘로 인해 발생한 법무부장관과 검찰조직의 대립사태를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권은 <검찰청법> 제8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당시 검찰에서는 법무부장관이 그 동안 개별적인 사건에 대하여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정치인인 법무부장관이 개별적인 사건에 대하여 지휘한다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검찰총장이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총장직을 사퇴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검사들이 검찰총장에게 기대한 것은 다름 아닌 검찰조직에 대한 수호자의 역할이다.

과거 시절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검찰총장이라는 상징적 지위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 동안 검찰총장의 임기제와 인사청문회제도를 도입한 것은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굳건한 지휘체계를 정립하는 것이 검찰을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이라는 명제는 검찰에 대한 외적 통제를 거부하는 식으로 검찰 내부 구성원들의 폐쇄적인 집단방어논리로 변질되었다. 검찰의 중립성이 마치 검찰의 권한행사에 대하여 외부의 어떠한 통제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왜곡되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는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의 명제 뒤에서 사실상 검찰조직이 하나의 강고한 관료권력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권의 독립을 추구하는 것은 필요한 개혁과제이기는 하지만, 검찰의 관료적 폐쇄성이 타파되지 않는 한 그 개혁방향은 검찰이 제어되지 않는 권력기관으로 검찰권을 사유화하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폐쇄적이고 엘리트주의에 함몰된 검찰조직에서는 설사 정치적 중립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그 실체는 매우 허약할 수밖에 없음을 작금의 사태가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권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명제는 검찰 관료가 장악한 검찰 권력이 지배계급 내 독자적인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는 상황으로 귀결되고 있다. 여기에서 검찰의 법적용 및 법실현 과정은 철저하게 국민의 시선과 통제로부터 차단되면서 검찰의 폐쇄적인 조직논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시민사회의 법담론과 괴리된 실정법만능의 사고, 지배권력에 우호적인 사건처리관행 등이 그 안에서 자라난다.

검찰, 거대 관료기관 되어 자본 권력과 유착

검찰권의 ‘관료적 독립’이 정치권력이나 지배계급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전혀 없다. 검찰조직을 장악한 고위관료들은 강력한 검찰권을 무기로 하여 정치세력이나 재벌 등 자본 권력과 더욱 은밀하게 거래하고 야합하는 관계로 발전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2005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소위 ‘X파일’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국정원의 불법도청테이프 중 일부 공개된 내용 중에는 삼성재벌과 검찰 간부들 간의 조직적인 커넥션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의 명제 뒤에서 폐쇄적이면서 강력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 하나의 거대한 권력기관으로 성장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검찰이 정치권력에 종속된 과거의 오명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정치권력 및 자본과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거래하고 유착하게 되는 현상으로 발전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삼성과 같은 거대재벌이 장학금이나 떡값의 명목으로 치밀한 작업을 통해 검찰조직을 ‘관리’하는 사태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대변해준다.

이제 검찰의 중립성 내지 검찰권 독립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라는 과제가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로서 궁극적 이념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권력이 그러하듯이, 검찰권 역시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시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검찰의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한 적나라한 폭력과 다를 바가 없다. 검찰은 국민에 의한 선출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검찰 권력의 정당성은 정치적 중립성을 매개로 하여 사건 당사자와 시민들의 승인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근 들어 다시 불거진 정치검찰의 문제를 오로지 검찰권행사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의 문제로 귀결시키는 것은 맹목적이며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점은 검찰조직이 시민사회의 적절한 견제와 민주주의적 통제를 받지 아니한 채로 하나의 거대한 독자적인 권력기관으로 변모해왔다는 점이며, 오늘날 검찰이 국민적 신뢰기반과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 진짜 배경은 바로 검찰의 폐쇄적 권력기관화의 경향에 있다.  
     
    

   

국민 요구 수렴해 국민과 소통되는 차원에서 감시되고 통제돼야

이제 검찰개혁은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라는 차원을 넘어, 검찰의 민주화라는 지향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검찰의 민주화’ 내지 ‘민주적 검찰개혁’이란 국민의 직접적인 참여와 통제를 통해 검찰권 행사에 대하여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검찰의 수사권과 공소권의 남용을 억제하고 그것을 민주적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프로세스로 구축하는 것, 이 길을 통해서만 우리는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민주적 검찰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독립이라는 명제도 엄밀히 말하면 검찰권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가 확립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

이 시대 검찰개혁의 과제는 검찰권에 대한 국민의 참여적 감시와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진정한 검찰개혁의 과제는 시민사회의 법적용의 정당성에 대한 요구가 적절하게 수용되고 검찰의 권한행사가 시민사회의 참여에 의하여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제어되도록 하는 데에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만 검찰권의 사유화, 그로 인한 검찰 권력과 정치권력 및 자본과의 유착관계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만 진정한 의미에서 검찰권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의 재량을 행사함에 있어서 시민사회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시민과 소통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검찰권행사의 공정성여부는 궁극에는 공소제기처분이건 불기소처분이건 간에 그것이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때 비로소 검찰권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다. 따라서 검찰권에 대한 시민통제는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이며, 이를 제도화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개혁방향은 검찰의 의사결정과 처분이 국민들의 요구를 수렴하여 국민들과 소통하는 차원에서 감시되고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통제장치로는 재정신청제도가 존재하지만, 이 제도는 오직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통제제도로서만 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검찰권에 대한 포괄적인 민주적 통제를 실현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검찰의 권한은 수사의 개시와 종료, 체포와 구속여부의 결정(구속영장의 청구 또는 구속취소 등), 공소제기여부의 결정, 공소취소의 결정 등 매우 광범위하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은 국민의 민주적 통제가 필요한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다른 검찰권 행사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도 이에 못지않은 것이다. 검사가 권력형 범죄사건의 혐의를 포착하고도 수사를 의도적으로 기피하거나 지연시키는 경우라든가, 수사를 하더라도 수사의 방향을 왜곡하여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시키는 문제, 체포와 구속을 남발하는 문제, 불기소처분을 하는 것이 합리적임에도 악의적으로 공소를 제기하거나 공소취소가 마땅한 사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공소를 취소하지 않는 경우 등도 검찰권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검찰권에 대하여 효과적인 통제장치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관료·권력 버리고 시민사회와의 소통 창구 찾아야

검사의 기소권을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에 관하여 외국의 예를 보면, 각 국가의 문화나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시민들이 참여하는 통제장치를 발전시켜왔다.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 속에 국민들의 형사사건에 대한 기소권을 보장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 시민에 의한 기소가 경찰의 기소재량을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재판과정에 국민들이 참여하는 배심제도와 함께 기소과정에 국민들의 참여적 결정을 제도화한 대배심(Grand Jury System)제도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제2차 대전 패전 이후 미군정당국에 의하여 도입된 검찰심사회 제도가 검찰권에 대한 포괄적인 통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각급 검찰청별로(지청 포함) 대응하여 순수하게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독립기구로서 검찰의 불기소처분 및 공소제기처분의 적정성에 대한 심사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검찰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통제제도는 그리 낯선 제도가 아니다. 지난 사법개혁의 과정에서 우리는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였다. 시민의 눈높이와 시민의 건전한 정의관념에 맞추어 사법정의를 실현하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국민의 사법참여를 사법개혁의 중요한 개혁과제로 설정하였음에도 그 실현방안에 있어서는 오로지 국민의 재판참여, 즉 배심제 내지 참심제의 도입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권에 대해서도 국민의 사법참여라는 문제의식이 도입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참여방식은 일본의 검찰심사회 제도와 유사하게, 검찰청별로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독립기구로 구성하는 방식을 제안해본다. 시민참여기구는 전적으로 일반 시민들로 구성되어야 하며, 참여시민들의 진지한 고민과 토론을 통하여 검찰권 행사의 전반에 대하여 그 당부를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검찰의 부당한 불기소처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부당한 공소제기처분, 늑장수사와 편파수사, 구속의 남용 등의 사항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국민의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민참여에 의한 검찰권 통제기구는 재판과정에 국민들이 배심으로 참여하는 배심제도와 함께 국민의 사법참여의 중요한 양대 축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민주적 검찰을 상상해본다. 검찰개혁의 핵심적 화두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권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관료적 폐쇄성을 타파하고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검찰개혁의 방향이라는 생각이다.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구축되지 않은 법치주의는 환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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