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1월 2008-10-06   1929

특집_한국경제의 오늘과내일: 미국 금융자본자본주의 종말의 서막이 시작되다

미국 금융자본주의 종말의

서막이 시작되다

조혜경(사)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chohk02@empal.com

월가도 무릎 꿇은 미 역사상 최대 구제금융

2008년 9월 19일은 미국역사의 기록에 남을 만큼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것이다. 이날 미국정부는 3조4,000억 달러의 머니마켓펀드에 대해 백지수표를 발행하고, 이어 역사상 최대 규모인 7,000억 달러 구제 금융을 선언했다. 금융회사의 부실자산을 정부가 넘겨받기로 했다. 모기지 관련 채권을 비롯해 자동차 대출채권, 신용카드 대출채권, 학자금 대출채권 등 모든 종류의 부실자산을 정부가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또한 미국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미국 땅에 둥지를 틀고 있는 외국계 금융회사들까지도 구제대상에 포함시키는 전례가 없는 결정이 내려졌다. 전면적인 구제금융 이외에 초토화된 금융시장의 파국을 막을 다른 방법이 없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미국정부가 가만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여러 차례 긴급 유동성을 공급했으며, 파산직전의 금융회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구제 금융을 제공했다. 심지어 리먼 브라더스를 파산시킨 것도 미국정부의 위기해법 전술의 하나였다. 순간순간 나름대로 해법을 내놓으면서 매번 미국정부는 시장이 곧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여유와 자신감을 보였다.

이 때 사방팔방으로 뛰면서 위기의 해결사로 나선 사람은 부시 대통령도 아니고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아닌 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이다. 그는 월가에서 반평생을 보내며 잔뼈가 굵은, 월가를 한 눈에 훤히 꿰고 있는 베테랑 금융맨이다. 그런 전력을 가진 폴슨 장관의 월가에 대한 믿음과 기대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월가의 역사는 위기의 역사였고, 4~5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위기의 고비 고비를 넘으면서 더 크게, 그리고 더 강하게 스스로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위기로 단련된 월가였기에 이번 위기도 거뜬히 넘길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버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전망은 현실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시장은 완전히 통제 불가능의 아노미 상태로 빠져들었고, 결국 월가는 스스로의 침몰을 막을 능력이 없음이 만천하에 입증되었다.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고, 메릴린치는 죽기 직전 투항을 선택했다. 마지막 남은 월가의 대표주자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도 자리보전이 힘든 위험에 봉착했고, 결국 상업은행과 손을 잡기로 했다. 월가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대마진으로 돈을 얼마 벌지 못하고, 세련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구시대적 금융회사라며 늘 월가의 비웃음을 받아왔던 상업은행에게 월가의 간판급 주자들이 살려달라는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면서 지난 30여 년간 전 세계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었던 월가에 대한 믿음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평소 정치적, 이념적, 이론적 입장의 차이로 서로 물고 뜯으며 싸워왔던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면적 구제금융이 불가피하다는 한목소리가 나온다. 이제 공은 시장에서 정부로 넘어갔고, 금융위기의 해결도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미국 금융위기는 어디서 왔는가

월가는 미국 자본주의의 두뇌라고 불린다. 그런 월가가 쓰러지면 미국 자본주의 전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는 부시대통령을 필두로 한 금융관료들의 말이 순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이번 위기가 단순히 월가에게 치욕스러운 패배를 안겨준 것뿐만이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를 위태롭게까지 할 정도의 파괴력을 갖는다니,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온 것일까? 혹자는 월가의 탐욕과 공포가 파멸을 불렀다고 하고, 혹자는 갚은 능력도 없는 신용불량자들에게도 마구잡이 대출을 한 금융기관과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금융당국을 탓한다. 누구는 금융규제 완화라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일차적 책임을 묻고, 또 다른 쪽에서는 전문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금융파생상품과 불투명한 거래시장 구조가 위기의 뇌관이었다고 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 모든 것이 복잡하게 뒤엉켜 이번 위기의 뿌리를 만들었다. 이 뿌리에서부터 이번 위기를 치유하는 해법에 대해 고민해보자.      
 
시장만능 뒤에 숨어 파국 부른 돈 잔치    

실제로 월가로 대표되는 금융회사는 너무나 탐욕스러웠다. 2007년 미국 금융회사 최고경영진의 평균연봉이 보통 노동자 평균 연수입의 270배가 넘었다. 70년대에는 50배가 좀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월가를 덜 탐욕적으로 만들려면 어느 수준으로 최고경영진의 연봉을 내려야 할까? 그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그 기준을 정해야 할까? 그리고 탐욕으로 가득한 곳이 이 세상에 어디 월가뿐일까?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인간 자체가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닌가? 탐욕을 줄이기 위해서 진정 필요한 것은 인간개조작업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다. 어쨌거나 월가의 탐욕을 억제하기 위해 스톡옵션을 비롯한 기존 최고경영진 보상체계에 대해서 금융당국이 제재를 가할 전망이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까지 정신없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을 비난하고,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는 금융당국을 탓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 논리를 잘못 풀면 신용불량자들에게는 절대로 대출을 해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금융의 본래기능이다. 가장 절실하게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일 텐데 이들에게 금융접근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금융기관이 할일을 안 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금융회사가 안전성과 건전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것도 기형적이고 왜곡된 금융현실을 만든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서울 시내에 중국집보다 대부업체 수가 많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합법적 고리대금업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담보가 없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길이 없고, 담보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은 대부업체뿐이다. 이런 비정상적 금융현실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신자유주의의 규제완화 강박증과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믿음이 금융시장을 비정상적으로 키우고 이를 통해 금융회사에게 마음껏 돈을 벌 수 있는 판을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다. 비대해진 금융시장의 중앙에 월가가 있다. 월가는 모든 것을 유통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금융상품으로 만들어내고, 투자위험을 줄이기 위해 파생, 파파생 상품을 만들어내는 창조와 혁신의 본산지이다. 그렇게 월가에서 태어난 첨단 금융파생상품들은 금융당국의 손길을 피해 전 세계 금융회사들 사이에서 거래되며 시장을 부풀렸고, 부풀려진 만큼 천문학적인 수익도 뒤따랐다. 작년 미국의 민간영역에서 발생한 수익 가운데 금융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40%가 넘는다. 민간고용의 5%에 불과한 금융 산업이지만 수익 면에서는 미국 자본주의를 이끄는 동력인 것이다.


주택 거품 꺼지면서 금융시장 순식간에 붕괴
   

미국의 금융 감독당국은 월가의 돈 잔치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부에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부동산 시장의 주택가격이든 금융시장의 모기지 관련 채권가격이든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합리적이고, 거품인지 아닌지 또한 시장만이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만약 거품이라면 시장의 조정이 뒤따를 것이고, 그때서야 거품이었다는 사후적 판단만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시장의 조정과정은 엄청난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오로지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따라서 감독당국이 간섭할 수도, 간섭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러한 원칙에서 움직이는 금융 감독당국은 금융시장의 판을 키워 큰돈을 버는 월가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다. 하지만 그린스펀이 얘기했듯이 거품은 언젠가 꺼지게 마련이고, 고통스런 시장의 자기조정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언젠가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던 시장의 정상적인 자기조정 과정이 바로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 위기의 시작이다. 다만 그 결과가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뿐이다.

파국의 시작은 주택가격 거품이 서서히 꺼지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모든 파생상품의 배후에는 기초자산이 있다.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은 주택담보 대출이다. 주택시장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기초자산보다 몇 배나 부풀려진 파생상품 거래시장은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모두가 팔겠다고 아우성인데 사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올 초 프레디맥과 페니매, 그리고 또 다른 준정부 모기지은행이 전격적으로 나서서 공백을 메우며 얼마간 시장이 유지되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세는 서브프라임 주택 대출뿐 아니라 신용등급이 높은 주택대출 그리고 상업용 부동산시장에까지 번져나갔다. 이 와중에 모기지 관련 채권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덩치가 커진 프레디맥과 페니매도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모기지 관련 채권시장 붕괴의 불똥은 모기지 관련 채권부도에 대한 보험파생상품인 신용부도스왑 시장으로 번져나갔고, 이 시장의 심장부에 있던 AIG를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머니마켓펀드 시장에도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리먼 파산에 직격탄을 맞아 머니마켓펀드에도 손실이 발생했고, 안전자산 중에서도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머니마켓펀드마저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모기지와 연관된 복잡한 파생상품 시장이 하루아침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복마전이 되어버렸고, 공황상태에 빠진 투자자들은 미 국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위기상황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피난처는 역시 국채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망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결과 3개월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1954년 통계가 시작된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는 기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자유주의의 최선봉장으로 자처했던 부시행정부이지만 눈앞에서 붕괴하는 금융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고개 숙인 신자유주의와 고개 드는 케인지언
 

이제 미국정부가 이번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게 되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고 있어, 세계 각국에서도 미국정부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다. 이번 금융위기는 지난 몇 년 동안 세계경제를 둘러싼 담론의 중심부에 있었던 디커플링(decoupling, 한 나라 또는 몇 나라의 경제가 가까운 다른 국가나 세계경제의 흐름과 달리 독자적인 경제흐름을 보이는 현상) 테제의 시험대이기도 했다. 세계경제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국가로 서서히 이전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 주장의 결론적 함의는 미국경제의 몰락에 너무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경제가 망가져도 신흥시장국가에서 높은 성장세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경제는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이든 인도이든 신흥시장국가에 걸었던 희망이 너무 지나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미국정부의 해법은 당장의 위기해결뿐 아니라 앞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향로를 결정짓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지금 미국정부에게는 미래의 월가, 더 나아가 미래의 금융 산업의 새판 짜기를 고민할 시간이 없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 당장의 급선무는 멈추어버린 금융시장이 본연의 기능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다. 미래의 새판 짜기 작업은 차기 미국 정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요즘 고개를 못 드는 것은 사실이다. 자성의 목소리도 간간히 들린다. 그 틈을 타 그동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케인즈주의자들이 대반격을 시작했다. 이념의 전면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마치 70년대의 혼란의 시기가 재현되는 듯한 분위기이다.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인지는 마지막에 정치가 결정한다. 그리고 정치의 선택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빚으로 지탱한 황금기, 이제 돈 잔치는 빚잔치로

앞으로 미국이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은 지난 30여 년간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청산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구제금융 방안이 어떻게 처리되는가와 상관없이 대대적인 빚 청산의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황금기를 이끌어간 동력은 늘어나는 부채였다. 그 선봉에 금융산업이 있었다. 1980년 GDP의 21%에 불과했던 금융산업의 부채는 2000년 83%로, 2007년에는 116%로 급증했다. 작년 미국의 총부채는 GDP의 346%였는데, 그 가운데 금융산업의 부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뒤를 잇고 있는 가계부채는 GDP의 100%, 나머지는 비금융산업과 정부의 부채가 차지한다. 부채와 자산은 동전의 양면이라, 늘어나는 부채의 이면에는 늘어나는 자산이 있다. 한마디로 미국 금융산업의 황금기는 자기들만의 돈 잔치였던 것이다. 그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채를 줄여야만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부채를 줄이면 자산도 줄어든다. 금융산업이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금융산업뿐만 아니라 미국의 소비자들도 열심히 빚을 줄여나가야만 한다. 위기를 대비해 저축이 필요하다는, 미국 국민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사고가 서서히 퍼지고 있다. 민간소비 감소로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미국경제는 활력을 잃게 될 것이다.  미국경제가 빚 갚기에 열중하는 동안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저축이 모여 다시 생산적 투자로 회귀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미국경제 전체가 고통을 겪게 되고, 그 여파가 세계경제에 그대로 이전될 것이다. 이 기간을 단축시킬 여력을 가진 것은 정부뿐이다.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민간영역의 투자와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투자와 소비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케인즈주의가 다시 대세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에게도 남은 선택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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