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1월 2005-01-01   922

2만 여 광주시민이 일군 쾌거, 주민소환조례제정

9시 뉴스만 틀면 열 받지 않습니까? 텔레비전도, 냉장고도 문제가 있으면 교환이 되는데,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은 한 번 뽑고 나면 다음 선거 때까지 바꿀 수가 없습니다. 민주국가 원리의 기초가 되는 사회계약설이 무엇인가요?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약속을 깬 대표들을 주권자가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힘으로 언제든지 시민의 대표를 바꿀수 있는 권리를 가질 때 정치인들은 국민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주민소환제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치인들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민소환제를 정치인들 스스로는 절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힘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여기 와서 서명하세요. 광주시민 1만8000명이 서명하면 가능합니다. 5·18 민주화항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섰던 광주시민들이 이제 지방자치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서 나섭시다.”

이렇게 외치며 광주지역 시민단체 실무자들이 2003년 10월 18일부터 광주 무등산 등산로에서, 야구장 입구에서, 대학 도서관 앞에서, 교회 앞에서, 공장 구내식당에서, 시내 지하상가에서 주민소환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 작업에 나섰다. 지방자치법 13조에 있는 ‘주민발의조례청구권’을 이용하여 광주시민 1만8000명의 서명을 받아 시의회에 ‘주민소환조례’를 청구하기 위해서다.

전국 최초의 주민소환조례 제정

평소 많은 지방정치인들이 구속된 채 재판을 받으면서 보통 2년을 끌어 버려 지방자치를 파행으로 이끄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던 가운데, 광주전남개혁연대는 2003년 7월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지방분권특별법 초안에 주민소환제가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주민소환조례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한 단체의 힘만으로 그 많은 서명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소속 23개 단체들에 운동을 제안하고 10월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본부를 꾸리면서 서명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서명운동을 시작한지 넉 달만에 1만 9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2004년 2월 주민소환조례를 청구하였다. 조례제정을 위한 서명은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주소도 번지 수, 아파트 호수까지 모두 적어야 한다.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무효 처리된 4000명까지 합한다면 실제로는 90만 광주광역시 유권자 중 2만3000여 명이 지지를 보낸 것이다.

정치인 자신들을 겨냥한 조례가 시의회에서 통과되는 것이 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의원들에게 “광주시의원들은 민주화 성지의 시민 대표다. 자신들을 소환할 수도 있을 조례를 통과시키는 의원들에게 시민들은 진정으로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설득했다. 시의원들은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만장일치로 조례를 통과시켰고, 2004년 7월 전국 최초로 ‘광주광역시 공직자소환조례’가 공포되었다. 광주의 영향을 받은 전라남도 의회도 의원발의로 주민소환조례를 제정하였다.

하지만 시련은 다른 곳에서 왔다. 광주시청과 전남도청이 “두 시도의 조례 안은 상위법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주민소환제는 헌법의 국민주권원리에 따라 주권자가 대표를 바꿀 수 있는 권리로서 국민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법률상 근거가 없더라도 조례로서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또 2003년 11월 지방분권특별법에 추가된 주민소환제 권고 조항이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주권자가 서명을 하여 만든 조례이기 때문에 국민의 심부름꾼들이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지 않고 있는 법률보다 효력이 우선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위법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끝내 무효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상위법이 없다는 이유로 좌절

이 판결로 국민이 아무리 원하더라도 국회에서 법률로 제정해주지 않는다면 주민소환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로써 국회가 서둘러 주민소환제를 입법해야할 이유는 더 분명해졌다. 조례제정운동의 영향으로 2004년 8월 국회의원 20명의 공동발의로 주민소환제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접수되었지만, 행자위는 정기국회가 끝나는 순간까지 상정은커녕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조례제정운동본부는 자료집과 행자위에 발의된 법률안을 국회의원들에게 보내 주민소환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17대 총선에서 모든 정당은 정치개혁 과제로 국회의원 소환까지 포함하는 국민소환제를 공약했었다. 하지만 의회가 열린 뒤 국민소환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오히려 대립과 갈등으로 예산안마저 회기 안에 통과시키지 못하는 무력함을 보이며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주고 있다. 16대 국회 보다 더 일하지 않는 17대 국회가 되면서 국민은 이대로 4년을 또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암담한 고민이 서서히 깃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 일정 수의 주민이 서명을 하여 의원에 대한 소환 청구를 하고 투표를 통해 소환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가 마련돼 있다면 이렇게 암담하지만은 않을텐데, 지금으로선 답답한 마음과 불평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지위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제는 개헌을 해야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 소환제까지 한꺼번에 입법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지방 정치인에 대한 주민소환제부터 제정해 정착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개헌 논의와 함께 국민소환제를 관철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이다. 1948년 우리나라 초대헌법에서는 국민소환제가 보장되어 있었다. 이 법이 박정희 군사정권 때 국회에서 없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소환제 도입 운동은 잃어버린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를 찾는 운동인 것이다.

국민소환조례제정운동은 국민 스스로 권리 찾는 운동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은 정치인들이 스스로 만들지 않는 법률을 시민의 힘으로 만드는 ‘국민주권운동’이다. 정치인들에게 법률을 만들어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스스로 권리를 찾아가는 운동이다. 광주의 시민운동단체들은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아직까지 시민들과 함께 하는 운동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1만8000명 서명 목표 달성은 해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며, 시민과 함께 하는 운동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또한 시민단체들의 긴밀한 협력은 단체 실무자들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했고 노동조합, 대학, 종교단체 등 다른 기관 단체들 간 협력의 실마리가 되었다. 이제는 전국 시민단체의 연대로 국회를 설득하고 압박하여 내년에는 주민소환제 국회입법을 반드시 이루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소환제까지 제정하여 국민이 진정 주인이 되는 정치개혁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류동훈 광주전남개혁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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