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3월 2003-02-25   584

“급진적 개혁”을 촉구하며

개혁의 돌풍이 몰아치고 있다. 훗날 어느 역사가가 있어 오늘날의 세계사적 특성을 추려내고자 할 때, 그는 아마도 ‘개혁의 시대’라는 용어를 동원하려 할지 모른다. 그만큼 개혁이 국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개혁의 세계화가 현 시대의 특징인 것이다.

개혁 추진 전략

개혁 세력은 근원적으로 보수 및 진보 진영 양쪽에서 동시에 공략 당할 수 있는 이중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두 개의 이질적인 세력을 동시에 맞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혁은 대체로 적대 세력 한쪽과만 씨름해도 좋은 수구나 혁명보다 오히려 더 많은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다. 이것이 개혁의 객관적 어려움이다.

또한 여기에 주체적 한계와 장애도 가세한다. 개혁이나 혁명 세력을 막론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고자 노력하는 정치 집단들은 흔히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사회적 혁파를 위해서는 우선 구질서를 대변하거나 그에 봉사하던 수구적 기득권 세력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 세력들이 거의 유일하게 전문적 행정 경험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계 요로, 경찰, 군부, 경제계 등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러시아 혁명 당시에도 레닌은 심지어 짜르 치하의 전문 행정요원들을 재등용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처럼 오로지 수구적 지배체제로 일관해온 곳에서 새롭게 권력을 장악하는 개혁 세력은 상당한 경륜과 전문지식을 요하는 행정 실무경험을 거의 갖추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럴 기회와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적 정치 풍토로 인하여 개혁이 일사불란하게 추진되기 힘들다는 것을 손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요컨대 혁명은 무엇보다도 폭력적·불법적으로 수행되는 사회체제의 급격한 변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혁명 주체 세력은 목숨을 걸고 기존 지배질서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기존 세력이 타도되든지 혁명 세력이 박멸 당하든지 하는, 생사를 건 양자택일의 가능성만 존재할 수 있을 따름이다.

반면에 개혁은 차원과 본질을 전혀 달리 한다.

개혁은 주어진 법과 제도 하에서, 그리고 개혁 세력의 의도와 목표를 만천하에 공개한 상태에서 평화적으로 추진된다. 법과 제도라는 민주적 절차와 범주의 한계 안에서 수행되기 때문에 살기등등(殺氣騰騰) 하지는 않다. 평화적이다.

여론과 타이밍

그러므로 개혁 추진 세력의 합법적인 결속이 필수적이다. 대중을 이해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해관계까지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론의 흐름과 향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의 든든한 후원이 감지될 때 개혁은 전격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최소한도의 성과를 보임으로써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어야 한다. 요컨대 개혁은 여론 확보 투쟁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여론의 평화적 조성 및 지원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개혁은 장기간을 요하는 과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을 질질 끌게 되면 서로가 의도했던 개혁의 지향점에 차이가 있음이 더욱 명확히 드러나게 됨으로써, 개혁 세력간에는 반목이 싹틀 수 있다. 따라서 개혁은 급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마디로 장기성 전략 설정과 단기성 전술 강행, 요컨대 원대한 개혁 철학의 제시와 급격한 개혁 정책의 집행, 이것이 바로 개혁의 본질적 특성이면서 동시에 모순이기도 한 것이다.

다른 한편 수구 세력들은 시간을 확보하기만 하면 개혁을 저지시킬 수도 있는 강력한 전래의 ‘군사력’을 소유하고 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이득과 공포다. 이런 의미에서 수구 세력들은 전통적인 이득의 상실과 개혁 세력의 압력에 대한 공포로 불안에 떨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극렬한 자기 방어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그들은 무섭게 저항한다. 그러므로 개혁 추진 세력에게서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혁의 청산 대상에게서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구 세력은 기득권이라는 탁월한 군비까지 갖추고 있다. 반면에 개혁은 민주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부담까지 안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많은 경우에 개혁 세력들은 수구 세력들의 완강한 저항에 좌초하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개혁 세력 자체의 불화나 허약한 결속력이 그에 가세하는 경우가 또한 잦다.

‘거국내각’ 구성

이런 의미에서 시민단체 및 노동계를 포함하여 여·야를 망라한 책임 있는 개혁 세력들을 거족적으로 결집시킬 범국민적인 방도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의 발전은 개혁 쪽에 있다.

진보는 진보(眞寶)다. 진짜 보석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급진적 수구를 상징·대변하는 정치인 및 그 주변 집단과 단호히 결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에 온건 기득권 세력을 개혁 세력화하는 작업을 줄기차게 병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해 있긴 하지만 원천적으로 합리적 개혁 지향성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이들을 과감히 결집하는 것이 급선무다.

무엇보다 여당, 야당, 시민단체 및 노동운동권 등을 통틀어 개혁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는 정치집단들이 총 단합하는 국면을 상정해볼 수 있다. 개별 집단들의 인맥이라든가 성장 배경 등의 차이로 인해 그리 손쉽게 이루어지기는 힘들겠지만,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에서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 아닌가 여겨진다. ‘거국내각’ 구성은 그 과정상의 한 중요한 방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이른바 ‘좌파’의 자세를 아우르며 과격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 ‘래디컬’(radical)의 어원은 ‘뿌리 채 파고든다’는 의미를 가진 ‘라딕스’라는 라틴어다. 말하자면 뿌리까지 파고들어 속속들이 따지고 드는 단호한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에게도 옛적부터 이러한 ‘급진적인’ 정신이 살아 숨쉰다. 예컨대 발본색원(拔本塞源)하는 정신이야말로 우리들의 고고한 자랑거리 아니었던가.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급진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불가능성을 일단 전제한다면, 수구 세력에 맞서는 유일하게 효율적인 방략은 진보적 개혁밖에 없다. 진보적 개혁이란 수구세력이 수호하고자 하는 기존의 가치체계를 그것이 허용하는 가장 과격한 수단에 호소함으로써 평화적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빠른 변화가 내습하는 시기에 마냥 멈칫거리기만 한다는 것은 낙오를 의미한다. ‘급진적 개혁’만이 유일한 활로다.

혁명만 급진적인 것이 아니다. 개혁도 충분히 과격하게 수행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

박호성 본지 편집인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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