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6월 2007-06-01   951

‘승연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수치심

내가 다니고 있는 성공회대학교에는 1992년부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이름을 딴 ‘승연관’을 대학 본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새삼스레’ 승연관의 건물 명칭이 학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으니 그 이유인 즉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 때문이다. 3류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을 재벌 회장이 직접 자행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학내에서는 승연관 건물 명칭의 개명을 촉구하는 여론이 하나 둘 생겨났다. 이는 곧 집회로 이어졌고, 학내시위로써는 이례적으로 기자들까지 와서 취재를 해 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기자가 왔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학내 시위였지만 다음날 학교 게시판에는 집회 참가자들을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 취업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학생들은 “시끄러워 공부를 못하겠다.”, “당신들이 만드는 이런 반자본적 이미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아느냐.”, “승연관의 이름을 바꾸면 받은 돈은 돌려줄 것이냐.” 며 집회를 그만 둘 것을 요청했다.

‘아…….’ 그 글들을 본 순간 내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취업 아니 근본적으로 화폐 획득이 대다수 학생들의 사고를 재단하는 단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학교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인권과 평화를 지향한다는 학교에서 단순 폭행사건도 아닌 조폭을 동원한 보복폭행을 저지른 사람의 이름을 가진 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사소한 것 같은 건물의 명칭 하나에도 학교가 지향하는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폐 획득이 인생의 목적인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학교는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얼마를 지원받았다고 해서 원금에 배당금까지 챙겨줘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김 회장 개인에 대한 일말의 연민과 안타까움은 느낄 수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승연관’이라는 명칭이 학교의 명분을 포기하면서 까지 지켜야 할 것일까.

성공회대의 교육 이념은 ‘열림, 나눔, 섬김’이다. 이 이념에 따라 열림관과 나눔관이 존재한다. 그런데 아직 섬김관은 없다. 이 기회에 승연관을 섬김관으로 바꾸자. 학생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학교 당국에 섬김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의미에서 말이다.

학생교류처에 ‘승연관’의 명칭개명에 대한 학교 측의 의견을 묻자 “학교에서는 이번 보복폭행과는 상관없이 예전부터 명명된 것을 가지고 왜 ‘새삼스럽게’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15년 전에 지어졌건 150년 전에 지어졌건 승연관은 성공회대의 현재를 구성하는 가치 중 하나이고, 그 가치는 미래에도 이어질 것이다. 아무리 외쳐도 대답 없는 그대들이여 제발 개념 좀 챙기자.

이형섭 참여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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