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1월 2008-11-11   1556

기획_잃어버린 국민의 기본권 되찾기



잃어버린 국민의 기본권 되찾기


야간집회 위헌법률심판제청의 의미



이상훈
변호사·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실행위원 photolaw@naver.com


2008년 10월 9일 서울중앙지법 제7단독(판사 박재영)은 피고인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에 대한 재판에서, 일출 전 또는 일몰 후의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제10조에 대하여 위헌 여부에 관한 심판을 제청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피고인이 법원에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하고, 법원이 위헌심판제청을 하였다’라는 말은 발음하기도 어려워서, 비법률가들로서는 ‘간장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이다’라는 문장처럼 들릴 수 있다. 그렇지만 좋은 일이라는 반가움에서 더 나아가, 기왕이면 이번 기회에 법률적 의미까지 알면 더 좋을 듯하다. 특히 이번 결정은 참여연대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진걸 팀장에 대한 사건이고, 이번 결정이 나오기까지의 진행경과와 그 사회적 의미도 주목할 점이 많아, 참여연대 회원들로서는 여러모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




평화 시위 고민해온 활동가를 구속기소


2008년 6월 25일 안진걸 팀장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과 초등학생까지 연행하는 경찰의 대응에 항의하다가 서울 경복궁역 앞에서 강제로 연행되어 구속 기소되었다. 시민단체 활동가이면서 여러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는 외래교수인 안진걸 팀장에 대한 구속기소는 답답한 현 분위기를 일부 반영한다. 안진걸 팀장은 구속되기 불과 1년 전인 2007년 <시민과 세계>라는 잡지에 ‘소통과 연대의 집회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과거 집회 시위 문화를 반성하고 향후 집회 시위 문화를 어떻게 정착시켜야 하는지에 관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이 논문에서 안 팀장은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는 때로는 시끄럽고 불편하겠지만 국민들의 집회 시위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하며, 주최 측도 불필요한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시위는 피하고, 전경들과의 충돌은 최대한 피해야 하며, 소음, 깃발, 거친 언어 등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동안 다른 국민들과 소통 및 연대하고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국가는 구속기소로 화답하였다. 

안진걸 팀장을 위한 변호인단은 김남근, 필자, 권정순, 박주민 등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공동으로 활동하는 변호사들로 꾸려졌고, 그 중 집시법 제10조의 위헌 주장은 주로 박주민 변호사가 담당하였다. 2008년 7월 24일 1차 공판이, 8월 11일 2차 공판이 진행되었고, 2차 공판 후 그날 저녁 재판부는 안 팀장에 대한 보석을 허가하였다. 그리고 2008년 10월 9일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하기로 결정하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선고를 연기하였다.




민언련조선일보의 사법부 길들이기


안진걸 팀장에 대한 재판은 순조롭지 않았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담당 재판부의 발언 중 일부를 떼어내어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하였고, 급기야 안 팀장에 대한 보석 결정 후인 8월 14일 조선일보는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는 제목의 사설로 담당 판사를 인신공격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이 판사는 자신이 그 동안 촛불시위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거추장스러운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그 근거로 담당 판사의 발언을 제시하였지만, 이는 전형적인 문맥 자르기에 의한 왜곡보도였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박 판사는 (촛불시위의) 목적이 아름답고 숭고하다” 등 촛불시위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하였지만, 사실은 ‘목적이 아름답고 숭고하다고 하더라도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집회를 할 수 없었느냐’는 질문 중 앞부분만을 잘라 인용하는 식이었다. 

8월 23일 KBS ‘미디어포커스’에서는, 당시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았던 다른 방송사 기자의 증언까지 소개하면서 조선일보의 왜곡보도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2008년 9월 1일 법률신문에서는 홍기태 부장판사가 “영국과 같이 법원과 재판에 대한 비난을 법정모독죄로 엄하게 다스리는 나라였다면, 객관적인 보도와 비평을 넘어서서 특정 재판이나 특정 법관에 대한 공격의 형태를 띠는 사설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지적하며 조선일보의 지나친 보도행태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였다.

그러나 검찰은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비판에 부담을 느껴서인지 안 팀장에 대한 법원의 보석허가결정에 대하여 이례적으로 항고를 제기하였고 (통상 보석허가결정에 대하여는 검찰이 항고를 하지 않음), 항고장에는 조선일보의 위 사설기사가 첨부되었다. 그러나 2008년 9월 8일 항소부는 검찰의 위 항고를 기각하였다.


집시법 10조는 집회 사전허가 금지 위반

광우병 촛불문화제는 많을 때는 5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다종다양한 개인, 단체, 네티즌 모임 등이 다양한 방식과 내용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행사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위법일까. 그 이유는 현행 집시법 제10조에서는 야간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제23조에서는 이를 위반한 자를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시법 제10조(옥외 집회와 시위의 금지시간)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서장은 질서유지를 위하여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 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


혹자는 미리 경찰에 야간 옥외집회를 신고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야간이 아닌 주간으로, 하나가 아닌 여러 장소를 동시에 지정하여 신고하였지만, 집회예정일자에 일률적으로 경찰로부터 금지통고를 받았다.


<예> 집회예정날짜를 5월 26일부터 6월 1일까지 일출에서 일몰 간으로 정한 신고의 경우

 – 보신각 앞에 대한 사전 신고 : 5월 26일 장애인생존권쟁취결의집회와의 경합 이유로 금지 통고
 – 세종문화회관 앞에 대한 사전 신고 : 5월 26일 환경정리캠페인과 경합 이유로 금지 통고
 – 동아일보사 앞에 대한 사전 신고 : 5월 26일 환경정리캠페인과 경합 이유로 금지 통고


야간촛불문화제이든 주간집회든 사실상 광우병 반대 집회는 봉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집시법 규정이 과연 합헌인가.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제4항에서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문헌상으로만 보면 야간 집회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집시법 제10조는, 집회의 사전 허가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21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큰 장애물이 막혀 있다. 즉 15년 전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야간집회나 시위의 경우에는 불순세력의 개입이 용이하고 난폭화될 우려가 있으며 이를 단속하기가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일몰 후의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집시법 조항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과거의 결정에 기속되지 않지만, 과거에 한 번 판단한 것을 다시 뒤집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법률의 위헌 절차를 요약하면, 법률이 위헌인지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판단한다.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은 1차적으로 법원이고, 이를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제청을 하였다’라고 한다. 국민들은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제청을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이를 ‘법원에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하였다’라고 한다. 안진걸 팀장과 변호인들은 법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제청을 해달라고 신청을 한 것이고, 재판부는 종전에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으로 결정하였음에도 집시법 제10조가 위헌으로 판단한다고 하여 단호하게 위헌심판제청을 결정한 것이다.


 약자에게 더 중요한 기본권, 집회 자유

이번 법원의 결정문에서는 헌법상 집회의 자유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이를 통해 이번 광우병 촛불문화제가 헌법상 집회의 자유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음미할 수 있다. 결정문의 주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니 한 번 음미해볼 것을 권유한다. 


“집회의 자유란, 집회를 통하여 단순히 자신의 의사표명을 하는 자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의견교환을 통하여 공동으로 인격을 발휘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권임과 동시에 국가권력에 의하여 개인이 타인과 사회공동체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막아주는 기본권으로서 자유민주국가에 있어서 국민의 정치적?사회적 의사형성과정에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수단이다. 특히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차츰 드러내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가 끝난 후 다음 선거 시까지 더 이상 정치적? 사회적 의사표현을 할 방법이 없다는 임기제의 폐해를 각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대의기관이 국민을 위한다는 미명하에서 독자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면서 정치적 소수나 사회적 약자의 의견을 무시하는 상황일 경우, 집회의 자유는 국가적, 사회적 의사형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는 국민에게 가장 공공성이 강한 기본권이다. 집회의 자유는, 이미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정치적 다수나 사회적 강자보다는 그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억압될 가능성이 높은 정치적 소수나 사회적 약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권으로서, 이들에게 집회를 통한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실질적인 사회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위헌심판제청이 몰고 온 촛불법정의 변화



A재판부가 해당 법률에 대하여 위헌심판제청을 하였다고 하여 B재판부가 판결을 보류할 의무는 없다. 최근 제기된 위헌심판제청 사건으로는 간통죄 위헌 사건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있고, 위 사건들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나 만일 B재판부가 유죄로 판결을 하였는데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근거법률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경우, B재판부의 판결에 대하여는 재심을 신청할 수 있는 등 복잡한 절차에 휩싸일 수 있다. 집시법 제10조에 대한 위헌심판제청 후 법원에 계류 중인 수많은 촛불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법원이 통일된 지침을 발표한 바 없다. 다만 이번 위헌심판제청 후 서울중앙지법 형사 제3단독 재판부는 구속되어 있던  박석운 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과 네티즌 나○○ 씨를 보석으로 석방하고, 판결 선고를 위헌 결정 이후로 미뤘다. 그리고 서울중앙지법 형사 제16단독 재판부도 판결 선고를 위헌 결정 이후로 미루었는데, 위 재판부에서는 ‘집시법 제10조 위반이 피고인의 유무죄와 형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 같으면 선고를 연기하고 그렇지 않으면 선고를 계속할 계획이다’라고 개인적인 사건 진행 기준을 밝힌 바 있다.

조선일보는 법원의 위헌심판제청에 대한 불만을 박재영 판사에 이어 다른 판사까지 확대하는 집요함을 보이고 있다. 10월 17일 조선일보는 ‘법원, 촛불시위 재판 갈팡질팡 판결’이라는 기사에서,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에 위헌제청한 집시법 10조는 이념적, 사상적으로 민감한 부분인 데다, 무작정 선고를 보류할 경우 야간 불법집회가 확산될 우려가 있어 판사들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라고 함으로써, ‘대법원 관계자’의 입을 빌려 일선 판사들에게 신중하게 처신하라고 사실상 압박하고 있다. 

현 정부가 특정 계층의 이해관계만을 위하여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약하며 사회안전망마저 무너뜨리려고 하는 징조가 보이는 오늘, 집회의 자유는 정치적 소수나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욱 더 중요한 기본권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리고 집시법 제10조가 차지하는 사회적 비중을 고려할 때, 헌법재판소에서 집시법 제10조의 위헌 여부를 두고 치열한 법리 다툼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위헌심판제청은 정치적 소수나 사회적 약자가 잃어버린 중요한 기본권을 되찾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고, 이제 그 디딤돌을 발판으로 하여 그동안 잃어버렸던 국민들의 기본권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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