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7월 2008-06-02   368

김재명의 평화 이야기 11_이라크와 레바논에서 얻은 교훈: 우린 사우스 코리안인가, 코리안인가

이라크와 레바논에서 얻은 교훈

우린 사우스 코리안인가,  코리안인가

글·사진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정치학 박사 kimsphoto@hanmail.net

“먹는 것 갖고 장난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먹을거리는 건강, 나아가 생존에 얽힌 중대사이니만큼 장난칠 거리와는 거리가 멀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광우병 위험이 있을지라도 눈 딱 감고 일단 내다팔고 보자는 식으로 나서는 미국의 태도도 문제지만, 그런 미국의 요구를 낮은 자세로 받아들인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에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에 그랬듯이, 21세기 신사대주의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그런데 이번엔 쌀이다. 최근 미국 부시행정부가 북한에 50만 톤 식량 지원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정부에서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검토한다”고 한다. 미국이 북한을 돕는 쪽으로 돌아서면 북미관계가 급진전될 터이고, 남한은 북미 사이에서 어정쩡한 처지가 될 게 뻔하다. 그래서 갑자기 인도주의가 부활하는 민망스런 상황이 됐다.

수니파요? 아니면 시아파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한 사람들은 1990년대 후반 이래로 식량난 문제로 커다란 고통을 받아왔다. 지난날 노무현 정부를 향해 “북한에게 퍼주기만 했다”고 목청을 높여온 정치인들이 올해 들어 권력을 잡은 뒤엔 북한의 식량난을 못 본 체 해왔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실용정책’의 뼈대는 노무현 정부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지만 피를 나눈 같은 한민족인 북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뻔히 보면서 쌀을 갖고 ‘장난치는’(보다 정확히 말해 식량원조에 꼬리표를 달아 북한을 압박하는) 모습으로 비춰져선 안될 일이다.

그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참된 민족애가 뭔지를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나라 바깥에 나가서 어디서 왔냐는 물음을 받을 경우, 별다른 생각 없이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라크에 갔다가 귀가 번쩍 뜨이는 말 한 마디를 들었다. 그곳 바그다드대학 역사학 전공 교수 한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은 수니파인가요, 아니면 시아파인가요”라고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나는 수니도 아니고 시아도 아니다. 나는 이라크 사람이다”였다. 그의 요점은 “시아-수니를 가리려 하지 말고 통일된 이라크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라크는 지난날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다수파인 시아파 이슬람 세력이 수니파 출신의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온갖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시아-수니 사이에 갈등과 불신의 골이 깊다. 2003년 4월 후세인 몰락 뒤 5년이 지나며 한때는 내란상황으로까지 치닫는 동안 시아-수니를 가리는 것은 한국에서 영남이냐, 호남이냐, 아니면 충청이냐의 출신지역을 가리는 것 이상으로 민감한 사항이 됐다. 그렇기에 민족통합을 바라는 다른 한 켠의 목소리도 높다.

바그다드대 역사학 교수를 만나 한 수를 배운 뒤로부터 나의 대답도 달라졌다. 이즈음 분쟁지역에 가서 “당신은 사우스 코리안인가? 노스 코리안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서울에서 온 코리안이다. 그렇지만 생각이 깊은 우리 코리안들은 굳이 남북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코리안들은 쓰는 말도, 정서도, 핏줄도 하나다. 지금 어쩔 수 없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곧 통일된 코리아가 될 것이다.”

레바논 사람들의 고민

21세기 지구촌 분쟁지역들을 돌아보면, 우리 한반도보다 상황이 어려운 곳이 한둘이 아니다. ‘20세기 세계의 화약고’란 달갑잖은 별칭이 따라붙은 발칸반도의 보스니아와 코소보, 중동지역의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이 그러하다. 이 지역들은 언어-혈연-종교-정서가 다른 정치세력들이 한정된 영토와 자원을 둘러싸고 유혈투쟁들을 벌여왔다. 언제 또 다른 내전이 터질지 모르는 강한 휘발성을 지닌 곳들이다. 그렇기에 그 지역들의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민족 구성원 내부의 갈등을 푸는 데 많은 고민을 해왔다.

혹독한 내전을 겪어온 레바논 사람들도 국가통합을 둘러싼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지중해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항구도시 베이루트를 수도로 하는 레바논은 인구 40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나라다. 그런데 이 나라엔 공인된 종파만도 18개에 이른다. 인구의 50%는 이슬람교도, 40%는 기독교도라 하지만, 이슬람교는 수니-시아-두르즈 파로 갈렸고, 기독교는 마론-그리스정교 등으로 나뉘어 서로 반목과 갈등을 빚어왔다. 1975~1990년까지 15년 내전을 벌여 10만 명 넘는 생목숨이 학살당했다. 내전의 피바람이 지나간 뒤 기묘한 권력분점(실질적인 지도자인 총리는 수니파에서, 대통령은 마론파에서, 국회의장은 시아파 지도자에게 할당)이 이뤄져 왔지만, 여러 정파 사이의 이합집산과 반목은 그치지 않는다. 이런 분열에는 친미냐 친시리아-친이란이냐의 편 가르기도 한몫을 한다.

5월 들어 헤즈볼라에게 각료 11석을 주기로 하는 등 정파 간의 정치적 타결로 내전의 위기를 넘긴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지만 민족통합과 안정을 바라는 레바논 지식인들의 고민은 크다. 냉정하게 말해 레바논에는 국가통합의 바탕인 민족과 민족주의란 개념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조차 불투명하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언론사를 찾아가 몇몇 기자들과 함께 그런 문제를 얘기할 때, 그곳 기자들조차 서로 말이 엇가릴 정도였다. 워낙 씨줄과 날줄로 여러 정치세력이 복잡하게 얽힌 레바논의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그래서 레바논 지식인들조차 민족문제에 대해선 모범답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 레바논에 비해 한반도 상황은 단순하다. 우리는 언어와 피가 하나인 이른바 단일민족이다. 민족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지 60년을 넘겼지만, 통일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데엔 “우리는 단일민족이야”라는 의식이 바탕을 이룬다. 지금 북한이 식량난으로 어렵다면, 꼬리표 없이 기꺼이 도와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동서냉전의 산물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듯이) 비무장지대(DMZ)가 사라지고 통일의 날이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참된 민족애를 생각한다면, 평화통일을 앞당기려 생각한다면, 먹는 것 갖고 장난친다는 오해는 받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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