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7월 2008-06-30   1158

기획_내 촛불의 의미: 내 마음의 신작로

내 마음의 신작로 新作路

이성원 아이컴퍼니 대표 suzic@naver.com 

어릴 적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위험하니 신작로에 나가지 마라.’ 요즘에는 신작로(新作路)란 말이 흔히 사용되지는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신작로의 사전적인 의미는 ‘새로 만든 길이라는 뜻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궁금했다. ‘왜 어른들은 신작로에 나가지 말라고 했을까? 새로 만든 좋은 길에,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큰길에 왜 나가지 말라고 했을까?’ 나는 그런 반문을 해봤다. ‘그럼 나는 만날 좁은 길로, 차도 못 다니는 길로만 다니라는 이야긴가?’ 하고.

자동차가 다니게 된 게 우리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아마도 일제강점기 시대가 아닐까 싶다. 그럼 또 반문을 한다. ‘그럼 그때도 신작로는 차가진 놈들만-아니, 일본 놈들과 부일하는 부자들만 다닐 수 있는 길인가?’ 하고.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차를 타지 않은 상태로 인도로 나가는 것을 법으로 막고, 불법으로 다닐 경우 벌금도 내야 하는 것이다.

하여튼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차도, 즉 신작로에 나가는 것은 약간은 금기시되는 관습이랄까, 여튼 그런 것이다.

그러던 내가 나이 43에 다시 신작로에 나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신작로에, 물론 우리 애들까지 데리고, 거기다가 촛불을 들고 말이다. 자고로 어른들 말씀은 들어서 손해보는 것은 없다는 말도 있는데, 자식을 둔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또 사회가 금기시하는 짓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내가 사회의 규율을 무시하고 있는 시간에 나 말고도 수십만 명이 그 규율을 무시하고 있었다.  
 
내가 신작로에 우리 아이(솔비, 민효)를 데리고 나간 것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쇠고기 때문이었다. 나와 같이 신작로에 촛불을 들고 나간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분명히 쇠고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특히 대학교에서 나는 신작로에 여러 번 나갔다. 1986년도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최루탄 냄새를 맡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그때는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었고, 대통령이 못된 짓도 너무 많이 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보다도 더욱 험하게 신작로에 나갔다. 심지어는 화염병을 들고, 보도블록을 깨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 돌을 깨고 화염병을 던진 게 지금은 훈장이다. 20년 지난 지금, 분명히 훈장이다. 역사가 그렇게 말했고, 이제는 법으로도 인정하였다.

그런데 왜 나는 20년 전에는 혼자, 아니 친구들하고 나간 신작로를 이제 와서 다시 내 자식과 부모와 형제, 친구들에게 나가라고 하느냐 말이다. 그런 질문을 나에게 다시 한다. 분명 이유가 있다. 수만 명이 모여드는 것에 힘겨워하던 신세계 앞 분수나, 시청 앞 광장이 이제는 그때보다 더 많은 아니, 한 10배나 많은 사람이 시청에서, 종로에서, 광화문에서 그리고 그 10배가 넘는 사람이 또다른 신작로인 인터넷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 분명 이유가 있다.

신작로는 분명 내가 다른 곳으로, 남이 나에게 오기 위해 만든 길이다. 다만, 자동차가 다니니 조심하라는 말이지, 그게 아예 다니지 말라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너에게 가기 위한 노력을 소통이라 할 것이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20년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렇다. 내가 무언가 말하고 싶기에 신작로로 나간다. 20년 전에는 화염병과 전단지, 짱돌을 들고 막힌 신작로를 뚫어보려 했지만, 지금은 촛불을 들고 나가는 것이다.

20년 전 군사독재와 전두환을 비롯한 광주5적들이 신작로를 막고 서 있었지만, 그때도 국민이 나서서 뚫어보려던 길이었고, 지금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아닌 이명박 정권과 국민이 소통하려고 이 길을 나선 것이다. 분명 대통령이 되는 방법도 달랐고, 국민이 인정한 방법도 달랐지만, 20년 전 그때보다 더 많은 국민이 춤을 추며, 촛불을 들고 신작로에 나선 것이다.

네 살배기 내 딸이 “이명박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친다. 과연 무슨 뜻인지 알까? 하는 생각에, “왜 이명박이 물러나야 해?” 하고 묻는다. 그러면 “나쁜 쇠고기 먹이지 못하게 하려고요”라고 대답한다. 이내 또다시 씁쓸함이 엄습하지만, 언제나 신작로에서 너무도 즐겁게 촛불을 들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내 자식이 있기에 우리 역사는 진보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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