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5월 2006-05-01   955

‘영웅’하인스 워드와 한국언론

‘영웅’ 하인스 워드가 다녀가면서 모처럼 ‘다인종시대’가 강조되던가 싶더니만 지난 17일에는 출입국 관리사무소의 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인도네시아인 이주노동자가 또 다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인스 워드가 일주일 남짓 머무는 동안 언론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뉴스와 각종 시사·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웬만한 국가 원수가 방한했을 때보다도 더 큰 관심을 갖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름마저 부르기 어려운 누르 푸아드 씨는 먼 이국 땅에서 목숨을 잃었건만 언론의 무관심으로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도 잘 모른다. 우리는 진정 ‘다인종시대’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하인스 워드가 왔을 때의 그 떠들썩 함은 진실된 것이었는지 누르 푸아드 씨의 죽음을 뒤로 하고 생각해 보자.

언론은 워드가 홀어머니와 함께 혼혈인으로 어렵게 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힘 센 나라인 미국에서 결국 슈퍼볼 MVP가 됐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언론은 그의 혈통인 ‘혼혈’과 ‘MVP’로 설명되는 미국에서의 성공, 그리고 워드를 이용한 얄팍한 상술 가운데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보도를 해왔는가.

워드 ‘독점한’ MBC, 화두는 없고 자사홍보에 열올려

오랜 기간의 작업 끝에 하인스 워드 독점 출연권을 따낸 MBC는 워드가 한국을 찾은 지난 3일 <뉴스데스크>에서 머리기사부터 무려 여섯 꼭지를 할애했다. 반면 KBS는 현대차그룹 비리,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등에 이어 13번째 꼭지로, SBS는 7번째 꼭지로 보도해 대조를 보였다. 4일에도 MBC는 머리기사부터 다시 여섯 꼭지를 다뤘다. 물론 이날은 SBS도 머리기사부터 다섯 꼭지를 다루기는 했지만 MBC는 내용 면에서 ‘극찬’ 일색이었다. 〈MBC 방문〉에서 기자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을 강조했고, 앞서 3일 〈인간적인 영웅〉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최고의 선수’, ‘실력과 인간성 모두에서 돋보이는 선수’ 등 타사 보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찬사가 쏟아졌다. 3일 〈내일 단독출연〉, 4일 〈MBC 방문〉, 8일 〈자존심으로 극복〉(토크쇼 출연 예고기사) 등은 자사 홍보성이 더 짙었다. 특히 4일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 ‘워드 특집대담’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4분 30초 동안 이어진 대담은 내용 한국 음식, 한국에 관한 인상, 어머니에 대한 감사 등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보도민주언론실천위원회 김효엽 간사는 “애초 기획의도 대로 ‘다인종시대’를 조명하고자 했다면 혼혈 문제 등에 대한 보다 진지한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혼혈인들 억울하면 성공해라?

신문도 혼혈인에 대한 기획면을 할애하는 등 열의는 느껴졌지만 그 보다도 더 부각된 기사는 하인스 워드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등을 소개해준 기사였다. 하인스 워드가 입국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4일자 다수의 조간신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워드의 4월3일부터 12일까지 한국 일정을 표로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가 받은 진수성찬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 날 동아일보는 2면 <전담요리팀에 보디가드 23명 철통경호> 기사에서 워드가 대한항공 909만 원 1등석 왕복권과 기아자동차 의전용 최고급 오피러스 자동차를 제공받으며 1박에 605만 원 하는 롯데호텔 로열스위트룸에서 공짜로 머물며 옷은 제일모직 정장-파티복 등이 그를 위해 특별 제작됐다고 보도했다. 결국 그의 성공 즉, 수퍼볼 ‘MVP’가 강조되면서 아무리 혼혈이라도 이 정도의 성공을 이룬 이에게는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극진한 대접을 해준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황우석 교수 대신하는 영웅 찾기에 매몰

그래도 혼혈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은 있었다. MBC의 〈이제는 다인종 시대〉, KBS 〈함께하는 우리사회〉, SBS 〈이젠 다민족 국가〉 등 나름대로의 기획물을 선뵈기도 했으나 농촌의 국제결혼 문제, 혼혈인의 차별 받는 삶, 이들에 대한 지원 법제화 등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 지루할 정도로 여러 언론에서 반복됐다.

그렇다면 하인스 워드는 갑자기 나타난 영웅이고 그로 인해 우리는 혼혈의 문제를 화두로 안게된 것일까? 하인스 워드는 2002년부터 4년 연속 NFL 올스타전인 프로볼에 선발됐고 2001년부터 정규시즌 1,000야드 이상을 기록했다. 이에 조선일보는 이미 지난 2000년 10월 31일자 라는 기사를 통해 그를 주목했다. 기사로 봤을 때 5년 전에도 그는 팀의 핵심 공격수였고, 그 뒤에는 한국인 어머니가 있었다. 6년이 지난 현재 그가 슈퍼볼 MVP가 되자 2000년에는 34면에 관련보도가 실렸지만 올해는 1면에 그의 이름과 사진이 등장한 것이 차이일 뿐이다.

미주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하인스 워드가 역경을 딛고 MVP가 됐다며 영웅 운운하는 것은 한국언론이 냄비임을 자인하는 것”이라며 “결국 국내언론은 황우석 교수를 대신하는 영웅 찾기에 매몰된 듯한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러시아인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있는 강기우(22)씨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계 혼혈인이 언론에서 긍정적 관심을 끌려면 슈퍼볼 MVP정도는 돼야한다는 기준선을 느꼈다”며 “일반 혼혈인과 비교되는 이런 극과 극의 대우는 혼혈에 대한 관심보다는 또 다른 갈등만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나가는 열풍은 이제그만

워드 방한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도 혼혈아동에 대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KBS의 경우 지난 5일 〈지원 법제화 움직임〉에서 혼혈인 관련 정책 세미나 내용을 자세히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6일자 <정치권 뒤늦게 혼혈인 챙기기>에서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한국사회의 혼혈인 및 국제결혼가족 실상과 대책’ 토론회에는 무관심했다”고 꼬집었다. 지난 2004년 농촌 결혼이민 여성의 문제를 다룬 기획 “농촌의 코시안”을 보도했던 한겨레 정대하 기자는 “특별법 제정도 의미가 있겠지만 현실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절대빈곤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지나가는 ‘열풍’이 아니라 실질적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언론의 감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윤정식 미디어 오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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