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0월 2005-10-01   305

2,500쪽의 판례 자료로 남은 인턴십 1년

민병희 인턴십 자원활동가

불세출(不世出), 또는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을 영웅이나 위인이라고 한다면 일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은 그 정도는 아니어도 분명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필자가 자원활동 관련 업무를 시작한 후 일년 동안 참여연대 인턴십 과정을 마친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그에게 참여연대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민병희 씨다.

일년에 한 명 밖에 배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턴십이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꾸준한 인내력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주 3일 이상, 6개월 이내 총 300시간) 자기가 완결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 얼마만큼 책임감 있게 해내느냐가 관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의 정치, 사회 상황을 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어요. TV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에서 대안을 제시하며 비판하는 시민단체 한 곳이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알고 보니 참여연대였어요. 과연 어떤 단체이기에 겁도 없이(?) 국가 권력기관과 대기업을 상대로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참여연대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던 거죠. 귀국해서 병역을 마치고 출국하기 전 뜻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참여연대 인턴십에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필자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민씨는 사법감시센터에서 각급 법원의 판례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그 일은 사법부의 민주적 감시를 위한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중요한 활동이었다.

“제게 주어진 법관들의 판례를 모두 정리하고 나자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았는데 A4용지로 2,500장이 넘는 분량이 되더라고요. 가슴 벅찬 뿌듯함이 느껴졌어요. 제가 야구광인데 박찬호 선수가 예전에 18승을 달성했을 때보다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인턴십 활동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시작하고 절반쯤 되었을 때 급작스런 일로 활동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는 물론이고 사법감시센터와 필자도 어쩔 수 없이 기약 없는 이별을 맞이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다. 그가 인턴십 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을 때 그 뿐만 아니라 간사들까지 감격스러워했던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보통 서너 달이면 끝나는 인턴십을 그는 일 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도전하고 노력함으로써 자원활동가들의 귀감이 되었다.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분들이 다 직업을 잃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참여연대가 할 일이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런 날이 올까 싶지만 말입니다. 그 날이 혹시 오면 간사들이 뿌듯한 마음으로 짐 싸서 돈 많이 버는 직장으로 가셨으면 하는 게 염치 없지만 제 바람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참여연대와 도움이 되는 관계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평화군축센터로 자리를 옮긴 필자의 뇌리에 자원활동가들의 얼굴이 그를 열광하게 했던 한 야구선수의 볼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갔다.

공성경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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