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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05월
  • 2008.04.04
  • 509

 


석유와 전쟁,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역사는 잉크가 아니라 석유로 기록된다”


글·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kimsphoto@hanmail.net

올해 들어 기름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지난해보다 국제유가는 66%나 올랐고, 배럴 당 100달러를 넘어설 기세다. 지난 날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석유파동(1차는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직후, 2차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직후)은 한국은 물론 지구촌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바 있다. 그 석유파동들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제3차 석유파동이 밀려오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최근의 높은 국제 석유 가격은 이라크 혼란에 따른 국제정치적 불안에다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인도 등의 석유 수요 급증 △석유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 △국제 단기투기자금의 장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따른 혼란은 고유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이라크 저항세력을 쉽게 제압한 뒤, 석유시설들을 빠른 시일 안에 복구해 원유를 대량 수출함으로써 값싼 석유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 기대가 틀렸음이 곧 드러났다. 이라크 혼란에서 비롯된 석유 수급의 불안정은 유가 상승이란 불똥을 멀리 한반도에까지 튀게 만들었다. 1톤 트럭을 몰고 다니며 과일을 파는 김 씨 아저씨의 지갑도 그 탓에 더 가벼워졌다.

피를 부르는 ‘검붉은 황금’의 저주

영화 ‘블라드 다이아몬드’에서 보여주듯, 아프리카 대륙의 반군들은 밀거래 중간상인들 손을 거쳐 미국과 유럽 시장에 다이아몬드를 내다팔아 전쟁비용을 마련하곤 했다. 그런 다이아몬드를 ‘분쟁 다이아몬드’ 또는 ‘피 묻은 다이아몬드’라 일컫는다. 다이아몬드는 ‘숙녀들의 영원한 친구’이지만 ‘반군들의 영원한 친구’이기도 하다. ‘검은 황금’이라 일컬어지는 석유도 마찬가지다. 이라크에서 보듯, 전쟁과 석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모는 자동차의 기름이 ‘피 묻은 석유’가 아니라고 그 누구도 잘라 말할 수 없다.

지구촌 유전지대를 차지하려는 패권적 야망은 지금껏 많은 전쟁을 불렀고,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검붉은 황금, 석유 이권을 둘러싼 전쟁사는 현대사가 됐다. “역사는 잉크로 기록되는 게 아니라, 석유로 기록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흔히 석유를 ‘검은 황금’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석유의 색깔은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인 검붉은 색이다. 이 검붉은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피가 바쳐져야 했다.

석유가 분쟁의 주요 원인임을 말해주는 사례를 일일이 꼽자면 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1990년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도 석유 때문이었고, 1991년 미군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인 것도 쿠웨이트에 대한 석유 이권을 되찾으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 석유를 기준으로 1차 걸프전쟁(1991년)을 풀이한다면, 전 세계의 10% 석유자원을 지닌 이라크가 또 다른 10%의 석유를 지닌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나아가 25% 지분을 지닌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동 석유이권을 지켜내려고 무력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150만 명(수단)과 50만 명(앙골라)의 목숨을 앗아간 아프리카의 내전들도 석유를 빼고 말하기 어렵다. 아프리카의 주요 산유국인 수단, 앙골라는 모두 부족끼리의 내전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1980년대 초부터 오랜 내전을 치르면서 엄청난 생목숨들을 앗아갔던 수단내전은 남부의 풍부한 석유자원을 둘러싼 친정부세력(이슬람교도)과 반정부세력(기독교도와 토속종교가 연합한 수단인민해방군)의 긴장에서 비롯됐다.

21세기 들어 양쪽이 석유 이권을 골고루 나누어 쓰는 것으로 합의하고 내전은 막을 내렸지만,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새로운 내전이 터져 2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채 지금도 전쟁의 화마가 타오르고 있다.

아프리카 분쟁지역의 석유 판매대금은 외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이고 무장 세력을 먹이고 키우는 전쟁비용으로 쓰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석유로 벌어들인 돈이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을 어제보다 낫게 만드는 데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석유로 배를 불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은 그 나라 특권층과 그들에게 줄을 댄 외국 석유업자들, 그리고 ‘죽음의 상인’인 무기업자들이었다.

유가 100달러 눈앞에 둔 지금은 석유전쟁 시대

매출액 세계 1위의 영국 석유회사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자료집에 따르면, 지구에는 약 1조2,000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 있다. 석유지질학자들은 2008~2010년부터 석유 생산량이 해마다 줄어들다가 앞으로 40~50년만 지나면 석유시대는 종말을 고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세계에너지협의회에 따르면, 앞으로 우리 인간이 쓸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은 매우 제한적이다. 석유는 40년, 원자력 에너지는 50년, 석탄은 150년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산술적인 계산이다. 나라마다 석유 채굴이 가능한 시점은 크게 차이가 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과 반미 노선을 걷고 있는 남미의 베네수엘라, 카스피 해 연안의 아제르바이잔, 아프리카의 리비아 등은 앞으로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 쯤 석유 채굴이 가능할 만큼 풍부한 석유가 매장돼 있다. 전체 매장량의 62%인 7,300억 배럴 쯤이 묻혀 있는 중동 지역은 앞으로 80년 동안 원유를 퍼 올릴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의 석유 채굴은 10년 쯤 뒤면 바닥이다.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읽을 수 있다.

역설적인 것은 석유 공급이 끊기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조차도 치르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낳은 명장 롬멜 장군의 아프리카 전차군단도 탱크를 움직일 연료가 없어 패배했다. 석유가 40년이면 고갈되는 마당에 전쟁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기뻐하긴 이르다. 석유고갈 시대에 강대국들은 저마다 석유를 확보하려고 더욱 치열하게 전쟁을 벌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석유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피 묻은 석유’를 향한 우리 인간의 갈증은 끝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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