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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06월
  • 2008.05.19
  • 736




미국의 ‘더러운 전쟁’ 5년

이라크 통계가 말하는 서글픈 현실




글·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kimsphoto@hanmail.net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바그다드에 친미정권이 들어선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2003년 5월 부시대통령이 전투복 차림으로 함공모함에서 ‘이라크에서의 주요전투가 끝났다’고 선언한 뒤 5년이 지나도록 이라크는 끓는 가마솥이다. 이라크 현지취재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후세인 독재정권 시절이 더 나았다”라는 자조 섞인 말들을 입버릇처럼 주고받을 정도다. 그 책임은 국제법을 무시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과 영국이 져야 마땅할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을 무릅쓰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배경은 잘 알려져 있듯이 ‘검은 황금’ 석유다. 인구는 전세계 5%인데도 전세계 석유소비량의 4분의 1을 쓰는 ‘석유중독국’ 미국이 세계 제3위의 석유매장량을 지닌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움으로써 석유의 안정적 공급선을 확보하겠다는 욕심이다. 이 ‘더러운 전쟁’은 결과적으로 숱한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침공이 없었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희생이었다.

이라크 사람들에게 지난 5년은 혼란과 공포, 죽음과 눈물이 뒤범벅이 된 시간들이었다. △점령군인 미군의 마구잡이 공습과 수색작전으로 비롯된 공포 △미국의 교묘한 점령정책으로 말미암아 증폭된 수니-시아파 사이의 종파싸움과 폭탄테러 등으로 말미암아 이라크는 불바다나 다름없게 됐다. 그런 혼란은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 넘쳐나는 난민 등 여러 후유증을 낳았다.

죽음과 고통의 잿빛 5년

통계 숫자를 들여다보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 5년은 곧 ‘죽음과 고통의 잿빛 5년’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먼저 이라크 사람들의 희생규모. 집계하는 기관마다 달라서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지만, 120만 명쯤의 이라크 사람들이 지난 5년 동안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다. 영국 리서치 기관 ORB가 이라크 전역에서 실시한 실태조사 끝에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20%가 2003년 전쟁이 벌어진 이래로 가족 가운데 1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특히 바그다드 지역에선 전체 응답자의 40%가 가족 가운데 1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석유를 노린 미국과 영국의 침공이 없었다면 지금도 살아 숨 쉴 생목숨들이다.

이라크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난민들의 곤궁한 처지다. 지난해 2월 시리아 현지취재를 갔다가, 이라크 혼란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은 “지금의 혼란에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이라크 안팎을 떠도는 난민 숫자는 400만 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 절반 가량이 유혈과 혼란을 피해 이웃나라인 시리아 등으로 피란을 떠났고, 나머지 절반은 이라크 국경 안에서 떠도는 이른바 ‘국경내 난민’(IDPs) 신세다. 이라크의 혼란은 신체적으로 약자인 어린이들에게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선다. 유엔아동기금이 2008년 2월에 발표한 <2007년 이라크 어린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 어린이 200만 명 이상이 만성적인 영양부족으로 건강을 위협 받는 상황이다. 미국의 침공과 뒤이은 혼란은 이라크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기회마저 앗아갔다. 지난 2004년 86%였던 초등학교 취학률은 2006년엔 46%로 떨어졌다. 2001년 9·11 테러 뒤 한때 불어닥친 애국주의 바람에 덩달아 “돌격 앞으로!”를 외치던 미국 유권자들도 지난 5년 동안 이라크에서의 혼란과 미국이 지출하는 엄청난 전쟁비용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품는 모습이다. 미 국방부의 이라크 전쟁비용은 한 달에 120억 달러쯤 지출되며, 지난 5년 동안 총비용은 이미 6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 의회예산국조차 최종 전쟁비용이 1조~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참전 미군 사망자는 침공 5주년을 맞은 지난 3월에 이미 4천 명을 넘어섰다(부상자는 약 3만 명). 전사자 숫자와 전쟁비용만 따져도 “21세기의 미국이 1960년대의 베트남 수렁에 이어 또 다른 수렁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지난 5년 동안 이라크에서 벌어진 혼란상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후세인 정권을 대신하는 이라크의 현실적인 힘의 주체이자 점령자인 미국에 책임이 돌아간다.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은 전쟁윤리적인 성격을 지닌다. 미국의 정치학자 진 베스키 엘스테인(시카고대학)은 “점령국은 (패전국의)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승전국(점령국)은 패전국 국민들의 인간안보를 책임져야 한다. 이라크 민초들이 바라는 평화는 21세기 ‘미국의 평화’(팍스 아메리카나)보다는 ‘이라크의 평화’다.

한미동맹이냐 ‘더러운 전쟁’ 동참이냐

지금 이라크에는 16만 명에 이르는 미군이 주둔중이다. 미 국방부는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서 이라크에서 발을 빼려는 전략(이른바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친미 이라크 정부군이 오는 2012년까지 국내치안을 떠맡길 바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이라크 석유를 노리고 벌인 미국의 그 ‘더러운 전쟁’에 한국이 끌려들어가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다는 점이다. 자이툰부대 철군은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한국인들의 염원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더러운 전쟁에서 발을 뺄 태세가 돼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말끝마다 ‘한미동맹 강화’를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는 한술 더 떠 “(지난 10년 동안 훼손됐던) 한미동맹을 복원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는 만큼, 자이툰 부대의 조기철군에는 이렇다 할 뜻이 없어 보인다. 이라크에서 5년 넘게 이어져 온 더러운 전쟁과 그에서 비롯된 서글픈 통계 숫자들을 돌아보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반전운동이 지닌 소중한 뜻을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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